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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바 May 30. 2024

[ep.5] 누구나 맘속에 한라산 하나쯤 있지

너와 나의 버킷리스트

제주도는 1년에 한두 번쯤 꼭 여행을 가는 곳이다.

코로나의 기세가 약해질 무렵 즈음에는 더욱 자주 갔던 것 같다.

그곳에서는 주위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옷과도 같았던 마스크를 벗어던질 수 있었으니까.

대학교 3학년 때 친구들과 함께 MT 답사를 하겠다며 갔던 때가 첫 제주도 여행이었는데, 몇 년 전까지도 한라산에 올라야겠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전까지 산은 내게 '내려올걸 왜 올라가야 하는지 알 수 없는 곳'의 대명사일 뿐이었으므로.

그런 내가 2023년 4월,

한라산 정상에 올라 백록담을 두 눈에 담았다.




"산에 가고 싶다~"

회사 동기들과 대화를 하다 나온 이야기. 파워 J인 친구가 만 하루 만에 비행기와 숙소 예약까지 마쳐버렸다. 역시 추진력으로 무장한 사람이 있어야 흐릿하던 소망이 명징한 실행계획으로 바뀔 수 있다.(김미녀 최고야!)

토요일 새벽 9호선 급행열차에 붕 뜬 몸과 마음을 싣고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아침 첫차를 타보면 세상에 부지런한 사람들이 참 많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그 토요일의 공항은 마치 서울사람들 모두 출국을 하는듯한 번잡함으로 가득했다. 체크인을 하는 데에도 꽤나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렇게 새벽댓바람부터 여행에 진심인 사람들이 많구나 하며 한 시간 남짓의 비행을 마쳤다.


1박 2일, 목적지는 오직 한라산 너뿐이야.

아침 첫 비행기로 제주도에 도착한 후 다음날 저녁 비행기로 서울로 다시 돌아오는 스케줄이었다.

고만고만한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워킹맘들에게는 이 건조한 일정조차도 꿀단지 같은 달콤함 그 자체였다.

빠지면 섭섭할 예쁜 카페에 들러 눈으로 바다를 마시듯 커피를 마셨다.


카페라고 쓰고 그림이라 읽는다


다른 관광지는 1도 없는 담백하기 그지없는, 한라산 하나밖에 없는 이 여행에서 유일한 사치는 커피숍이었다, 두 군데나 갔으니. 꾸덕한 케이크에 커피를 호로록 마시다 보니 해가 뉘엿뉘엿 저문다. 이제 숙소로 갈 시간!

내일 아침 등반을 위해서는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했기에 저녁은 숙소 아래에 있는 고깃집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친구가 이미 와본 적이 있는 검증된 맛집.

드디어 '흑돼지'를 영접했다.

연기는 모락모락, 소주는 꼴깍꼴깍


"캬~~"

달디달고 달디단 소주와 맥주.

 잔을 꿀떡꿀떡 숨도 안 쉬고 들이켰다.

비로소 내가 지금 제주도에 혼자 와있다는 사실이 실감 난다.

가족과의 여행에서 제주도 흑돼지를 먹기 위해서는

우선 잘 달궈진 불판 위에 삼겹살을 한 번, 그리고 두 번 뒤집은 다음 먹기 좋게 종종종 썰어 줄을 세워둔 후

지글지글 된장찌개와 밥을 주문해 아이들의 배를 채워준 다음에야, 이마에 한번 닦고 노동을 위로하듯 모금 넘기는 먹어야 하는 음식이었는데..

오늘은 고기 한쪽 면이 채 익기도 전에 비운 잔을 다시 채워 한잔 더 들이킨다.

나 혼자 맞네~!!

콧노래 흥얼거리며, 감탄을 흥얼거리며

감사한 저녁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들어가 나대는 심장을 부여잡고 억지로 이른 잠을 청했다.




한라산을 오르는 코스는 2가지가 있다고 한다.

성판악 코스와 관음사 코스.

성판악 코스는 제주도 동쪽에서 백록담까지 이어진 코스로 경사가 완만한 편이며, 관음사 코스는 북쪽에서 백록담까지 이어진 코스로 계단이 많은 편이라고 했다.

두 코스 중 볼거리가 더 많은 코스는 관음사 코스.

이왕 볼 거라면 더 예쁜 걸로 봐야지!

우리의 선택은 볼 것도 없이 관음사 코스였다.


아침 6시. 김밥 맛집에서 새벽같이 밥도 먹고 올라서 먹을 김밥도 포장해서 한라산으로 향했다.

총 8.7km, 편도 5시간 관음사 탐방로 대등반이 시작되었다.


드디어 출발이다!


듣던 대로 관음사 코스는 눈이 즐거운 탐방로였다. 계단도 제법 많았지만 한라산 등반을 위해 천국의 계단으로 미리 다리를 웜업 시켜놓았던 덕분인지 생각보다 크게 힘들지 않았다.

힘들면 뭐.  쉬엄쉬엄 올라가면 되지...

하지만 우리는 기어코 편도 5시간이라는 안내문 시간보다 더 빠르게 정상까지 오르고야 말았다.

이 운동중독자들 같으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등반이 끝난 순간.

구름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을 담은 백록담이 시야에 들어왔다.


세상에. 백록담. 심봤다.


3대가 덕을 쌓아야 백록담을 볼 수 있다고 하세간의 말은 거짓인 듯싶었다.

심지어 호수에 물도 예쁘게 담아놓고는  이보라는 듯 고운 자태를 자랑한다.

나는 대체 덕을 얼마나 쌓은 거야!

멀리 찍고 가까이 찍고 줌 당겨 찍고 셀카 찍고

백록담을 하나라도 더 담으려 핸드폰을 이리저리 굴려 사진을 찍었다.

세상 사람들~
저 한라산 꼭대기에서 백록담 봤어요~!!


하산은 오를 때보다 시간이 더 단축되었다.

급한 용무를 해결해야 하는 인체의 신비는 없던 힘도 솟아나게 해 주었다. 스틱을 요리조리 짚으며 안전하게 출발점까지 다시 내려왔다.

한라산 등반에 소요된 시간은 총 8시간 20분.

이렇게 내 버킷리스트 하나에 빨간색 동그라미 하나가 더 그려졌다.




남편은 내가 한라산에 가겠다고 하자 짐짓 만류하는 눈치로 툭 건네듯 얘기했다.

"내가 가봐서 아는데, 보통의 등산을 생각하고 덜컥 가는 데가 아니야."

아. 에너지 뱀파이어가 바로 옆에 있었네.

한 번은 아버님과, 한 번은 친구들과 다녀왔던 남편의 한라산 등반은 무척이나 힘들었었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두 번 다 아이젠을 끼고 가야만 했던 한 겨울의 등반이었다.


"나 준비 열심히 했어! 내가 아마 오빠보다 운동 더 많이 할걸?"

행여 가지 말라고 만류할세라 얼른 말을 끊고 나서서 가겠다는 의지를 더 굳건히 내보였다.

내 인생 첫 한라산 등반은 이보다 더 훌륭할 수 없었고 소중했으며 아름다웠다.



누구나 마음속에 한라산 하나쯤 품고 살지 않나요?


다리가 떨리지 않고

마음이 떨릴 때

어서 떠나세요!

한라산이 "잘 왔어" 하고 반겨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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