이태원 참사 다큐멘터리 [Crush]
차로 돌아오는 동안 치읓상과 이태원 참사에 관해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미국에 사는 일본인인 치읓상도 이태원 참사를 알고 있었다. 그만큼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을 때 나는, 알고 싶지 않았다. 보고 싶지 않았다. 뉴스 사이트를 겨우 확인할 때마다 끝도 없이 늘어나는 사망자 수에 아예 휴대폰을 던져버렸다. 서울 한복판에서 사람들이 압사당해 죽어나가고 있다니. 대체 무슨 일이야. 날벼락이 따로 없었다. 뉴스도, 유튜브도 보지 못했다. SNS에 올라오는 글과 짧은 영상조차도.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그걸 보고 내가 아무렇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나는 세월호가 물에 잠기는 걸 보았던 사람이다. 뉴스 화면에 뒤집힌 배가 잡히고 그 아래로 전원 구조라는 자막이 뜨는 걸 보고는 그래도 다행이다 안도하고 평소처럼 아침 먹고 할 일을 했다. 오후 느지막이 뉴스를 확인했을 때 내가 본 것은 전원 구조가 오보였다는 소식이었다.
얼떨떨해서 뉴스에서 나오는 말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왜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하지 못했는지, 전원 구조되었다는 오보는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 애초에 그 큰 배가 왜 물에 잠겼는지 의아할 따름이었다. 머리가 상황을 채 파악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배가 가라앉고 수백 명이 죽어나가는 동안 나는 무탈했다는 것이, 평소대로 먹고 일하고 늘어지게 쉬었다는 사실이 끔찍했다.
이후 이어진 일들은 훨씬 끔찍했다. 배에 문제가 생기자 제일 먼저 도망쳐 나온 선장과 승무원들, 그 와중에도 계속되었다는 가만히 있으라는 선내 방송, 침몰 신고를 한 것도 승무원이 아닌 학생이었고, 출동은 했지만 세월호 측과 교신도, 승객들에게 퇴선 명령도 하지 않은 해양경찰청, 해경들은 물에 빠진 승객들을 구하며 욕설을 내뱉기도 했다고 하고.
기울어가는 배 안에서 서로를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승객들의 증언과 고백, 자신도 겨우 살아놓고 친구를 학생을 살리지 못했다고 터뜨리는 울음, 자책하며 자살을 택한 이들이 있었고…… 민간 어선과 잠수부들이 투입되고 과중한 구조 작업으로 잠수부들마저 위험한 상황에 놓였고 눈만 감으면 아이들이 어른거린다던 한 잠수부는 아이들 곁으로 떠났고……
분노한 국민들이 책임을 물으며 대통령을 탄핵시키고 새로운 대통령을 뽑았고 기대에 찼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여론에 떠밀리다시피 특별조사위원회가 출범하고 특별수사단이 설치되고 특검이 진행되었지만 수사한 모든 의혹과 관련하여 증거 없음, 범죄 혐의 없음, 세월호 침몰 원인은 불명확.
유가족들은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주장하며 농성과 단식 투쟁을 시작했고 그 앞에서 유가족들을 조롱하며 폭식 투쟁을 벌인 무참한 자들, 자식 팔이 한다는 옮겨 적고 싶지도 않은 말들이 돌았고 아무것도 된 게 없는데 그만 좀 하라고, 지겹다고 하는 자들이 있었고…….
그 일련의 일들을 나는 대체로 화면 너머로, 기껏해야 천막 아래서 잠깐, 보고 들었을 뿐인데도 비참했다. 참혹했고 환멸스러웠으며 모욕감이 들었다. 그중에 무엇도 용납할 수가, 받아들일 수가 없는데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이 정확히 무엇인지 그때도 지금도 설명할 수 없다. 차마 설명할 수 없던 감정은 내 안 어딘가에 고스란히 남았다. 그게 남아서, 그래서,
차단했다. 이태원 참사에 관한 모든 이야기들을.
보지 마, 듣지 마, 읽지 마. 감당할 수 없을 거야. 너는 감당 못 해. 그러니까 눈을 감아, 귀를 막아. 아무것도 보지도 듣지도 읽지도 마.
내 안의 자기 보호 본능이 필사적으로 작동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이 내 감각의 셔터들을 악착같이 내려닫는 게 느껴졌다. 어리석고 비겁한 일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내가 모른다고 일어난 일이 되돌려지지도, 죽은 이가 살아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안다고 일어난 일이 되돌려질 리도, 죽은 이가 살아날 리도 없었다. 나는 나의 보호 본능에 저항하지 않았다.
이미 너무 많은 죽음을 보고 듣고 겪었다. 지긋지긋했다. 넌더리가 났다. 죽음이라는 거에. 너무 많이 죽고 너무들 죽어버려서 진절머리가 날 지경이었다. 죽음이라는 게 아주 간단하고 흔해빠져서 지나다 보면 발에 치이는 게 죽음이었다. 왜 이렇게 쉬운가. 죽는다는 게, 사람의 생이, 하나의 세계가 꺼져내리는 게 어째서 이다지도.
더는 어느 누구의 죽음도, 죽음의 지읒자도 듣고 싶지 않았다. 내 속 보이지 않는 어딘가가 영영 상하고 곪아버렸다는 걸 그때 나의 무의식은 알았던 것 같다.
나는 이태원 참사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최대한 무심하게 흘려버렸다. 무표정한 얼굴로 그것들을 내리고 밀어내고 지우고 닫았다. 나의 일상을 사는 데 전념했다. 일개 소시민으로 하루하루 어찌어찌 살아내다 보면 의무와 권한 가진 자들이 참사가 발생한 이유를 낱낱이 규명하고 책임자들을 처벌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체계적인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을 거라고…… 기대를 하기엔 이 나라를 알고 실망이 많았어서, 그저 바랐다. 제발 그렇게 해주기를. 최소한의 무어라도.
하지만 그런 일은, 그런 기적 같은 일은, 말 그대로 정말 기적이라서, 당연히도, 예상대로 일어나지 않았다.
2022년 10월 29일 할로윈을 즐기기 위한 사람들이 이태원으로 몰려들었다. 3년 만에 팬데믹 완화 조치가 이뤄진 터라 애초부터 많은 이들이 몰릴 것으로 예상되었고, 경찰 내부에서도 인파가 몰릴 것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지시와 보고서가 있었다.
당일에는 압사 사고 신고가 경찰에 여러 차례 들어갔다. 18시 34분 첫 신고를 시작으로 총 11건의 신고가, 사망자가 나오기 시작한 22시 15분부터는 100여 건의 신고가 접수되었다. 그런데 경찰 기동대가 현장에 투입되기 시작한 시각은 23시 40분.
그 사이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참사 현장 건너편 길을 지나 귀가했고 김광호 서울경찰청장도 용산 집회가 끝난 후 퇴근했다. 용산구청 직원들이 소음 및 불법 노점, 불법 주정차 단속을 위해 순찰을 나왔지만 사람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그냥 철수하는 등 기본적인 임무도 하지 않았다. 서울소방재난본부에서 경찰에 공동 대응을 두 번이나 요청하고 경찰이 현장 상황을 파악한 후에도 경찰의 움직임은 느리기만 했다.
경찰의 대응이 느렸던 이유에 대해서는 이견이 분분한데 중요한 것은 어느 누구도 자신의 책임이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군중 통제나 질서 유지는 경찰의 업무고 자신은 권한도 책임도 없다, 할로윈 행사를 구청에서 주최한 것도 아니다, 하나의 현상일 뿐이다,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것에 관해서는 자신이 신이 아니라 예측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사전에 대책 마련을 직접 지시했으면서도 경찰청도 손놓고 있지 않았느냐, 상황관리관이었던 류미진 총경이 일을 이렇게 할 줄 몰랐다고 말했다. 류미진 총경 역시 참사와 관련된 업무 규정이나 지침이 따로 없었고 상황팀장이 보고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책임을 떠넘겼다.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은 현장 직원들의 인식이 부족한 탓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동안 관용차 안에서 무전으로 아비규환의 현장 상황을 들었으면서도 무전 청취는 했으나 기억은 나지 않는다, 참사 인지 자체가 늦었다는 등의 앞뒤가 안 맞는 해명을 늘어놓았다.
재난 대응 주무장관인데도 대통령보다 늦게 보고를 받은 이상민 행정안전부장관은 당시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인 것은 아니다, 경찰을 미리 배치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는 식의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다. 사퇴하라는 요구에 누군 뭐 폼나게 사표 던지고 싶지 않겠냐고 되받았다. 야당이 해임건의안을 제출했지만 대통령에 의해 거부당했고, 국회에서 장관의 탄핵 소추안을 올렸지만 헌법재판소는 기각 결정을 내렸다. 이상민 장관은 아무 일 없이 업무에 복귀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시민분향소에 딱 30초 머물렀다. 그는 제대로 된 입장 표명도 사과도 하지 않았다. 유가족들이 그런 총리의 조문은 받고 싶지 않다고 했더니 그럼 그냥 돌아가겠다며 발길을 돌렸다. 외신과의 기자 회견에서는 웃으며 농담을 했고, 참사 현장에서 살아남았지만 친구들의 죽음에 괴로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희생자를 두고는 본인이 좀 더 굳건하고 치료를 받겠다는 생각이 더 강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참사 다음날 대국민담화를 통해 사고 수습과 후속 조처를 국정 최우선 순위로 두겠다고 밝혔지만 유가족들의 면담 요청을 연이어 거부하고 1주기 추모제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경찰은 538명의 관계자를 조사해 24명을 입건하고 23명을 검찰에 송치했다. 이중 박희영 용산구청장을 비롯한 6명이 구속되었지만 재판 과정에서 모두 보석으로 석방되었다. 박희영 용산구청장의 보석 사유는 참사 이후 충격으로 인한 불안장애와 공황장애. 현장에는 관심도 없던 자가, 제대로 대응이랄 것도 하지 않은 자가 불안장애와 공황장애로 괴로움을 토로했다는 뉴스를 보았을 때 코웃음이 났다.
그래, 이런 일을 맨정신으로 견딜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야. 그런데 당신이 왜? 뭘 한 게 있다고. 당신 책임도 아니라면서. 의무도 권한도 없는 자가 불안장애와 공황장애로 괴로울 정도면 유가족들은, 살아남은 이들은 어떨 것 같아? 희생자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헤아려본 적이나 있을까. 아마도 없을 것이다. 헤아려본 적이 있다면, 단 한 번이라도 희생자들을, 유가족들을, 살아남은 이들을 떠올렸다면, 설사 괴로워 미칠 지경이라도 감히 제 고통을 입에 올리진 못했으리라.
그렇게 1년이 지났다. 참사 1주기가 되도록 아무것도 밝혀진 것이 없다. 책임진 이도 없다. 처벌받은 이도 없다.
내가 이태원 참사를 마주하기까지 1년이 더 걸렸다. 파라마운트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크러쉬Crush]를 보았다. 마음의 준비가 충분히 된 것은 아니었다. 그걸 보고 아무렇지 않을 자신도 없었다. 하지만 한국에선 예고편도 볼 수 없다고 했다. 여기서 보아야 했다. 다큐를 보는 동안 자꾸만 물러나는 나를 여러 번 끌어다 앉혀야 했다. 생존자들의 증언이 이어질 때 나도 그들처럼 의식적으로 숨을 쉬려고 애썼다. 잊지 마, 숨을 쉬어야 해. 들이쉬고 내쉬고 들이쉬고 내쉬고……. 계속해서 숨을 쉬었다.
다큐멘터리를 보는 동안 나는 아무 일 없이 살아있는데 너무도 멀쩡한데, 나의 어떤 부분들이 속수무책으로 떨어져 나갔다. 나의 일부가 또 죽었다. 살아남은 이들 또한 오롯이 살아있지 못했다. 목숨을 잃은 친구들, 자신을 누르고 자신이 누르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가슴 치며 우는 이들의 일부 혹은 전부가 눈앞에서 상해가는 것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세계에 존재하는 누군가 죽을 때 그는 절대로 혼자 죽지 않는다. 그를 알고 사랑하는 이들도 함께 죽는다. 그의 죽음을 보고 들은 이도 함께 죽는다. 어느 누구라도 그렇다. 아무리 외로운 이라도. 오롯이 혼자 존재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에.
나는, 떨어져나가는 나의 일부를 기꺼이 떨구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세월호 참사 때처럼 이태원 참사를 두고 조롱하고 비난하는 목소리들이 많은 것을 안다. 놀러 가서 죽었다, 일하다가 생긴 일도 아니고 놀러가서 생긴 일, 자기들 스스로 자기 발로 즐기러 간 것, 나라 구하다 죽었냐, 자기 안전은 자기가 지켰어야지, 미리 피하고 조심했어야지, 누가 가라고 등 떠밀었냐, 지들이 좋아서 가놓고 왜 정부 탓을 하냐, 안전 불감증으로 난 사고, 책임을 따지면 거길 간 사람들 책임이 제일 크지 않냐, 유족들이 국가 상대로 돈 뜯으려는 걸로밖에 안 보여서, 참사 영업, 시체팔이, 참사 영업상이 활개치는 비극, 유가족이 난리만 안 피우면 다들 조용할 텐데, 시민사회단체의 횡령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 이게 다 정치적 공작이다……(믿고 싶지 않지만 모두 이 나라의 정치인과 시민 들이 뱉은 말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나는 이 말들에 어떠한 이의도 제기하고 싶지가 않다. 다만 그렇게 말하는 이들이라도 언제 어디에서고 안전하기를 빈다. 덧없이 다치고 죽지 않기를, 사랑하는 친구와 가족을 잃는 일도 없기를, 하여 유가족과 생존자 들의 심정을 이해하는 일 따위는 사는 동안 절대 없기를 바란다.
다큐 마지막에는 아래와 같은 문구가 떴다.
‘The South Korean government and the leadership of its police and fire departments decilned to be interviewd for this documentary.’
(한국 정부와 경찰, 소방당국의 책임자들은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이태원 참사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참사 희생자들의 명복과 유가족들의 평안을 빈다.
©다큐멘터리 이미지는 모두 [크러쉬Crush] 트레일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