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 강사에게 배운 삶의 지혜
치앙마이의 여름은 변덕스럽다. 작렬하던 태양은 어느 순간 자취를 감추고, 잿빛 구름이 사위를 어둡게 만든다. 이내 뜨겁던 공기가 순식간에 식더니, 빗방울이 열기를 누르며 우두둑 떨어진다.
"얘들아, 비가 너무 많이 와. 호텔로 들어가자."
"더 놀고 싶어. 엄마."
아이들은 비가 오든 오지 않든 개의치 않는 듯, 수영장을 휘젓고 다닌다. 조금 전까지 세상을 삼킬 듯 쏟아지던 비는 어느새 새침하게 멈춰 섰고, 아이들은 다시 눈 부신 태양 아래에서 웃음소리를 퍼뜨린다.
1m, 1.2m, 1.5m, 1.7m, 2.0m..
점점 깊어지는 물속으로 아이들이 멀어질 때마다 가슴이 움츠러든다. 아이들은 환하게 웃지만, 내 발끝은 얼음장처럼 차가워진다. 혹시 저 아이들이 내 손이 닿지 않는 곳까지 가버리지는 않을까?
"엄마, 걱정 마. 다리를 휘저으면 몸이 떠. 하하. 자유형으로 갈게. 엄마 거기 있어."
내 표정을 읽었는지 아이가 나를 안심시킨다. 쫄깃해진 심장을 미소로 애써 덮어보며 아이들의 유영하는 모습을 눈으로 따라간다.
언제부터 저렇게 자유롭게 헤엄칠 수 있게 된 거지?
"잘했어. 그래, 그래. 누가 더 빨리 도착하나 시합해 볼까?"
밤 10시. 벌게진 눈과 다소 굽은 등을 보며 그에게 쌓인 하루의 피로를 짐작할 수 있었지만, 피곤한 기색을 감추려는 듯, 아니면 떨쳐내려는 듯, 수영 강사는 가진 힘을 모두 쏟아내고 있었다.
작은 키에 다부진 몸, 서글서글한 인상.
가족 수영이 시작하던 첫날 그를 봤을 때, 단순히 아이들과 노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겠거니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그가 강하고, 따뜻한 사람이란 것을. 단순히 아이들에게 수영 기술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물을 대하는 법, 두려움을 극복하는 법을 함께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아이들은 그런 그를 잘 따랐다.
"쌤이 이겼다. 벌칙으로 한 바퀴 더 다녀오기."
노는 듯, 아닌 듯 아이들의 수영 실력은 선생님 덕에 나날이 발전했다. 밤 10시가 되기를 기다리는 아이들에게 수영은 그저 즐거운 놀이였다. 남편은 남편의 페이스대로, 나는 나의 페이스대로. 수영을 시작한 날은 같았으나 우리는 저마다의 속도로 물을 익히고 있었다. 그럴수록 수영 강사의 손길은 더욱 분주해졌다. 30대 초반의 그가 어찌 사람들의 속성을 금세 알아차리며, 인상 한 번 찌푸리지 않고 진심을 담아 대하는지 궁금해졌다.
"선생님, 수영은 언제부터 하신 거예요?"
"아, 실은 제가 잘하는 게 없었어요. 나이는 삼십이 다 되어가는데, 공무원 시험은 자꾸 떨어지고.. 답답해서 운동을 해볼까 하다가 수영을 배웠죠. 그런데 물이 너무 무서운 거예요. 포기할까 하다가 여기서 그만두면 저는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이 될 거 같았어요. 그래서 남들보다 더 노력했는데 수영 강사까지 하게 됐네요."
웃으며 말했지만, 그 미소 뒤로 그의 치열했던 날들이 어른거렸다. 처음 물에 뜨는 연습을 하며 발버둥 쳤을 모습, 포기하고 싶은 날들을 버텨낸 의지,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아이들에게 "한 바퀴 더 돌자"라고 웃으며 말하는 모습까지.
나는 문득 그에게서 삶을 대하는 겸허한 향기를 느끼고 잠시 숙연해졌다. 수영을 배우는 것처럼, 우리 삶도 그렇게 하나씩 익혀가면 되는 거겠지.
그는 최고의 강사였다.
태양은 여전히 강한 빛을 내뿜으며 수영장 물을 달군다. 아이들의 미소는 빛보다 따뜻하다. 이따금 새들이 날아와 수영장 주변에 고여 있는 빗물을 마시며 잠시 쉬어간다. 나는 모든 풍경을 마음으로 담고, 미소가 반짝이는 아이들과 눈을 맞춘다.
아이들이 물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모두 그의 덕이었다.
언젠가 아이들이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때,
나는 믿기로 했다.
스스로 부딪히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설 힘이
그들 안에 있다는 것을.
수영 강사가 내게 알려준 삶의 지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