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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미 Nov 12. 2024

어쩌면 아이들이 바라는 건

기다림 이면 충분할지 몰라


가을이 저물어가고 찬바람이 코끝을 스치고 나서야 조금의 여유가 생기는 오늘입니다. 그사이 제가 맡은 아이들도 각자만의 성장을 이어나가고 있는데요.


하루가 다르게 변화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 속 그중에서 이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어른의 태도는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교사가 되어 선생님이라 불러주는 제 삶 속에 어느덧 이전엔 느껴볼 수 없었던 어른의 마음이란 어떤 마음을 가리키는 것일까 떠올려 봤습니다.


여전히 자신의 감정 그대로 표현하는 아이들.

하고 싶은 놀이를 더 하고 싶고 내 것을 남에게 주기 싫어 욕심내고 싶고 그때그때 드는 기분의 날것을 꾸밈없이 보여주기 바쁜 아이들.




하루는 뿔이 난 채 조금 버릇없게 말하는 아이를 바라보며 왜 뿔이 났는지 어떻게 하면 좀 더 어른답게 아이 마음을 헤아리면서 바로 잡고자 하는 것을 스스로 생각게 할 수는 없을까 잠잠히 생각해 봤습니다. 때론 아이의 안전을 생각하며 바로 "안 돼"라고 제지할 때 있지만 섣부른 단호함이 오히려 아이를 정반대의 길로 끌고 갈 수 있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기에 늘 유념하기 때문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아이의 부정적 감정을 맞닥뜨려야 할 때면 자신도 모르게 흥분되는 감정을 가라앉히기만 바쁩니다. 그리고 이내 아이를 단순히 혼내려 한다기보다 이 문제가 아이의 문제인지 제 자신만의 문제인지를 구분하려 합니다. 구분이 명확할 땐 최대한 절제 있으면서도 사무적인 태도로 하면서도 구분이 모호할 땐 제 감정만 호소하면서 아이를 나무라기 바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제일 좋은 방법은 어쩌면 '기회'를 줘보자는 생각일 것입니다. 그리고 '기다림'이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아이들의 태도와 말투 그리고 아이들의 생각은 어른의 말 한마디로 바뀌지도 않고 단숨에 어떤 변화를 바란다는 것 또한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를 포함해 아마 많은 분들이 그 순간의 아이 태도를 바로 잡고 싶어 혹 더 엇나갈까 봐 두려운 마음 때문에 표정이 굳어지고 이내 감정은 흥분 상태가 될 거라 생각합니다.


무섭게 때론 엄하게 돌변하는 태도가 순간의 제지는 될 수 있겠지만 어쩌면 쳇바퀴 굴러가듯 반복되는 상황이 펼쳐질 것입니다. 그만큼 아이들에게 있어 단호함이란 말 그대로 단호한 태도만을 보이는 것이지 아이의 자존감을 깔아뭉갠다거나 스스로를 자책하도록 위축되게 하는 무서움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되려 "이번은 그럴 수 있어, 기회를 줘 보자, 다음엔 다를 거야."라는 마인드로 바라봐진다면 그 아이를 나무라기보다 먼저는 "그래, 그럴 수 있지"라는 포옹과 "기다려주면 그 언젠간 스스로 생각해 보는 사람이 될 거야"라는 믿음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앞서 얘기했던 그 아이의 태도는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지금도 불만 가득한 태도를 보일지 아니면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일지? 결론은 선생님의 태도에 따라 아이 역시 서로 다른 반응을 보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엄하게 꾸짖기 바빴던 선생님께 아이는 여전히 버릇없게 굴고 있습니다. 여전히 자기주장을 내세우고 뜻대로 안 된다며 고집을 피우고 스스로 상처만 받았다며 울기 바쁜 아이의 모습은 이전과 똑같았습니다. 그 선생님 역시  아이는 매번 똑같다며 되려 나무라시더니 감정만 상한 채 굳은 표정만 짓고 계셨습니다. 선생님은 끝까지 그 아이의 변화를 꿈꾸지 않으셨습니다. 바뀔 수도 있다는 희망조차 품지 않으셨고 기회조차 주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말 안 들을 고집불통의 아이라고 낙인찍는 모습이셨습니다.


또 다른 선생님의 모습, 앞서 얘기했던 태도로 한 번 더 기회를 주고 기다려주신 모습이 보였습니다.

바뀔 것 같지 않던 아이의 태도에 똑같이 으르렁대기보단 그저 그 아이의 날 선 감정 있는 그대로의 기분을 전부 들어주셨습니다. 당연히 말도 안 되는 고집의 모습일지언정 그 순간은 어떤 말로도 아이를 회유하지 않았습니다. 어른이란 이유로 교사란 이유로 아이의 말을 중간에 끊지도 무시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아이가 그런 감정을 느꼈다는 것을 존중해 주고 아이가 진정될 때까지 스스로 감정을 조절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셨습니다.


불가능해 보일 것 같던 그 아이의 부정적 감정은 몰라보게 달라지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부정적 감정이 들어도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배워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잠잠히 자신의 이야길 들어주는 선생님께 맘껏 표현하고 어느 정도 진정이 될 때쯤 선생님의 이야길 들어보려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자신을 존중해 줬다는 마음을 마치 복사 붙여 넣기 하듯 아이 또한 선생님의 이야길 귀 기울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아이는 선생님의 이야기에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하고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행동이 될 수 있는지를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아이는 스스로 다른 사람이 되려는 선택을 하고 있었습니다. 말투에서 태도에서 행동에서 변화가 보였습니다.


그러더니 혼자서 장난감 욕심내지 않겠다고, 친구의 마음을 상하게 말한 것에 사과를 해야겠다고,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려 고집 피우다가도 어느새 갖고 논 장난감을 정리하는 모습까지 볼 수 있었습니다. 아이는 전혀 다른 아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언제든 변화될 더 나은 어린이로 성장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단지 어른인 우리가 그 아이들을 그만큼 성장케 할 수 있도록 끊임없는 기회와 수용적인 태도, 너그러운 마음속에 널 믿고 있다는 신뢰적 사랑 그리고 그 언젠가 변화될 모습으로 자라날 때까지의 기다림이 과연 있는지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의 무한한 변화 가능성 앞에서 나는 그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는 어른인지 아니면 앞선 세대라는 이유로 어른이란 경험만을 내세우며 막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과연 내게는 진정한 어른의 모습, 아이들이 바라는 그 모습이 갖춰져 있는지 오늘도 고민하는 저입니다.



읽어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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