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용기는 또 다른 용기를 낳는다.
출발일이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점점 더 무거워졌다. 남편은 그런 나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비행기표, 취소하는 게 낫지 않을까?"
늦여름 장마처럼 오락가락하던 내 마음은 끝내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어느덧 출발 전날을 맞았다. 마지막으로 여행 가방을 정리하면서 몇 번이나 손이 멈췄다. 수영복을 넣었다가, 다시 꺼냈다가, 또 넣었다가. 가방을 닫는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수영을 하며 어느 순간 바닷속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꿈을 꾸었다. 투명한 물속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바다거북을 직접 본다면 어떤 기분일까. TV 속의 바다는 무지갯빛으로 반짝였는데, 실제로 보면 어떤 색을 띠고 있을까. 머릿속을 부유하던 그 생각들이 나를 덜컥 보홀행 비행기표를 예매하도록 만들었다. 실감 나지 않던 두려움은 출발 전날이 되어서야 선명한 실체가 되어 나를 짓눌렀다.
'내가 정말 할 수 있을까?'
무슨 객기로 남편 없이 아이 둘을 데리고 프리다이빙을 하러 가겠다고 했는지. 회사 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남편은 함께할 형편이 되지 않았다. 오롯이 아이들을 책임지고, 혼자서 바다로 들어가야 했다.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 쉽게 불안해지는 내 몸과 마음. 나는 오랜 시간 그것에 휘둘려 왔다. 하지만 수영을 배우며 내 몸을 믿는 법을 익혔고, 호흡을 조절하며 물속에서 평온함을 유지하는 법도 익혔다. 무엇보다 형체 없는 두려움은 계속 피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기에 나는 결국 바닷속으로 나아가기로 결심했다. 내 소망은 두려움보다 컸으며, 두려움을 마주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에.
"엄마, 우리 바다거북 보러 가는 거지? 신난다!"
"그럼, 가야지! 가보자!"
그리고 나는 엄마였다. 아이들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다. 두려움은 여전히 가슴 속에 웅크리고 있었지만, 꿈을 향한 마음이 한 발 더 앞섰다. 그렇게 나는 아이들과 함께 보홀행 비행기에 올랐다.
보홀에 도착한 첫날, 여전히 긴장 상태였다. 바다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지만, 발끝조차 물에 담그기가 쉽지 않았다. 막상 현실이 되니, 익숙한 불안이 올라왔다. 가슴이 조여 오는 느낌. 손끝이 저릿하고, 몸이 얼어붙을 것 같은 감각. 공황이 오려는 건 아닐까. 한때 나는 이런 순간마다 숨이 막혀 버렸다. 내 안의 두려움이 날 가둬 버릴 것만 같았다.
'여기까지 와서, 못 하면 어쩌지?'
아이들은 나보다 훨씬 가벼운 걸음으로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햇살이 수면에서 부서져 작은 보석들을 무수히 만들어냈고, 아이들은 수면 위로 올라와 햇살처럼 환하게 웃었다.
"엄마! 거북이 지나갔어! 빨리 들어와!"
내가 지켜야 할 아이들이 오히려 나를 다독였다. 심호흡을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용기를 내서 물속으로 첨벙.
몸의 긴장을 조금씩 풀면서 조심스레 물속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내 시야 속으로 천천히 유영하는 거북이.
햇살이 바닷속으로 스며들어, 거북이의 둥근 등껍질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거북이는 마치 시간을 초월한 듯, 조용하고 평온하게 움직였다. 숨을 멈춘 채 가만히 바라보는데,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토록 그려왔던 바닷속 세상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고요하고, 경이로웠다.
그 자리에서, 나는 수영을 시작하기까지 망설였던 여러 날을 떠올렸다.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강습을 결심했던 날. 수영장 텃세를 뚫고 꿋꿋이 나아갔던 시간들. 망설임 속에서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던 내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 모든 날이 쌓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는 사실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작은 용기들이 모여, 결국 나는 이 자리에 서게 되었다.
"엄마! 내일은 고래상어 보러 가자!"
"그래! 내일 가자!"
두려움을 넘어선 용기는, 또 다른 용기를 낳았다.
다음은 고래상어다.
다음 편은 공황장애가 프리다이빙을 만나다 2편으로 계속됩니다.
저의 이야기를 읽어 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작은 용기가 또 다른 용기를 만들어내는 하루 보내시길, 저 역시 그대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