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anny Sep 16. 2023

임밍아웃

숨기려는 건 아니지만.

또 굳이 떠벌리고 싶지도 않았다. 남편과는 좀 더 천천히 어른들께 알리기로 했는데 잘 참아지지 않았나 보다. 친구들한테 단톡방에 알리더니 물어볼 게 있다며 시누이에게도 말해 버렸다. 아기 안 좋아하는 사람이 맞는 건지. 나의 심란한 마음과는 다르게 신이 나 보였다.


테스트기의 두줄을 확인하고 병원에서 임신 확인을 하고. 앞으로 계속 다니게 될 병원을 예약해서 기다리며 며칠 되지도 않는 사이에 주위에 웬만한 사람들에게는 다 알려버렸다. 애타게 기다리던 친정부모님은 의외로 적당하게 좋아하셨고, 시부모님은... 어머님은 우셨다. 본인이 기도를 많이 했다며 기도를 들어주신 거라고.

학원 선생님도 엄청 축하해 주시며 내 마음을 아는지 나부터 걱정해 주셨다. 내 걱정을 해주는 건 친구들과 선생님뿐. 모두 아기에게 포커스를 맞춰서 축하해 주었다.


제대로 병원에서 진찰을 받기로 한 날.

눈이 제법 내리 그날.

눈길 운전을 조심스레 하며 병원으로 갔다. 남편이 조심스럽게 운전한 손에 꼽을 만한 날 중 하루이다.

분명히 출산율은 바닥인데 병원은 엄청나게 미어터졌다. 이렇게 임산부가 많은데 저출산국가라니.

엄청난 대기를 묵직한 마음으로 버텨내고 드디어 내 차례!

친절한 직원들과 상냥한 의사 선생님. 그럼에도 불편한 내 마음.


임신이라는 당황스러운 상황과 임신인 줄 모르고 했던 여러 일들로 인해서 더 불편했던 것 같다. 사촌들과 여행에서 마신 맥주 한 캔. 건강검진에서 임신가능성 전혀 없다며 찍은 CT와 X-ray. 이런 것들이 약간의 죄책감이라는 이름으로 뱃속에서 뒤엉켜 꿈틀거리고 있었다.

담당선생님 말씀으로는 극 초기에 했던 것들이라 영향을 미쳤다면 이미 잘못되었을 것들이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켜 주셨다. 그냥 해주는 말인 것 같아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전에 급하게 갔던 병원에서와는 달리 여러 가지 임신에 대한 친절한 설명과 진료. 무엇보다 아기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밖에 내리는 눈이, 평소에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눈이 참 별로였다.

친정도 시댁도 가까운 우리는 연락을 드렸다. 진료 잘 보았다고. 친정부모님은 눈길이 위험하니 어서 집에 들어가서 쉬라고 하셨다. 신난 남편은 시댁으로 가자고 했다. 첫 진료 후에 간 곳이 시댁이라니.

결혼 후 시댁에 가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있었던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뭔가 더 잘해주시려 하시는데 잘 먹어지지도 않고, 마음은 여전히 불편했다.


마지막은 학원.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들킬 거라고 생각했다. 배가 나올 테니 숨길 수 없을 거라고. 사실은 하기 겁나기도 했다. 내 예상과 다르게 배는 너무 늦게 나왔고 6개월이 다 되어서 알려졌다. 그동안 연주회 1번을 치르고 유아수업은 수없이 했다. 묵직한 배를 보고도 사실을 알고도  등록하는 신규 수업에 당황스러웠지만, 감사하게 생각했다. 그렇게 임신사실을 모두에게 알리고 난 출산 전날까지 똑같이 레슨을 하고 집안일을 하고 강아지와 산책을 했다. 임신으로 인해 달라진 건 전보다 빠릿빠릿하지 못한 느낌뿐.

이전 01화 임신이라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