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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헌 Oct 06. 2023

3. 웬만하면 누워 있는 와식생활자입니다

나는 정말이지 누워 있는 걸 좋아한다. 먹는 것도 노는 것도 좋아하지만 제일 좋아하는 건 누워 있는 거고 그보다 더 좋아하는 건 누워서 자는 거다. 팬더들처럼 인간도 누워서도 먹을 수 있었다면 그걸 가장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첫 소설책 『해녀들: seasters』 작가 소개에 ‘왜 나무늘보나 팬더로 태어나지 않았는지 의아한’이라고 썼는데 순도 100퍼센트의 진심이다. 전생에 죄를 지어 인간으로 태어난 것 같은데 그래서 다음 생에 나무늘보나 팬더로 태어나고 싶은가 하면, 아니. 나는 그냥 안 태어나고 싶다. 아무것으로도 존재하고 싶지 않다. 


나는 책도 누워서 읽기 때문에 책 읽으러 카페나 도서관에 가지 않는다. 무조건 집, 무조건 이불 속이다.

지금도 누워 있고 싶다. 하지만 한참 누워서 책 읽고 낮잠 한판 달게 자고 햄스트링 스트레칭까지 마친 참이다. 더 누워 있으라면 당연히 가능하고 더 누워 있고도 싶지만 내게도 일말의 양심이라는 것이 있다. 이 정도 먹고 이 정도 자고 쉬었으면 글을 좀 써야 하지 않겠나, 하는. 


이렇게 말하면 의무감으로 글을 쓰는가 싶겠지만 전혀. 글을 의무감으로 쓰지 않는다. 글이 아니라 무어라도 의무감으로 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좋아야, 내가 좋으려고 움직이는 사람이다. 이 글도 순전히 내가 좋아서 쓰고 있다. 누가 산문 같은 걸 쓰라 한 적 없고 내 글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편집자가 있는 것도 아니다. 역시 나무늘보나 팬더로 태어났어야 했다.      


꼭 필요한 때가 아니라면 나는 누워 있다. 밥 먹을 때, 글 쓸 때, 운동할 때가 꼭 필요한 때에 해당한다. 안 그래도 좋지 않았던 위장이 더 약해지면서 밥 먹고 소화시킬 때가 추가되었다. 역류성 식도염, 위경련, 위염, 위궤양을 두루 겪고 난 후의 일이다. 


밥을 먹고 양치를 하고 나면 글을 쓴다. 부지런해서가 아니오, 쓰고 싶어 미칠 것 같아서도 아니다. 글을 사랑하고 내내 쓰고 싶은 것과 밥을 먹고 난 후 곧장 책상 앞에 앉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이때의 글쓰기는 전적으로 소화를 촉진하는 활동이다. 밥 먹고 소화시키는 참에 글도 쓰자. 이거야말로 일석이조, 도랑 치고 가재 잡고, 이런 생각이다. 


그러고 보니 일석이조, 도랑 치고 가재 잡고 모두 동물권을 엄청나게 침해하는 표현이다. 돌 하나로 새 두 마리 잡아 좋은 것은, 도랑 치고 가재 잡아 좋은 것은 인간뿐이다. 이런 말들이 만들어졌을 때에야 동물권은커녕 사람 권리도 존중받지 못하던 태곳적일 테니 그러려니 하지만 이제는 이런 관용어구들을 다른 말들로 대체시켜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쓰는 사람으로서 고민해 볼 문제.      


쓰는 일은 엄청난 집중력과 에너지를 들여야 하기 때문에 두어 시간만 집중해도 금세 배가 꺼진다. 의사들은 최소 3시간 눕지 않기를 권하지만 저로선 최선을 다했습니다, 누구에게랄지 모를 변명을 하며 이불 속으로 들어간다. 책을 읽다 낮잠을 자고 깨고 나면 정신을 붙들어 오기 위해 가벼운 운동과 스트레칭을 한다. 물론 누워서. 


나는 누워서 할 수 있는 운동과 스트레칭 종류를 많이 알고 있다. 첫 번째는 발레 선생님이 알려주신 방법으로 다리를 마름모꼴로 만들어 복근으로 당겼다 풀었다 하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배에 힘을 주는 것이다. 다리나 어깨가 아닌 배의 힘으로만 다리를 움직여야 한다. 나는 유난히 복근이 약해 감을 못 잡고 엉뚱하게 목이나 어깨에 힘을 주곤 했는데 계속 하다 보니 요령이 생겼다. 배를 바닥에 붙인다는 느낌으로 당긴다. 억지로 허리뼈를 눌러선 안 된다. 무슨 운동이나 마찬가지지만 무리하지 않고 적절한 강도로 하는 게 좋다. 처음에는 30개도 채우기 힘들었는데 이제는 30개씩 3세트도 너끈히 한다. 


두 번째는 옆으로 누운 자세로 다리를 올렸다 내렸다 하는 사이드킥. 머리는 바닥에 대도 되고 팔을 괴어 세워도 된다. 그 상태에서 다리를 위아래로 움직이면 된다. 흔히 옆구리 운동이라고 하는데 엉덩이와 허벅지 힘을 기르는 데도 효과적이다. 다리를 높게, 많이 움직인다고 좋은 게 아니다. 정확히 외복사근과 둔근에 힘을 주면서 가동 범위만큼 올렸다 내렸다 해야 한다. 앞뒤로 움직이면 햄스트링 스트레칭 효과도 있다고 하고, 사이드킥을 서거나 사이드 플랭크 자세에서도 할 수 있다. 나는 그냥 위아래로 움직인다. 이거라도 하는 게 어디야, 라고 생각한다. 


세 번째는 조개 운동이라고도 하는 클렘셀이다. 구부려 접은 다리를 이름 그대로 조개 껍질처럼 벌렸다 오므렸다 하는 방식이다. 너무 간단해서 이게 무슨 운동이 돼, 의구심을 가질 수 있으나 해보면 안다. 이건 운동이다. 가볍게 50개씩 번갈아 가며 하기도 하고 30개씩 두 세트로 나눠서 하기도 한다.


네 번째는 무릎 대고 푸쉬업. 올해 목표가 푸쉬업 20개를 한 번에 하는 거였는데 상반기에 해냈다. 푸쉬업 20개를 바들대지 않고 가뿐히 해내는 게 하반기 목표.


3. 웬만하면 누워 있는 와식생활자입니다 (2)

이번에는 스트레칭이다. 여행 산문인데 왜 운동과 스트레칭 방법을 이렇게 상세히 설명하는지 모르겠네, 생각이 든다면 당신이 옳다. 나도 모르겠기 때문이다. 여행 산문이라고 해놓고는 누워 있는 게 제일 좋다고 하더니 갑자기 누워서 하는 운동과 스트레칭을 소개한다? 여행 산문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자고로 여행 산문이란 어디를 돌아다녔다, 어디를 가 봤더니 심히 보기에 좋았더라, 어디를 가느라 고생했다 씨익씨익, 어디어디를 가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 내지는 이렇게 하는 게 좋다 같은 유용한 정보와 감상들로 채워져야 마땅하지 않은가. 


여튼 스트레칭은 다리를 위주로 한다. 우선 다리를 높이 들고 발끝을 당겨준다. 레그 로어링이라고 하는데 명칭은 중요하지 않다. 나도 지금 찾아보면서 알았으니까. 운동은 아는 것보다 하는 게 중요하다. 물론 아는 것도 중요하다.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로 운동을 하면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정정한다. 운동은 아는 것도 하는 것도 중요하다. 


손으로 발끝을 잡아도 되고 요가링이나 밴드를 이용해도 되는데 나는 요가링을 사용한다. 요가링에 발끝을 걸치고 당겨준다. 그러면 굳어있던 햄스트링이 비명을 지르, 아니, 비명을 지를 정도로 무자비하게 당겨선 안 된다. 부드럽게 죽 늘려야 한다. 늘린 상태로 멈춘다? 아니다. 늘렸다 당겼다 반동을 준다? 안 된다. 늘린 상태에서 더더더더 늘린다는 마음으로 계속 늘려준다. 이게 다 늘린 건데요? 이렇게 말하면 발레 선생님은 단호히 외쳤다. 아니에요, 채헌씨! 더 할 수 있어요! 중요한 것은 할 수 있다는 마음. 


스트레칭의 기본은 호흡이다. 숨을 내쉬며 근육을 이완시켜줘야 한다. 후우 내쉬면서 당기고 그 상태를 잠시 유지했다가 풀어준다. 운동치료사 선생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근육이 이완되려면 같은 상태로 최소 10-15초 이상 머물러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고 매번 스톱워치를 켜는 건 번거롭다. 스톱워치도 없고 스톱워치가 없으면 휴대폰 시계 어플의 스톱워치 기능을 사용하면 되지만 그때마다 알람을 껐다 켜는 건 아무래도 번거롭다. 알람음을 짧게 반복해서 들어야 하는 것도 괴롭다. 아무리 알람이지만 왜 알람음은 그렇게 듣기 싫은 소리가 많을까. 알람이 되면 다 듣기 싫은 소리가 되어버리는 걸까. 이래저래 까탈스러운 나는 호흡수로 초를 대략 가늠한다. 심호흡을 한다고 했을 때 3, 4번 정도 하면 15초쯤이 된다. 정확한 건 아니고 그날그날 내 컨디션에 따라 또 달라지지만 인간사 다 칼 같을 수 없으니 대강 넘어간다. 


물리치료사 유튜버 선생님의 영상으로 얻은 토막 지식을 하나 더하자면 스트레칭을 할 때 늘리는 방향 반대로 힘을 주어야 제대로 스트레칭이 된다고 했다. 무작정 근육을 쫙쫙 늘리는 스트레칭은 근육을 다치게 할 뿐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전문 용어로 동적 스트레칭이라고 하는 모양인데 여기에 대해선 각자 알아보도록 하자. 약은 약사에게, 운동은 전문가에게. 그리고 어디까지나 이 글은 운동이 아니라 여행 산문이니까. 


보통 이 동작을 수직으로 세워서만 많이들 하는데 나는 이걸 다리를 180도 움직여가며 해준다. 이건 또 다른 발레 선생님 유튜브를 보다 배운 건데 다리는 수많은 근육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각 근육을 고루 풀어주는 게 좋다고 했다. 그걸 본 이후로 이렇게 하고 있는데 느낌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다리가 더 가벼워지는 것 같다. 스트레칭을 이유로 더 길게 누워 있을 수 있다는 장점도 빼놓을 수 없다. 


그 다음엔 4자 다리 스트레칭을 한다. 이건 명칭이 뭘까 싶어 ‘다리 4자 모양 스트레칭’이라고 검색했는데 ‘4자 다리 스트레칭’이라고 떴다. 레그 로어링이나 하다못해 사이드킥 같은 명칭과는 근본부터가 다른 이름이다. 너무도 친근하고 직관적이다. 레그 로어링을 해봅시다, 라고 하면 어리둥절할 수 있지만 4자 다리 스트레칭이라고 하면 그럴 틈이 없다. 본능적으로 다리를 구부려 4자 모양을 만들고 있다. 아주 바람직한 이름이 아닐 수 없다. 이걸 역시나 숨을 후 내쉬며 부드럽게 양쪽 번갈아가며 해준다. 엉덩이와 뒷허벅지에 자극이 오면 잘 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앞허벅지를 늘려주는데 앞에서 소개한 것들도 쉽지만 이건 정말 쉽다. 다리를 산 모양으로 세우고 양쪽으로 눕혀주기만 하면 된다. 이게 너무 간단해서 나는 응용 동작을 한다. 산 모양 다리를 눕힌 채 그 위를 다른 발로 지그시 눌러주는 것이다. 그러면 근육이 더 풀어지면서 고통도 배가되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이 고통이란 게 아프기만 한 게 아니라 시원한 쾌감도 안겨준다. 처음에는 고통의 비율이 높겠지만 할수록 쾌감의 비율이 높아진다. 인생도 이러면 좋으련만. 나는 발로 무릎부터 허벅지까지 자근자근 밟아준다. 

 

마무리로 기지개를 죽 켠다. 누워서도 켜고 옆으로 누워서도 켠다. 최근 발견한 건데 똑같은 기지개를 켜도 누워서 켤 때와 옆으로 누워서 켤 때 자극되는 지점이 다르다. 워터 이즈 웻, 지구는 둥글다. 당연한 소리를 했다는 걸 알고 있다. 


보통 이 정도가 와식 운동과 스트레칭 루틴인데 이걸 다 한 후에도 일어나기 아쉽다면 다시 옆으로 누워서 무릎을 구부린다. 발끝을 잡고 죽 당겨준다. 양쪽 번갈아 서너 번 심호흡을 한다. 그러고도 누워 있고 싶다? 그러면 일어나지 않는다. 책을 읽거나 좀 더 잔다. 일어나고 싶어질 때까지,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될 때까지 성실하게 누워 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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