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뜻하게 시작한 퇴사

시작은 좋았으나...

by 쇼니

아주 산뜻하게 퇴사라는 답을 내렸다.


보통은 밤잠을 설칠 만큼 고민하다 주변 지인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심사숙고 끝에 결론을 내린다. 그러다 내가 말로만 듣던 답정너는 아닌지, 반대로 습자지처럼 귀가 얇은 것은 아닌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퇴사 고민은 원점에서 생명력을 얻는다. 반면에 나는 별다른 장애물 없이 튜토리얼을 한 단계씩 따라가듯 단순 명료하게 결정을 내렸다.


사실 나는 충성심이 깊다고들 하는 공채 신입사원 출신이었다. 본래 내가 속한 조직과 공동체에 애정과 헌신이 깊은 성격이기도 하고 회사는 여러모로 좋은 회사였다. 첫째, 취준생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소위 '엄마, 아빠가 들으면 알만한' 회사로 사회적 안정감을 체감할 수 있었다. 둘째, 저연차 사원에게도 담당 제품에 대한 명확한 오너십을 보장하여 실전을 통해 폭넓게 경험하고 빠르게 업무를 습득할 수 있었다. 셋째, 너그러운 시선으로 지켜봐 주신 팀 선배님들과 공동의 목표를 위해 기꺼이 함께 움직이는 프로젝트 동료들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나도 조금씩 성장했고 자연스레 담장 밖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비슷한 직무의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일하는지, 어떤 역량과 스킬을 갖추고 있는지 알게 되면서 나의 부족함이 눈에 들어왔다. 또한 회사 안에서는 나름 인정받는 편이었기에 나도 모르게 자기만족에 젖어들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그 덕에 내가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것을 자각하고 성장해야겠다는 결심이 생겼다.


그때부터 미래 유망 산업이나 혁신적으로 비즈니스를 풀어가는 곳들을 탐색했다. 내가 맡아온 제품이 기술적으로 성숙기에 접어들었고 시장의 변화 속도 역시 느려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 조직 개편 시점과 맞물려 담당 제품도 변경되었지만 그 변화만으로는 내 안의 갈증을 해소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퇴사를 결심했다.


그런데 갈 곳을 정해놓지 못했다는 것, 그것이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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