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집이 경매에 넘어갔다고요?!
"고객님 혹시 집이 경매 넘어갔는데 알고 계세요...?"
은행원의 말 한마디가 거대한 서막의 시작이었다. 보증금 증액 없이 간단히 계약 연장을 하게 되어 마음이 가벼웠었다. 이어서 전세대출 연장도 신청했는데 은행 측에서 물건지 확인 과정에서 내가 살던 건물이 경매에 넘어간 사실을 파악하게 됐더란다.
집주인은 수차례 무의미한 약속을 반복했지만 그 때만 해도 곧 잘 해결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믿음은 점차 그 힘을 잃고 시간 또한 기약 없이 흐르기만 했다. 결국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 할 때임을, 정신줄을 꽉 붙잡고 문제를 마주해야 함을 깨달았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전세사기 피해가 사회적으로 주목받기 전이었기에 정확한 대응 방안을 알아볼 곳이 없어 막막했다. 무엇보다 가장 걱정하고 안타까워하실 부모님이 신경 쓰여 혼자 끙끙 속앓이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나를 가장 괴롭게 한 것은 '자책감'이었다.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삶을 살기 위해 부단히 애써온 내가, 어디서든 똑부러지고 꼼꼼하다는 평을 듣던 내가, 이런 사건을 겪는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문제의 원인을 집요하게 되짚다가 결국 비난의 화살은 나 자신을 향했다. '부동산에 대해 더 꼼꼼히 잘 알아봤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타인에게도 절대 쓰지 않는 한심하다는 말을 나에게 하게 되었다.
그 집은 나에게 참 많은 추억을 만들어준 공간이었다. 친구들이 때때로 집밥 먹으러 찾던 식당으로, 사촌들과 술 마시고 떠들던 아지트로, 사랑하는 이와 같이 함께 퇴근하고 들어오던 우리 집으로, 코로나 시기에는 나만의 사무실로... 나의 30대를 풍요롭고 풍성하게 채워준 곳이었다. 그리고 그 충만한 행복을 조금만 더 누리고 싶었건만 나의 욕심이었나 보다.
이제, 그 모든 것을 송두리째 앗아갈 것이라고 말하는 태풍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