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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 응원하라 한 번도 소리치지 않은 것처럼

by 심바

지난 9월 말 참가했던 어느 마라톤 대회에서 미흡한 운영에 너무 큰 실망을 한 기억이 있다. 물론 이제까지 참가했던 크고 작은 대회들 대부분 어느 부분들은 마음에 차지 않은 부분들이 있었다. 하지만 역대급으로 잘못된 운영을 보여준 그 대회 이후로 어느 곳에도 참가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사실 이젠 신청조차 너무 어려워진 지 오래. 지난주 일요일에 열린 JTBC 마라톤 대회는 추첨제로 바뀌었고, 호기롭게 풀마라톤을 신청했었지만 당첨운은 나를 보기 좋게 비켜갔다.



내가 달리고 있는 러닝크루는 D2R이다. 동작역 2번 출구 러닝크루, 꽤나 직관적인 이름이다.

우리 크루에서 이번 제마(JTBC 마라톤을 줄여 '제마'라고 부르곤 한다)에서 처음으로 풀마라톤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32km까지 뛰어보았지만 지금 달리기력이 많이 쪼그라든 나에게 풀마라톤은 두려움 그 자체. 하지만 그들의 도전에 내 심장이 왜 바운스바운스 하는 건지. 크루에서 응원단을 모집하길래 잽싸게 지원했고, 25km 지점에서 응원해 줄 것을 명 받았다.






2일 아침, 며칠 전과는 달리 기온도 좀 내려간 데다가 바람이 제법 쌀쌀하다. 긴장하며 추위와 맞서고 있을 주자들이 걱정됐다. 작년 제마에는 10km로 참가했었는데, 엄청난 인파 속에서 덜덜 떨었던 생각도 아련히 떠올랐다. 단체 채팅방에 몸 잘 풀어주고 파이팅 하시라는 인사를 남기고 내가 가야 할 그곳으로 바삐 향했다.


출발지점에서 약 25km 떨어진 지점인 군자역에는 이른 아침부터 응원을 하러 온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마라톤의 백미 중 하나는 또 응원이 아니겠는가. 주로에서 달려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는 그것.


응원도파민


나는 왜 이 길 위에서 달리고 있나, 다리는 천근만근 왜 이렇게 무거워, 끝이 나기는 하는 건가 싶을 때 귓가에 들리는 응원의 소리. 그 순간엔 젖 먹던 힘이 솟아나 몸이 약간 가벼워지는 느낌도 든다. 길고도 지루한 레이스 속 한줄기 빛이랄까. 달렸을 때 응원이 내게 어떤 힘을 주었는지 알기에 이번 응원이 자못 비장해진다.

'오늘 저녁 내 목소리는 없다!!'

우리 크루는 매 5km 지점마다 응원단을 배치했다. 임무는 주자들의 사진이나 영상 촬영과 필요한 보급품 제공, 그리고 가장 중요한 파이팅 넘치는 응원. 우리나라 3대 마라톤 중 하나인 대회인 만큼 참여인원이 어마해 주자들을 놓치지 않고 찾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등록한 러너들의 움직임이 거의 실시간으로 보이는 앱을 보며 러너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매의 눈으로 살폈다. 동체신경, 이제 너의 몫이다!


그때 바로 옆 응원석에서 내가 너무 좋아하는 데이식스의 노래가 앰프로 크게 흘러나왔다.


워어어어어어어어

이것만큼은 맹세할게 내 전부를 다 바칠게

네 눈빛 흔들리지 않게 널 바라보면서 있을게


원근법을 무시하는 형광주황 잠바를 입고 팻말을 들고서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불렀다. 이 노래를 듣고 어찌 방방 뛰지 않을 수 있나. 풀코스 중 이제 막 중반을 넘어선 러너들에게 어떻게든 힘을 주고 싶어 최선을 다해 파이팅을 외치며 응원을 했다.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러너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기 위해 손을 뻗어 응원을 했고, 그날 거의 100여 명의 러너들과 축축하고 찐한 하이파이브를 했다. 손 시림을 방지하기 위해 러너들이 장갑을 끼기도 하는데, 오랜 시간 달린 그들의 장갑은 땀으로 푹 젖어있었다.


넋이라도 있고 없고 하며 방방 뛰고 있는데 누군가 어깨를 톡톡 친다.

"누굴 응원하길래 그렇게 열심히요?"

"아, D2R이요!"

"디투.. 뭐? 못 봤는데 유명한 사람인가 보네요~." (아 사람은 아니고 크루인데요 주자들을 찾아서 응원해야 해서요 하는 말은 더 드리지 못했다. 응원에 취해있는 와중이었으므로)


응원을 하지 말고 그냥 나가서 뛰어요, 잘 뛰겠네



혼자 한참을 웃었더랬다.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께서 나의 열과 성을 다한 응원을 알아봐 주신다.

러너들이 어떤 마음으로 달리고 있는지 너무 잘 알기에 한 순간도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김보통 씨 파이팅!!"

"달려달려! 집에 가서 삼겹살 먹자아~!!"

"슈퍼마리오 go for it!"

최대한 그들의 귀에 가닿을 수 있도록, 내가 달릴 때 듣고 싶었던 응원으로 최선을 다해 소리 질렀다.


응원을 하면 할수록 '나도 달리고 싶다'는 의지가 점점 끓어올랐다. 여러 번의 10km, 몇 번의 하프와 한 번의 32.195km를 달린 나에게 풀 마라톤에 대한 열망이 싹트게 한 이날의 응원. 러너들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할 수 있어 파이팅'을 외치고 또 외쳤다.






러닝붐 덕분에 마라톤대회가 빈번하게 개최된다. 큰 대회는 도로를 통제하고 사람도 많이 몰려 불편함을 느끼는 분들도 많을 것 같지만, 서로 조금씩 배려하며 성숙한 러닝문화가 정착되길 바란다.

내가 달리지 않더라도 한 번쯤 주로에서 응원을 해보는 경험을 해보시기를.


응원 말고 러너가 되라는 행인의 권유를 받을 수 있다.

무릎을 지키는 대신 목소리를 잃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러너들의 에너지와 열정으로 똘똘 뭉친 도파민을 선물 받을 수 있다!



응원하라, 한 번도 소리치지 않은 것처럼!

급히 적어나간 팻말 사..사.. 사진이 잘나온다
러너도 응원단도 모두 하나되는 소중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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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