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수 11
겨울 방학을 앞두고 태수는 온몸이 아파왔다. 차가운 바람이 창문 틈새로 스며들 때마다 뼛속까지 시린 듯했지만, 사실 진짜 고통은 몸 안쪽에서, 맞은 흔적과 긴장으로 굳어진 근육에서 번져 나오는 것이었다. 요령이 생긴 아이들이 멍을 만들지 않고도 아프게 때를 수 있는 방법을 터득했건만, 몸 여기저기의 통증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 갔다. 아이들이 웃으며 장난처럼 때리는 손길 속에 은근한 잔인함이 숨어 있었고, 태수의 피부는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속살은 붓고 욱신거렸다. 특히 무릎과 허벅지 뒤쪽이 그랬다. 책상에 앉아 조금만 자세를 바꿔도 욱신거림이 밀려왔고, 복도 끝을 걸을 때마다 다리가 굽어지는 부분에서 날카로운 통증이 찌르듯 올라왔다. 힘깨나 쓴다는 아이들보다 유독 심하게 태수를 괴롭히던 재웅 조차도 태수의 다리는 피해서 때리는 배려를 보일 정도였다.
조별 수업을 하던 실과 수업시간이었다. 종이 울리자 아이들은 분주하게 자리로 돌아와 여섯 명씩 모둠을 이루었다. 교실 안은 왁자지껄한 소리와 작은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재웅과 태수는 같은 조였고, 여섯 명이 책상을 붙여 만든 그 조의 조장은 수연이었다. 그녀는 태수네와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그의 가난을 이해할 만큼은 가난했기에, 주변에 다른 아이들이 없을 때만큼은 태수에게 상냥했다. 평소에는 눈치를 보느라 태수에게 쉽게 말을 걸지 못했지만, 간혹 다른 아이들이 없을 때에는 인사를 먼저 건네주기도 했다.
수연과 다른 아이들은 준비물로 가져온 바느질 세트를 열어 시침질과 박음질, 홈질을 부지런히 하고 있었다. 문구점에서 산 각양각색의 플라스틱 가방 속에는 색색의 실, 작은 바늘, 천 조각, 가위가 규칙적으로 들어 있었고, 아이들은 그것을 꺼내며 서로 비교하기도 하고, 마음에 드는 색을 뽑아 쓰기도 했다. 천 위를 오가는 바늘 끝에서 은빛 반짝임이 어른거렸고, 책상 위에는 실이 꼬이고 풀리며 만들어내는 소리가 바스락거렸다.
태수는 준비물을 가져오지 않아 맞은 손바닥을 비비며 화닥거리는 통증을 삭히고 있었다. 아직도 따끔거림이 남아 있었고, 그 불에 덴 듯한 감각은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손바닥 안쪽에서 계속 살아 움직였다. 손바닥이 더 이상 아프지 않게 되자, 태수는 선생님의 눈을 피해 교과서에 그려진 바느질 그림을 보는 척을 했다. 교과서 속 그림은 단순하고 친절했지만, 태수의 눈에는 그것이 다른 풍경처럼 보였다. 그의 신발주머니와 가방, 얼마 전부터 꺼내 입게 된 외투에서 본 익숙한 바느질 기법이 그려져 있었다. 그 바느질 흔적은 집에서 할머니가 꿰맨 흔적들이었다. 예전에는 할머니의 바느질 솜씨가 교과서의 예시보다 훨씬 꼼꼼하고 가지런했는데, 요즘 들어서는 그 솜씨가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때, 책상을 뒤로 돌려 태수의 왼쪽으로 마주 앉아 있던 재웅이 속삭였다. 태수의 귀 가까이로 바람 같은 소리가 스쳤지만,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던 태수는 알아듣지 못했고, 그것이 화근이었던지 재웅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얇은 입술이 사납게 일그러지고, 눈꼬리가 위로 치켜 올라가며 곧 무슨 일이 닥칠지 경고하는 듯했다. 잠시 뒤, 태수의 왼쪽 팔이 따끔했다. 바늘 끝이 스친 듯한 통증에 흠칫 놀라 쳐다보는 태수에게 재웅은 바늘을 세워 입술에 갖다 대며 쉿, 소리를 냈다. 그 표정은 조용히 하라는 신호였지만, 동시에 더 큰 위협이 숨어 있었다.
태수가 입술을 앙다물고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자 재웅은 바늘과 함께 공책을 찢은 쪽지를 태수에게 내밀었다. 종이는 조그맣게 접혀 있었고, 손가락 끝에 힘을 주어 쥐고 있던 재웅의 동작에는 은근한 강압이 배어 있었다.
그 쪽지에는,
‘지우개를 떨어뜨릴 테니까, 네가 주워. 그리고 수연이 허벅지를 이 바늘로 찔러.’
라고 쓰여 있었다. 삐뚤빼뚤한 글씨는 서툰 어린아이의 흔적이 역력했지만, 내용만큼은 날카롭게 태수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태수의 심장이 또다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숨이 막힐 만큼 가슴이 요동쳤고, 발뒤꿈치가 들리고 떨리는 무릎이 책상의 아래를 연신 때렸다. 작은 떨림이 책상 전체로 전해져 철제 필통에서 달그락 소리가 났다. 태수는 얼른 재웅이가 준 쪽지를 뒤집어 글을 썼다. 손은 덜덜 떨렸고, 글씨는 더욱 삐뚤빼뚤하게 쓰였다.
‘미안해. 대신에 내가 두 번 더 찔리면 안 될까? 몇 번 더 찔려도 괜찮아. 미안해.’
태수의 쪽지를 읽은 재웅은 상체를 숙여 얼굴을 들이밀며 태수의 귀에 속삭였다. 숨결이 귓바퀴를 스치자, 태수는 오싹한 기운이 등골을 타고 흘러내리는 걸 느꼈다.
“뒤지고 싶냐? 분단으로 책상 돌리기 전까지 안 하면 죽는다, 진짜.”
그 말과 동시에 재웅은 그의 지우개를 책상 아래로 던졌다. 굴러간 지우개는 마치 어디로 갈지 정해진 듯 똑바로 나아가, 하필이면 수연의 두 발 사이에 떨어졌다.
태수는 울고 싶었다. 눈가가 화끈거렸지만, 눈물을 흘리면 선생님께 들키게 되고, 쉬는 시간에 재웅에게 두들겨 맞을 게 분명했다. 이번에는 어떻게 맞을까, 뺨을 맞을까? 명치를 맞을까? 발길질일까 주먹질일까? 하는 선명한 공포가 그려졌다. 맞는 일은 아무리 겪어도 결코 익숙해질 수 없었고, 공포는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그 무력감이 목을 죄어오자 숨쉬기도 버거웠다. 태수는 의자를 뒤로 빼고 몸을 숙여 책상 아래로 들어갔다. 그의 시야에 보이는 것은 지우개와 수연의 무릎뿐이었다. 재웅의 키득거리는 소리가 조용히 들려왔다. 그것은 태수의 심장을 더욱 압박하는 조롱처럼 울렸다.
하필이면 수연의 두 발 사이에 떨어져 있는 지우개가 태수의 눈에 늘어왔다. 땅바닥에 놓인 작은 고무 조각이 이토록 무겁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태수는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바늘을 쥐었고, 그때 수연의 새된 소리가 터져 나왔다.
“바늘을 다룰 때에는 늘 조심하라고 했지. 혹시 피가 나면 앞으로 나와.”
교실 앞쪽의 1조에서 바느질을 시범해 보이던 선생님은 태수가 앉은 6조 쪽으로는 눈길 한 번 던지지 않으며 말했다. 담담하고 일상적인 그 목소리는 책상 아래에 기듯이 웅크리고 있던 태수를 한 층 무기력하게 했다.
태수는 조용히 몸을 일으켜 자리에 앉았다.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책상 위로 양팔을 둥글게 말고 오른쪽 팔꿈치에 이마를 처박은 채로 태수는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눈물이 팔꿈치를 적셨다. 재웅의 임무를 알았던지 떨리는 바늘 끝이 허벅지에 닿기도 전에 소리를 질러준 수연이 고마웠고, 멍청하고도 한심하게 저지르려 했던 그 스스로의 행동이 수치스러워서 그는 울었다. 마음 한편이 송두리째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불현듯 떠오른 생각과 함께 수업의 끝을 알리는 음악이 울렸고, 그의 눈물은 멎었다. 종소리는 늘 그렇듯 익숙했지만, 태수에게는 그날따라 새로운 의미를 던졌다. 마치 긴장을 끊어내는 칼날 같았다.
쉬는 시간, 책상을 원래대로 돌리고 있던 재웅을 태수는 조심스럽게 불렀다. 작은 목소리였지만, 자신도 놀랄 만큼 단단하게 울렸다.
“오늘 학교 끝나고…….”
재웅이 고개를 홱 돌리며 대꾸했다.
“뭐야, 학교 끝나고 뭐?”
태수의 목소리는 여전히 떨렸으나, 그의 두 눈은 확고히 재웅을 향했다.
“나하고 싸우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