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가락사고가 그 시작!?
높은 곳에서 발을 헛디뎠다.
착지를 잘못하여 엄지발가락이 반쯤 접혔다.
엄청난 고통이 찾아왔고, 엄지발톱은 나비의 날개처럼 간당간당하게 붙어 있다가 곧 힘없이 떨어져 나갔다.
당시 코로나19로 인해 한국에 다녀오는 것이 쉽지 않아, 중국의 종합 병원으로 갔다.
의사분께서는 발을 살펴보신 후 수술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
"네? 수술이요?"
깁스정도 하면 될 줄 알았는데 수술이라니... 불안이 휘몰아쳤다.
"바로 수술을 진행할 수는 없고, 먼저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음성 결과가 나와야만 입원 수속이 가능하고, 이어 수술도 가능합니다"
코로나 음성 결과가 나올 때까지 대여섯 시간 정도 격리실에서 기다렸다.
낯선 환경과 수술에 대한 초조함에 넋이 나간 사람처럼 허공만 쳐다보았다.
그러다 입원실로, 그리고 수술실로 옮겨졌다. 수술이 끝날 때까지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고 보름간의 입원이 시작되었다.
입원한 동안, 내 모습이 처량했는지 간호사와 의사분들 그리고 병실의 환자분들께서 따뜻한 관심을 전해주셨다.
세븐틴을 좋아한다는 간호사 분께서 한국인 환자는 처음 만나본다며 호기심 가득한 질문들을 건네기도 했고..
"한국 남자들은 세븐틴처럼 그렇게 잘생겼나요?"
의사분께서 따뜻한 말씀을 전해주시기도 하셨다.
"타국에서 병원 생활 하려니 많이 힘들지요?"
절뚝대며 화장실로 가는 내 팔뚝을 살포시 잡아주신, 같은 병실의 환자분도 계셨다.
'와, 이건 전우애 못지않은 환우애다!'
나의 고독을 나누어 져주신 그분들 덕분에, 혼자였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발가락 뼈는 다시 붙었지만, 새로 자라나는 발톱은 못생긴 모습으로 나를 괴롭혔다.
꾸역꾸역 자라나는 발톱이 엄지발가락 살을 눌러내며 마치 고집 센 풍선처럼 점점 튀어 올랐다.
게다가 발톱이 검게 변하기까지 하니 덜컥 겁이 났다.
이 고민의 해결 방법을 검색하던 중, 한 발마사지샵을 알게 되어 방문했다.
마사지사께서 문제의 발톱을 이리저리 보시더니,
"한 일 년 정도 꾸준히 치료받으면 될 것 같습니다. 발톱이 다시 정상적으로 자랄 때까지 무제한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가격은 총 800元(약 16만 원)입니다"
'병원이 아닌 발마사지샵에서 치료가 가능할까...'
우려도 있었지만 믿고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추가금을 내어 발마사지도 함께 받았다.
시간이 지나자 신기하게도 발톱이 정상적으로 자라나기 시작했고, 검붉었던 발톱도 원래 색으로 돌아왔다.
'도대체 그 비결이 무엇일까?'
발마사지의 과정은 즐거웠다.
엄지발톱에는 작은 고무장갑을 씌워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하고, 두 발을 따뜻한 물에 담근다.
곧 내 앞에서 소금 불쇼(!?)가 펼쳐진다.
불에 이리저리 화르륵 구워진 소금으로, 발 전체를 부드럽게 문지른다.
따뜻함을 품은 소금에 노곤해진다.
발바닥, 발등, 발가락, 종아리까지 혈을 꾹꾹 눌러주며 마사지를 시작한다.
처음에는 아파서 움찔움찔했지만, 발마사지를 받으면 받을수록 아픔의 강도가 점점 약해졌다.
그렇게 발마사지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었다.
발마사지를 받은 날에는 눈과 머리가 맑아진 기분이었고, 소화도 잘 되었으며, 꿀잠을 잤다.
치료 이상의 의미를 넘어 심리적, 정서적 치유를 받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이 매력을 가족과 나누고 싶었다.
내 손길로 직접 발마사지를 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멋진 선물이자 가족애와 유대의 연결고리가 되지 않을까!?
중국에서 발마사지를 배우고 싶었지만, 마사지 스쿨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흠.. 태국이 마사지 커리큘럼이 잘 갖춰졌다는데..'
발마사지 배움을 위한 여정을 위해 태국으로 10일간 떠나기로 결정했다.
태국의 치앙마이는 처음이라 두근두근 설레였다.
내 인생에 새로운 챕터를 여는 기분이랄까.
'어서와~ 치앙마이는 처음이지?'
발가락의 아픔이 없었다면 이 아름다운 여정을 시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는 고통이 아닌, 사랑과 연결의 상징으로 내 발가락을 바라본다. ^.^
** 대문사진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