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을 보다가 엊그제 열린 서울레이스에서 PB를 했다는 크루원의 피드를 보았다.
며칠이 지난 아직도 아드레날린이 뿜뿜 샘 솟아나고 있겠지, 피식 웃음이 지어졌다.
축하한다는 댓글을 달자 이내 댓글이 달렸다.
'심바님도 어서 러닝 다시 즐기셔야죠!'
근래 무쇠소녀단을 보며 러닝머신을 달리느라 야외러닝을 한참 하지 못했다. 약간의 런태기가 온 것도 같고..
에너지 가득한 피드에 나도 모르게 댓글을 썼다, 내일 달리겠노라고. 그렇게 공약(?)을 해야 나는 나가서 달릴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3분의 1이 연휴로 지나가버린 10월엔 유독 비가 많이 왔다. 화창한 날을 좀 더 좋아하는 나와 아이들은 오늘 아침 블라인드를 올리고 탄성을 질렀다.
"해가 났어!!!"
복싱대회 결승을 남겨둔 무쇠소녀들이 너무나 보고 싶었지만, 내가 어제 내지른 댓글이 있었으므로 나는 무조건 바깥으로 나가야 했다. 분명 달리고 나면 매우 행복할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마음을 먹는 건 쉽지 않았다.
댓글이 나에게 운동복을 갈아입히고, 운동화를 신겨주었다. 나가야지!
오늘의 코스는 < 길치 코스 >.
https://brunch.co.kr/@simba/36
고민 없이 앞으로만 쭉 달리면 되는 그곳으로 달려보자!
호기롭게 워치를 켜고 러닝을 시작했다.
5분 20초와 30초를 왔다 갔다 하던 페이스는 이내 느려졌다. 이상하다.
어제저녁 러닝머신으로 5km 긴 했지만 5분 20초 페이스를 너무 가볍게 달린 터라 오늘 왠지 잘 달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벌써 다리가 이렇게 무거워진단 말인가.
음 그렇다면 초반에 오버페이스 하지 말자, 5km쯤 달리고 나면 몸이 풀리겠지.
하지만 당연히 몸은 풀리지 않았고 10km를 지나서는 급기야 뛰다가 멈추기에 이르렀다.
느릴 대로 느려진 페이스였고, 지난번 길을 더듬어가며 뛰었을 때도 멈춘 적은 없었는데...
하지만 이 멈춤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꽤나 여러 번 반복되었다. 아주 조금 속상했다.
목표는 롯데타워까지 달려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아이쇼핑까지 하는 것이었지만 오늘은 잠시 접어두고 강변역까지만 마지막 힘을 쥐어 짜내 달려 러닝을 마무리했다.
역 안에 있던 편의점에서 생수를 한 병 사서 타는 목마름을 해결하고 이내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에 올랐다. 땀냄새가 날까(분명히 났을 거다) 비어있는 자리에 앉는 대신 문 앞에 서서 흩어져가는 바깥풍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연습은 하지도 않으면서 바라는 건 많았던 나를 돌아보며.
노력하지 않으면 더 잘 달릴 수 없다는 것을 알 때도 됐잖아, 하고 맘 속으로 삼키며. 동시에 꾸역꾸역 그래도 결국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렸네 잘했어하고 속상한 나를 달래주었다. 아까 그 속상했던 마음이 얼마간 누그러졌다.
어쨌든 오늘 달렸으니 이제 또다시 달리면 된다, 그뿐.
더 깊은 자책이나 고민은 하지 말기로 하자.
대신 그냥 운동화를 신고 나가자,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