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깡패 간호학과는 이제 없다
웨이팅의 방식은 조금씩 다르다. 우리 병원은 입사 순서를 알려줬고, 예상 시기를 알려주는 곳도 있었다. 어떤 것이 나은지는 모르겠다. 어차피 매달 일정 숫자가 불리는 것도 아니고, 예상 입사 시기는 하나도 맞지 않는다.
내가 추측했던 입사 시기는 9월이었다. 근 몇 년간 9월 안에는 모든 번호가 불렸다는 말을 들었다. 익명의 글은 믿을만한 것이 못되지만, 그 외엔 정보가 없었다.
잉크도 마르지 않은 내 면허는 한 작은 요양병원에 등록됐다. 5월에 퇴사를 선언 후 7월 말까지 근무했다. 그냥 한 달은 쉬고 싶었다.
매달 30명씩 입사를 시키던 병원은 입사자를 10명으로 줄였다. 이맘때쯤 예상 입사 시기가 이듬해 2월로 밀렸다.
애매하게 반년이 남아서 또다시 병원에 입사했다. 병원 전체의 유일한 의료인이 나였던 한방병원에서의 이브닝은 신규간호사인 나에게는 공포 그 자체였다. 환자는 아팠고, 병원에는 당직의가 없었고, 도움을 청할 다른 병동도 없었으나, 나는 방법을 몰랐다.
결국 두 달 만에 관뒀다.
그리고 의정갈등이 터졌다. 병원은 몇 달간 신규를 들이지 않았다. 기다리던 곳의 입사는 기약 없이 밀렸지만 더 이상 올라오는 공고가 없으니 별 수 없었다. 몇몇 곳에서는 채용 취소라는 단어가 들렸다.
나는 왜 합격 통보를 받자마자 취준을 멈췄을까. 그러나 후회는 늦었다.
운 좋게 대학병원에 단기 계약직으로 들어갔다. 두 달에 한 번 돌아오는 계약 연장 시기가 올 때마다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모른다. 이젠 더 이상 내 입사가 얼마나 남았는지, 언젠가 하긴 하는 건지 예상조차 할 수 없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2주 뒤부터 출근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합격했을 때보다 더 큰 축하를 받았다.
이때의 나는 기뻤나. 아니 조금은 화가 났다. 나는 이미 1년 반을 헤맸고, 내 앞에 100명이 남아있던 시점에 예고도 없이 불렸다.
그럼에도 미룰 생각은 하지 못했다. 지금 미루면 영영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집에서 첫 차를 타도 데이 출근은 지각인 병원. 덕분에 미리 구한 자취방에서는 1년 넘게 지출이 나왔으나 이런 불친절 앞에선 그게 나았다.
합격 통보로부터 2년
면허 취득 후로부터 1년 8개월
비로소 기약 없던 기다림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