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주 시인의 ‘푸르른 날’이라는 시가 생각나는 아침, 푸르름이 가득한 통일동산 살래길로 향한다.
몸의 몸을 가볍게 흔들며 구불구불한 길을 걷는다는 의미로 ‘살래살래’에서 따왔다기도 하고, ‘엉덩이를 살래살래 흔들며 걷는다’ 하여 살래길이 되었다고도 한다. 누구나 가벼운 마음으로 걸으라는 뜻일 것이다.
6시 새벽공기가 달라졌다. 이 여름의 끝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속삭이는 아침이다.
들머리는 통일동산 입구, 중앙공원 입구, 검단사 입구 세 곳인데 오늘은 중앙공원 입구로 시작한다. 입구에서 보이는 아파트는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동화 속 그림처럼 조용하고 평화롭다. 데크 아래로는 백일홍 꽃천지다. 빨강은 인연과 그리움, 노랑은 사랑하는 사람을 잊지 않겠다는 마음, 주황은 헌신, 흰색은 순결, 색마다 다른 꽃말을 가진 백일홍. 백일동안 지지 않고 인연을 기다린다는 애틋한 꽃말이 무색하게 방긋 웃음 짓고 있다.
데크길이 끝나면 본격적인 살래길 시작이다. 전나무, 소나무, 밤나무, 꿀밤나무 잎사귀가 울창하고, 매미들의 울음소리도 우렁차다. 그렇게 길을 따라 나도 엉덩이를 살래살래 흔들며 가볍게 걸어간다.
왼쪽으로 신세계 프리미엄 아울렛이 보이고 첫 번째 나의 눈을 호강시키는 포토존이 등장한다. 자유로가 넓게 펼쳐지고 임진강과 한강, 매주 토요일이면 걷는 공릉천에도 여름 내음 가득한 푸르름이 물결친다. 나만 누리는 이 시간의 특권, 이 풍경들! 한눈에 담고 싶어 풍경 사진도 한 장 남겨본다.
그렇게 내려오면 오른쪽으로 보이는 절이 파주의 천년고찰, 검단사이다. 봄이었다면 진달래 철쭉과 영산홍으로 뒤덮였을 길이다. 여름에는 푸르름 가득한 잎사귀들이 에너지를 뿜으니 사계절 눈이 즐거운 보배 같은 산책길이다. 두 번째 살래길인 검단사를 지나면 오두산 통일전망대와 만난다. 국가대표 축구팀의 트레이닝센터 NFC와 2011년 파주시와 파주농협이 출자해서 만든 파주 장단콩웰빙마루가 보인다. 이곳은 농업관광 플랫폼이다. 파주에서 재배한 장단콩을 이용하여 다양한 체험과 먹거리가 있는 ‘해스밀래’(해가+스며들다)라는 이름도 그럴싸하다. 카페, 음식점, 로컬푸드 마켓도 운영하고 있어 나도 일주일에 서너 번은 들리는 곳이다.
넓은 잔디밭에 줄지어 반짝반짝 윤기 흐르는 장독들을 보니 엄마표 된장찌개가 생각났다. 간절한 신호 덕분인가,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사이렌 수준이다. 허기가 걸음을 재촉한다. 유아숲 체험원을 지나 전망대로 향했다. 임진강 넘어 가깝지만 갈 수는 없는 북녘땅. 프로방스, 헤이리마을, 경기미래교육캠퍼스, 참회와 속죄의 성당도 한눈에 보이는 전망대에서 가볍게 스트레칭하고 이 길의 시작, 중앙공원으로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