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도시의 아침에는 비밀이 많다

# 다시만난 우리의 인연

by 전태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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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머리카락을 말리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드라이어 소리에 핸드폰 벨소리를 놓칠 때도 있다.

나는 핸드폰에 온전히 집중하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도 어김없이, 그녀에게서 걸려온 부재중 전화가 남아 있다.



동생은 한 번 전화를 걸고 다시 걸지 않는다.

내가 샤워 중이거나 머리를 말리느라 받지 못했음을 알기 때문이다.



벨소리가 울리지 않았어도 무심결에 휴대폰을 확인하면, ‘서지수’라는 이름이 떠 있다.

나의 유일한 말벗이자 마음을 터놓는 친구다.



나는 대학 졸업 후 곧바로 취직했고,

작년 이맘때쯤 사표를 낸 뒤 1년 가까이 휴식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20년을 몸담았던 직장에서 만난 동생은, 어느새 10년이 훌쩍 넘은 인연이다.

그녀는 신입사원으로 들어왔고, 나는 선배로서 함께했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입사 6개월쯤 되었을 때, 그녀는 미혼의 몸으로 다른 도시로 전근을 갔다.

그 후로 소식이 뜸했는데, 얼마 전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우연히 다시 만났다.

놀랍게도, 우리는 같은 단지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이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었다.



내 기억 속 그녀는 풋풋한 신입사원으로 남아 있었는데,

어느덧 출산과 육아를 마치고,

회사를 그만둔 후 남편의 사업을 경리 업무로 도우며 지낸다고 한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는 이 지역에서 꽤 고가에 속한다.

이곳에 거주할 정도면,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은 없어 보였다.



그녀는 남편의 사무실에 들르지 않는 날이면 거의 매일 얼굴을 본다.

분기마다 한 번은 부부 동반으로 식사를 하기도 한다.

우리 남편들끼리도 잘 통하는 덕에, 어울릴 때 편안함이 크다.



결혼할 당시 그녀의 남편이 꽤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도둑놈 같았다니까요.” 그녀는 웃으며 말하곤 한다.



맛있는 음식이 생기면 언제든지 서로 부른다.

점심을 함께하고, 커피를 마시고,

일주일에 한 번쯤은 드라이브를 겸해 맛집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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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은 성격이 활달하고 목소리도 크다.

반면 나는 조용한 편이다. 말도 적고 목소리도 낮다.


만남도 보통 그녀가 먼저 연락해온다.

나는 특별한 일이 아니면 먼저 전화를 걸지 않는다.

동생은 그런 내 성향을 잘 알고 있기에 더욱 적극적으로 다가온다.

나는 혼자서도 잘 지내는 사람이지만, 그녀는 그렇지 않다.



그날도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시골에서 맛있는 걸 가져왔으니 오라는 것이다.

알겠다고 답하고는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뒤 집을 나섰다.

나는 0동, 그녀는 0동, 사실상 금세 도착할 거리다.



단지가 여의도공원만 한 것도 아닌데, 초인종을 누르기도 전에 현관문이 활짝 열려 있다.

항상 내가 잔소리한다.

“여자 혼자 있는데 현관문을 열어놓으면 어떡하냐”고.

그러면 그녀는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강도가 들어와도 언니가 경찰보다 빨리 도착할 것 같아서 그래요.”

정말, 웃음이 절로 나온다.



집 안으로 들어서면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녀의 남편은 인테리어 사업을 하는데, 직원도 여러 명이고 매장도 운영 중이다.

그녀가 착용한 목걸이나 팔찌가 자주 바뀌는 걸 보면 생활의 여유가 느껴진다.


부부 모두 외제차를 각각 운전하고 다닌다. 보기 드문 현실의 조화다.

우리는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대화는 으레 남편 흉보기로 시작된다.

어젯밤 이야기를 꺼내는데, 남편이 새벽 1시에 귀가했는데 여자 향수 냄새가 강하게 풍겼단다.

“얼마나 안고 있었길래 향수 냄새가 사라지질 않는 거야?”



남편은 접대였다고 해명하며, 단지 노래만 부르고 술만 마셨을 뿐 손도 안 잡았다고 했단다.



“그걸 언니는 믿어져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접대였다면 모른 척 해. 집에 들어온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



그녀는 큰소리로 웃는다.

“형부는 이런 일 없죠?”

“형부는 자 같은 사람이야. 흔적이 남을 짓은 절대 안 해.”




“언니는 얼굴은 청순한 소녀 같은데 담대함은 어디서 나와요? 진짜 부럽다.”



“됐고, 호박죽이나 먹어라. 어제 법인카드 200만 원 넘게 쓴 거 보니까 혹시 2차까지 간 거 아냐? 설마 안 갔겠지? 만약 갔으면…”



“이혼이죠 뭐.”

“잘도 하겠다, 이혼을. 그 외제차 누가 벌어서 사줬는데?

네가 그 부귀영화를 포기할 수 있겠니? 그냥 알고도 모른 척하는 게 현명한 거야.”

동생이 한숨을 쉬며 말한다.




“언니, 근데 나 진짜 짜증 나는 거 뭔지 알아요?”

“뭔데?”

“사실… 남편이 잠자리를 안 해준 지 2주 넘었어요.”


“세상에… 두 주나? 괜찮아?”

“안 괜찮음 어쩌겠어요. 아침 내내 송곳으로 허벅지를 찌르는 기분이에요.”



“푸하하하!”

“형부는 2주 안 넘죠?”

“웅.”



“잠자리 자주 해주라고 말을해.”

“말은 하지. 근데 매일 술 마셔서 그렇지. 술 안 마신 날은 피곤하대.”

“언니는 스트레스 안 받아요?”




“주 1회만 확실히 해줘도 스트레스는 없어.”



언제부턴가, 우리 둘은 부부 관계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나누게 되었다.

어느새 수다는 네 시간째 이어졌다.



“언니, 내일 또 봐요.”


서로 인사를 나누고, 나는 마트에 들러 돼지고기 앞다리를 샀다.

남편이 돼지고기를 특히 좋아한다.


고기를 먹어야 힘이 난다며, 일주일에도 몇 번은 먹는다.


오늘 저녁엔 제육볶음을 만들 예정이다.

나를 제외하면 아들과 딸도 모두 좋아하는 메뉴다.


나는 가끔 먹는 편이지, 즐겨 먹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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