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불편하다고 현실이 바뀌진 않는다. 아니, 아기는 존재감을 확실하게 어필해서 날 정신 차리게 하고 있었다.
그렇다!
남들도 다 한다는 입덧. 그 흔한 임신 알리미가 나에게도 찾아왔다. 먹으면 소화가 안되고 안 먹으면 울렁거리는. 24시간 멀미하는 기분.
물론 진짜 멀미도 심해졌다. 남편이 운전하는 차는 20분을 넘기면 울렁울렁. 난 뱃멀미도 잘 안 하는 편인데 차멀미라니.
그래도 토하거나 아예 못 먹진 않았다. 막 미친 듯이 먹고 싶은 건 없어도 다양하게 생각났다. 단지 입이 짧아진 건지 한두 번 먹으면 끝.
임신을 인지한 순간부터 구운 고기는 생각만 해도 울렁울렁.
좋아하지도 않던 음식들부터 구하기 힘든 것, 먹으면 안 된다는 것들은 왜 자꾸 먹고 싶어 지는지.
한겨울 복숭아와 아이스크림. 팥빙수는 언제 나오는 거냐며 카페 투어. 밥은 안 들어가도 바나나 우유와 새콤달콤은 맛있고. 과일은 냉장고에 가득 채우고 먹었었다.
임신하면 입덧만 있는 줄 알았던 무지한 나. 극 초기에 허리가 아파서 잠을 설쳤었다. 남편은 허리는 배가 나온 산모들이 아픈 것 아니냐며 안 믿는 눈치였다. 임신하고 호르몬이 분비되면서 몸이 준비를 하느라 아픈 거라 했다. 이런 것 없이 넘어가는 사람들도 있고, 다 겪는 사람들도 있단다.
그냥 좀 믿고 공감해 주면 좋았을 것을.
이건 임신 때문일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입안이 전쟁이 났다. 원래 입병이 잘 나는 편이긴 했지만 이 정도는 처음이었다. 잇몸이 붓고(어금니 빠지는 줄 알았다.) 혓바닥은 징그럽게 찢어지고...
이비인후과 선생님은 영양부족이라고 하고, 산부인과에서는 그럴 수 도 있다는 말뿐.
입속 전쟁은 생각보다 오래가서 출산 후 1년이 지났지만 아직 100% 돌아오지는 않았다. 아직 맛이 잘 느껴지지 않고, 약간의 매운 음식도 못 먹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잘 못 먹은 탓인지 살이 거의 찌지 않고 배만 볼록 나와서 감사하게도 튼살은 생기지 않았다.
다음은 피부 트러블. 사춘기 때도 여드름과는 거리가 멀었는데 이게 웬걸. 이마와 두피가 불바다가 되었다. 이것도 호르몬 영향이라는데 얼굴이 정말 가관이었다. 기초화장품도 싹 바꾸고 샴푸도 바꿨지만 그때의 기분만 위로해 줄 뿐 효과는 1도 없었다. 머리도 짧게 자르고 화장도 거의 안 하고 다녔지만 그냥 자연인일 뿐. 모두가 애를 낳으면 다 없어지는 것들이라고 했지만 내가 듣기에는 그냥 짜증만 가중시킬 뿐이었다.
다음은 기초체온. 난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이다. 근데 갑자기 더워지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겨울이라 잘 못 느꼈는데 점점 개월수가 올라갈수록 열이 많이 났다. 남들보다 일찍 에어컨을 켜기 시작했고, 남편이 추워할 정도로 에어컨을 틀고 자는 날이 많아졌다. 이건 출산 후에도 100% 돌아오지는 않았다. 지금도 불타는 아줌마이다.
배가 나오기 시작하면서는 혼자만의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 같다. 똑바로 누우면 역류하는 느낌이고 옆으로 자면 다리에 쥐가 나고. 매일 밤 잠자는 것도 전쟁이었다. 워낙에 잠이 없는 편이지만 나중에는 하루에 2~3시간 잔 적도 많았다.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남들보다 더한 트러블은 없었던 것 같다. 수월하게 임신기간을 지낸 것처럼 보인다. 지금 생각해 보면 호르몬의 영향으로 더 힘들게 느껴지고 속상해했던 것 같다. 또 남들한테는 온갖 씩씩한 척은 다 하면서 버티지만 남편 앞에서는 와르르 무너지는데, 그걸 공감해 주지 못하니 더 서럽다고 생각했다.
세상 쿨한 여자처럼 굴었지만 뒤끝이 엄청난 사람이었다. 두고두고 되새김질하면서 서운한 걸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