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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로부터의 수기(II)

어떻게 읽을 것인가

by 김양훈 Mar 23. 2025


『러시아 문학의 넓이와 깊이

 : 주제로 읽는

  새로운 러시아 문학사 by 조주관


인간 존재의 수수께끼:
도스토옙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II)    
러시아 리얼리즘의 첫 번째 위대한 성공작은 도스토옙스키의 처녀작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이 작품과 도스토옙스키의 다른 초기 소설들 및 이야기들 속에는 이 새로운 리얼리즘과 고골과의 관계가 아주 명백히 드러나 있다. 그러므로 각각의 리얼리스트들에 관한 연구를 도스토옙스키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유익하다.     

반면에 도스토옙스키의 후기 작품은 동시대보다 훨씬 앞서 있고, 그 후의 사태 진전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으며, 훨씬 뒤에야 독자들에 의해 이해되었기 때문에, 러시아의 일반적인 문학사에서 도스토옙스키는 두 시기로 나누어 고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이유는 1849년의 유죄 판결과 추방으로 그의 문학적 경력에 나타나는 긴 단절 때문이다. -미르스키의『러시아 문학사』


어떻게 읽을 것인가?

『지하로부터의 수기』는 일인칭 화자의 독백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소설 전체가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제1부와 2부는 언뜻 볼 때 서로 다른 두 가지 이야기인 것 같으나 내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된다. 총 11개의 작은 장으로 이루어진 제1부가 인간의 본질에 대한 독백인 데 반해서, 약간 긴 10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제2부는 제1부를 받쳐 주는 이야기로서 주인공의 경험담이다. 소설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구성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이론과 주장을 먼저 말하고 나중에 그것들을 증명하는 순서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제1부가 1860년대의 이야기라면, 제2부는 1840년대의 이야기다. 1860년대 중반의 시사 문제가 언급되지만, 사건들의 시사성은 모호할 뿐이다. 제1부에서 주인공은 마흔 살의 나이로 인간의 본질에 대한 문제를 언급하며 독창적인 인간론을 늘어놓고 있다. 제2부는 주인공의 24살 때 체험으로, 앞에서 언급한 인간론을 증명하는 수사적 설명(경험담)이라 할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작품의 중요 부분인 제1부는 작가 자신의 내적 세계를 형성하고 있는 철학사상과 감정을 자유분방하게 토로하며, 소설 형식보다는 논쟁적인 담론으로 일관하고 있다.      


『지하로부터의 수기』는,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반박   

사실 이 작품은 당시 러시아의 혁명사상가인 체르니솁스키의 소설 『무엇을 할 것인가?』¹ 에 대한 반박으로 쓰였다. 그 당시 도스토옙스키는 모든 사회주의 사상을 증오하였을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이론에 의한 합리적 사회통제를 개인의 노예화나 개성의 유린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이 작품은 서술 순서대로 읽어도 무방하지만, 제2부를 먼저 읽으면 제1부에 대한 이해가 더 쉬워질 수도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40살의 지하인간(지하생활자)이 비록 16년 전보다 더 지각 있는 사람일지라도 24살 때와 동일한 문제를 가진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자기의 과거에 대한 분석은 현재의 자기 개성과 상황에 대한 분석과 똑같으며, 그러한 의미에서 인간의 본질과 조건은 역시 크게 변하는 것이 아니다.      


이 소설의 제1부는 무엇이 표현되고 서술되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표현되고 서술되었는가, 그 서술 방식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서술 방식을 통해 작가는 신경질이고 분노에 차서 좌절하며 지독하게 불행한 인간의 타성, 불결한 고백의 향연을 보여 주고자 한다. -('지하인간의 독백'에서 계속)         


[옮긴이 註]

무엇을 할 것인가?

1) 《무엇을 할 것인가?》(Что Делать?)는 러시아의 철학자, 언론인, 문학평론가 니콜라이 체르니솁스키가 쓴 1863년 소설이다. 하나의 혁명적 선전으로 당대의 급진적인 젊은 독자들과 후대의 혁명가들에게 지침이 되었던 작품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는 베라 파블로브나라는 젊고 똑똑한 중산층 계급의 여자가 잡계급(разночинцы) 지식인 출신의 로푸호프와 그의 친구 키르사노프를 만나 지적, 사회적, 혁명적으로 성숙해 가는 성장소설로, 꿈같은 이상향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가르쳐 준다.


누구나 열심히 일하고 사이좋게 이익을 분배해서 모두가 잘살게 되는 사회. 모두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영원한 봄과 여름, 그리고 영원한 기쁨을 누리는 사회. 이런 꿈같은 이상향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는 작품이다. 레닌이 러시아 혁명을 결심하게 만든 혁명가의 필독서다.

    

인간 본성이 선한지 악한지에 대한 논의는 아주 오래전부터 계속되어 왔다. 서양에서는 소크라테스나 루소가, 동양에서는 공자나 맹자가 인간의 본성은 지극히 선하며, 그 선은 타고나는 것이라 주장했다. 한마디로 인간은 생득적인 착한 성품을 지니고 태어나며, 인간이 악해지는 이유는 환경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와 똑같은 사고를 체르니솁스키의 작품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체르니솁스키는 인간 본성이 원래 선하며, 인간이 사악한 행위를 하는 것은 사회가 그에게 자신의 욕구와 능력을 만족하게 할 기회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사회가 개혁되어 배부르고 따스한 좋은 환경을 제공해 준다면 모두가 자신의 선한 본성으로 돌아가리라고 믿었다. 그는 낮은 차원에 머물고 있는 일반적인 민중이 쉽게 따라 할 수 있고, 그래서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는 안내서를 아주 자세하게 예를 들며 소개하기 위해 이 글을 썼다.  

   

《무엇을 할 것인가?》는 베라 파블로브나라는 젊고 똑똑한 중산층 계급의 여자가 잡계급 지식인 출신의 로푸호프와 그의 친구 키르사노프를 만나 지적, 사회적, 혁명적으로 성숙해 가는 성장소설이다. 이 작품에서 그는 1860년대의 세대들에게 다가올 미래에 있을 유토피아적인 청사진을 보여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 미래를 지상에 실현하기 위해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와 또 그 ‘무엇’이란 단기 목표를 어떻게 하면 성취할 수 있을 것인가를 등장인물인 ‘새로운 사람들’의 예를 통해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또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각각의 상황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등의 커다란 목표에 대한 해답뿐만 아니라, 식생활, 의생활, 결혼 생활, 삼각관계, 이익 분배 등 개인적·사회적 차원의 제반 문제에 관한 해답이 상세히 제시되어 있다.     


러시아 혁명의 시작부터 소비에트 정권이 붕괴할 때까지, 체르니솁스키는 혁명과 소비에트 정권의 상징이자 우상이었고, 1860년대 과격한 잡계급 출신의 인텔리겐치아들뿐만 아니라, 그 후의 모든 혁명가와 소비에트 러시아의 엘리트들에게 찬양과 감탄의 대상이었다. 그들에게 《무엇을 할 것인가?》는 문학 작품이라기보다는 하나의 혁명적 선전이었고, 목표와 목표 달성을 위한 행동 지침서였다. 그것이 작가 체르니솁스키의 의도였으며, 당대 급진적인 젊은 독자들과 후대의 혁명가들도 작품 속 등장인물들을 자신의 모범으로 삼아 그들의 행동 방식과 사고방식을 모방하고자 노력했다.     


18세기 이후 러시아 문학계를 주도한 귀족 작가들이 보여 주었던 ‘잉여 인간’의 전통을 확립한 카람진의 《카람진 단편집》, 이러한 ‘잉여 인간’에 반박하여 ‘새로운 사람’들의 이상적인 모습을 제시한 체르니솁스키의 《무엇을 할 것인가?》, 그리고 이 《무엇을 할 것인가?》의 이상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한 도스토옙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을 함께 비교해서 읽어 보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이 될 것이다. <위키백과>

Nikolai Gavrilovich Chernyshev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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