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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티끌 11화

티끌

1부. 잔향의 문

by 융 Jung


7월 21일, 목요일. 출근길부터 유독 눈에 띄는 것은 없었지만, 뭔가가 어긋나 있다는 감각은 하루 종일 나를 따라다녔다. 평소보다 조금 늦게 사무실에 도착했지만, 팀원 누구도 지각을 언급하지 않았다. 마치 내가 원래 그 시간에 출근하는 사람인 것처럼.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커피잔 역시 익숙하지 않았다. 분명 사용하지 않은 컵이었지만, 잔 안에는 식은 커피가 담겨 있었고, 가장자리에 립스틱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이거, 제 거 아니에요.” 나는 말했다.

하지만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다. 그 순간, 이수연 실장이 조용히 다가왔다. 그녀는 커피잔을 들여다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이건 아마 어제 회의실 정리하면서 옮긴 걸 거예요.”

“그럴 리가 없어요. 저는 어제 하루 종일 밖에 있었거든요.”

그녀는 내 말에 반응하지 않고 조용히 커피잔을 치웠다. 그날 오후까지도 나는 그 상황을 잊지 못했다. 사무실 곳곳에서 마치 내가 아닌 또 다른 내가 다녀간 흔적들이 있었다. 로그인 로그에는 내가 접속하지 않은 시스템 접속 기록이 남아 있었고, 팀 채팅에는 내가 보낸 적 없는 메시지가 있었다. 모두 평범한 말투였지만, 이상하리만치 내 말투와 닮아 있었다.

오후 늦게, 회의실에서 이수연 실장을 다시 만났다. 그녀는 서류 몇 장을 건네며 말했다.

“복구 요청이 하나 들어왔어요. 외부 인물의 기록인데, 이번엔 좀 특이해요.”

“말씀하세요.”

“기억을 삭제한 사람이 보낸 의뢰에요. 복구 대상이, 자신이에요.”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는 한 장의 종이를 넘기며 이어 말했다.

“이 사람, 이름이 ‘조태호’예요.”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그것은 분명 내 이름이었다. 그리고 문서에 쓰인 날짜는 오늘이었다.

“이거, 누가 보낸 거죠?”

그녀는 서류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시스템이에요.”

7월 22일, 금요일. 아침 회의는 조용하게 지나갔다. 실장은 별다른 언급 없이 회의록을 검토했고, 나는 내내 딴생각에 잠겨 있었다. 어제 받은 문서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 안에 있었던 정보는 분명 나 자신에 관한 것들이었고, 시간 기록까지 전부 정확했다. 마치 누군가가 나를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회의가 끝난 뒤, 실장은 별안간 나를 회의실에 다시 불렀다. 그녀는 회의실 창문을 닫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 문서, 왜 당신 이름이었을까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아는 것이 없었다. 그녀는 노트북을 꺼내더니 시스템 로그 하나를 보여주었다. 복구 요청 로그였다. 요청자는 ‘NULL’, 수신자는 ‘SFT-RECOVERY UNIT 04’. 그리고 메타 태그에 ‘JO_THA_HO’라는 식별자가 있었다.

“이건 실명이 아니에요. 하지만 당신을 지칭하는 데 충분하죠.”

“누가 이런 걸 보낼 수 있죠?”

“시스템입니다. 말 그대로. 사용자도 아니고, 관리 단말도 아닌, 시스템 그 자체.”

오후엔 이상하게 시간 개념이 뒤틀려 있었다. 시계를 몇 번이고 확인했지만, 업무 일정이 10분씩 계속 어긋나 있었다. 나중엔 아예 알림도 엉망이 되었다. 팀원이 문득 물었다.

“혹시 이 사무실, 예전부터 있던 데 맞죠?”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질문이 너무 이상했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 정확했기 때문이었다. 불현듯 기억났다. 이 건물은 우리가 입주한 지 두 달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곳이 너무 익숙해졌다는 사실. 나는 회의실로 다시 들어갔다. 그리고 혼자 앉아 시스템 로그를 한 줄 한 줄 확인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발견했다.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날짜가 기록된 로그. 2071년 7월 22일. 그리고 그 아래 적힌 명령어 하나.

> invoke:restore.mind/0721; // 의식복원 호출/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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