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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nny Sep 24. 2023

노는 게 제일 좋아

마지막 캠핑

우리가 왜 딩크였을까?

둘이 훌쩍 놀기 좋아서. 둘이 하고 싶은 게 많아서였다.

결혼기념일은 꼭 여행 가고. 비 오는 날도 눈이 오는 날도 캠핑을 다니고. 평일에도 심야영화 한번씩 보러 가는.

그런 자유로운 생활.


주위에서 뱃속에 있을 때 부지런히 놀러 다니라는 말. 무슨 소린지는 모르겠지만 인생선배들의 말. 또 이런 말은 잘 듣고 싶어 지는 심리. 바다도 보러 가고 꽃구경도 다니고.

큰맘 먹고 캠핑을 계획했다!!


텐트는 혼자서도 칠 수 있는 남편과. 짐 싸기의 고수가 되어있는 나. 안정기라고 할 수 있는 20주 차이고 입병은 심해도 다른 증상이 크게 없었다. 무엇보다 담당 선생님의 허락. 우리는 간만의 캠핑에 설레고 있었다.


주말 1박을 생각했지만 노는 거에 진심인 남편은 금요일 연차까지 써서 2박을 계획했다. 일을 빼는 걸 싫어하는 난 금요일 수업을 포기할 수 없기에 수업 후에 따로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다. 어디서부터 문제였을까?

임신 전에도 한번 했던 스케줄이기에 가볍게 생각한 걸까?

원래 운전을 해서 출퇴근을 하던 난 차가 없이 남편이 캠핑장에 가는 길에 출근을 시켜줬다. 신나게 수업 후 버스를 타고 역으로 갔다. 배가 많이 나오지도 않았고 왠지 임산부 배지를 내밀기 민망하여 얼른 감추고 서서 갔다. 역에 도착해  기차시간이 한참 남은 걸 확인 후 저녁으로 먹을 만한 걸 사러 다녔다. 밥 담당은 집에서나 나와서나 항상 내 차지라 그 시간에 밥을 하기가 싫어서였다. 임신 전에는 이 정도로 걸었다고 해도 전혀 문제 되지 않을 양. 기차는 출발하고 두근대는 마음으로 남편과 연락을 했다. 도착하는 역에 마중 나오기로 했고 저녁 메뉴로 남편이 좋아하는 떡갈비를 먹자며 이야기를 했다.


분명 신이 나 있었는데 배가 조금씩 아파오기 시작했다. 뜨끔뜨끔 익숙한 위염의 느낌.

'자기야. 나 배가 아픈 것 같아'

'배고픈 거 아니야?'

'그런가?'

캠핑장에 도착할 때까지는 살짝 불편한 정도이기에 익숙한 위염이라 생각하고 저녁을 먹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도착해서 불편한 배를 움켜쥐고 저녁식사 준비.  준비라고 할 것 까지야 없지만 그냥 전자레인지에 데우는 정도? 추운 곳에서 밥을 먹으며 심각함을 인지했을 땐 이미 너무 늦은 상태였다. 데굴데굴 배가 아프다는 내 말에 그제야 주변 응급실을 검색하는 남편. 와우..... 이게 무슨 일이니? 위를 쥐어짜는 느낌에 너무 힘들었다. 캠핑장이 충청도였는데 근처 응급실은 짧아야 40분. 짐이고 뭐고 던져버리고 남편은 나를 태우고 운전하기 시작했다. 미리 전화를 해서 산부인과 의사가 당직 중이라는 희망적인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온 곳. 종합병원이라는 이름이 안 어울리게 작은 병원. 우린 이상함을 감지도 못한 채 서둘러 들어갔다. 아픈 배를 잡고 내 발로 걸어 들어가서일까? 생각보다 빠르지 않은 대처. 심지어 산부인과 담당의사도 느긋하신. 난 아파 죽겠는데 가진통 일 수도 있다면 자긴 해줄 게 없단다. 이게 무슨? 엄청 아픈데 꾀병인 것 같은 뉘앙스. 아무 조치도 받지 못하고 응급실을 나섰다. 이제 어쩌지? 남편은 어찌해야 할지 생각하지 못하는 상태. 그래, 내가 아프니깐 당황한 거라고 하자. 내가 직접 다니는 산부인과에 전화를 했다. 분만을 위한 야간 응급실이 있기에 여쭤보니 언제든 와도 좋다는 답변. 그 밤에 11시가 넘은 시간에 우린 예산에서 수원까지 다시 왔다. 남편의 차가 이륙을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배를 붙잡고 속도 줄이라며 무섭다고 울고 불고 병원에 도착했다.


당직 선생님의 진료로 주사와 약처방. 임신 기간에 겪을 수 있는 위경련 증세였다. 임산부에게 주는 약이라 극적으로 좋아지진 않았지만 마음이 위로되는 느낌으로 호전되는 기분이었다. 우린 집으로 돌아와 잠을 잤다. 그렇게 캠핑장으로 떠난 지 하루가 안되어 귀가를 했다.


다음날.

아직 남아있는 통증에도 짐을 챙기러 가야 했다. 너무 아쉬운 마음에 함께 가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의 출산 전 마지막 캠핑은 끝나버렸다. 그날 이후 캠핑장비는 곱게 정리해 학원 창고로 유배당했다. 언제가 아이와 함께 가게 될 날을 기다리며 무기한 봉인 되었다.



20주 차에도 가진통이 올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날 응급실에는 환자가 나 이외에 아무도 없었지만 아무 조치도 받을 수 없었다. 심지어 산부인과 담당 선생님도 나에게 해 줄 것이 없다면 가라고 했다. 내가 다니는 병원에 와서야 어떤 조치를 받을 수 있었고 왜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는지 병원에서도 의아해했다. 개념 없이 캠핑을 가겠다고 한 내가 문제였을 수도 그날 너무 무리를 한 것이 문제였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응급실에서의 냉랭한 반응과 대처는 아직도 마음에 상처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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