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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바 May 27. 2024

[ep.4]제발 달리게 해 주세요

feat.2024 서울신문 마라톤

지난 5월 18일, 상암동 월드컵공원 평화의 광장에서 <2024 서울신문 하프마라톤> 대회가 있었다.

10km 부문에 출전해서 뛰었던 그날.

다른 사람의 배번호로 달렸던 그날의 이야기.




4월에 있었던 "2024 롯데 패밀리 수직 마라톤 대회 SKY RUN"은 이전 글에도 썼다시피 티켓팅 경쟁률이 어마어마하다.

등록일에 초시계를 켜고 00초로 넘어가자마자 신청버튼을 눌렀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로딩버튼이 나온 후..

"제품이 모두 판매되어..."

아... 땡 하자마자 신청했는데.. 허탈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매크로에 밀렸나 보다 하며 친구와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친구가 다시 했더니 신청이 된 것 같다는 카톡이 왔다.

많은 인원이 한 번에 몰려 서버에 문제가 생긴 듯했고, 그 사이에 잠시 신청이 되는 시간이 있었던 것 같다.

콘서트나 뮤지컬 티켓팅을 해봤어야 알지... 

역시 모든 경험은 소중해...

올해 다시 한번 계단을 오르며 작년에 실수했던 부분을  보완해서 오르고 싶었는데 너무 아쉽다.

이 대회는 취소표조차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뭐라도 해봐야 할 것 같은 아쉬운 마음에 문의 게시판에 글을 남겨본다.

"저는 작년 스카이런 대회 사진 홍보기사에 나온 참가자입니다. 정시에 신청했지만 서버가 어쩌고 저쩌고.."

작년에 같이 뛰었던 친구가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이라며 보내준 기사, 올해 대회의 홍보기사에 내 사진이 나왔더랬다.

기사 사진을 첨부하며 온정에 호소해 보았다.

기사 출처 : 문화경제

한 시간여 동안 무한 새로고침을 하며 행여나 신청이 될까 기다려봤지만, 신청버튼은 이내 매진으로 바뀌었다.

문의게시판에는 복사해서 붙여넣기한 주최 측의 똑같은 답변이 달려있다.

그래. 포기다.


11월에 있을 JTBC 마라톤은 신청을 해두었지만 그 사이 무언가 달려야만 할 계기가 필요했다.

혹시나 하며 당*마켓에 "마라톤"이라고 검색을 해보았다.

5월 18일에 있는 서울신문 하프마라톤을 양도한다는 글이 몇 개 올라와있었다.

아.. 이런 방법이!

심지어 원래 대회비보다 조금 더 저렴하기까지 하다.

옷은 110 사이즈 남자의 사이즈였고 입고 달릴 수 없게 컸지만 상관없었다.

판매금액의 절반을 송금하고, 배번호를 받은 후 나머지 금액을 보내기로 하고 대화를 마쳤다.

이번 달리기는 좀 더 잘 달려보고 싶은 마음에 인근에서 활동하는 마라톤 크루를 찾아 몇 번의 야외 달리기도 하며 본격적인 준비를 해나갔고, 대회가 약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통상적으로 마라톤 대회 구성품(의류, 배번호, 기념품 등)은 대회 약 일주일 전에 배송이 된다.

연락이 없던 판매자에게 먼저 연락을 했다.

"안녕하세요, 아직 기념품이 오지 않았나요?"

판매자는 그제야 오늘 받았다며 지금 가지러 올 수 있냐고 한다.  밤 10시가 넘은 시각, 시원하게 맥주를 들이부은 후였다. 남편도 회식이다.

"지금 당장은 가기가 어려운데, 내일은 안되시나요?"

판매자는 지금밖에 시간이 안되고 내일은 외국에 출장을 간다고 하며 편의점택배로 보내겠다고 한다.

대회는 토요일, 대는 화요일 밤.

판매자는 대회 전까지 무조건 도착한다며 자정이 가까워오는 시각에 택배를 접수다. 택배사진도 보내준다.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대회 전날이 되었다.

배송조회를 아무리 눌러봐도 집 앞 편의점에 택배가 도착했다는 메시지는 오지 않았다.

금요일 밤 9시. 내일 아침 상암동 대회장까지 가려면 늦어도 6시 30분에는 일어나야 하는데.

대체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지..

편의점 점주님께 배송상태를 여쭤봐도 내일까지 도착하긴 어려울 거라고 하신다.

나 내일 대회에 나가지 못하는 건가?

그동안 내가 준비한 시간은 뭐였던 거지?

진짜 못 뛰는 거야?

포기가 되질 않는다.

편의점 앞에서 새하얘진 머리로 발만 동동 구르다 혹시나 하며 다시 검색을 해보았다.

'마라톤 양도'

세상에, 글이 2개나 있다. 아직 팔리지 않은 양도글이!

밤 11시 두 사람 모두에게 채팅을 남겼고, 한 명의 판매자와 연락이 닿았다.

멀지 않은 사당역에서 11시 30분에 만나기로 하고 시동을 걸었다. 맥주를 마시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가.


소중해, 내 배번호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을 붙잡고

"아니 제가 양도를 받았는데 택배가  와서요.

저 연습 많이 했는데 어쩌고 저쩌고.."

궁금하지도 않을 이야기를 허공에 흩뿌리고 배번호를 받아왔다. 내일 아침의 대회를 위해 일찍 자고 피로를 풀어 컨디션 관리를 해야 했지만 그게 다 무엇인가.

내일 뛸 수 있다는 사실만이 내 머릿속을 그득히 채웠다.

너무 화가 났고 너무 피곤했고 너무 기뻤고 너무 행복했다.


5월 18일 아침.

남편이 월드컵공원까지 바래다주었지만 피곤은 가시지 않았다.

그날의 10km 기록은 58분 56초.

3월 동아마라톤 대회 때보다 3분 이상 더 늦어졌다.

연습도 더 열심히, 체계적으로 많이 하며 준비했지만 되려 페이스조절에도 실패하며 목표로 한 기록을 경신하지 못했다.

이건 분명 늦어진 택배 때문이다.(라고 정신승리를 해본다.)

장인은 연장을 탓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저는 아직 그저 마라톤 하수일 뿐인걸요..

더 잘 뛰고 싶었는데..




지나서 생각해 보면 내가 참 우습다.

사실 뛰는 게 좋아 뛰고자 하는 거였다면

대회가 아니어도 상관없지 않은가.

하지만 당시엔 오로지 대회에 나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고, 기어코 나가고야 말았다.

핸드폰을 부여잡고 당*을 뒤지며 찾았다고 기뻐하는 나를 보며 남편이 애들에게 놀리듯 했던 말이 생각난다.

"너희 엄마를 봐. 누가 돈 준다는 것도 아닌데 자기 돈 들여서 저렇게 열심히잖아. 너희도 엄마처럼 열심살아야 해!"


나 참 열심히 산다. 열심히 달린다!!

그리고.....

앞으로 내 인생에 양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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