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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인 May 01. 2024

12화  삶의 변곡점에 서서

코코의 행복 그래프

우리 삶에는 변곡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가끔 우리를 찾아오죠. 저에겐 개를 입양한 일이 그중의 하나였어요. 그 후로 제 삶은 참 많이 변했죠.

저는 이제 검정 옷을 피합니다. 개털 때문에요. 

개가 오기 전 저는 미니멀리스트였어요. 정해놓은 옷 색깔과 스타일이 있었죠. 그런데 이것이 개털과 정면충돌을 일으켰어요. 하얗고 짧은 솔이의 털은 밤하늘의 별처럼 검정 옷 위에서 밝게 빛났죠. 개털은 그냥 붙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실과 실 사이로 파고들어서 손으로 일일이 떼어내야 했어요. 하루는 검정 옷에서 개털을 모조리 떼어내는 일이 밤하늘의 별을 모조리 떼어내는 것처럼 불가능에 가깝다고 느꼈어요. 

그 후로는 감히 검정 옷을 입지 못했어요. 아무리 개를 안 안으려고 마음먹어도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거든요. 요즘 저는 되도록 개털이 잘 붙지 않고 붙어도 바람에 잘 떨어지고 또 잘 보이지 않는 옷들을 시장에서 싸게 사요. 검정 옷들은 옷장에 장식품처럼 걸려 있죠. 그 옷들을 볼 때마다 제 삶이 개 한 마리로 인해 싼값에 넘어간 기분이 들기도 해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개를 키우면서 개를 안 안아주느니 차라리 검정 옷을 포기하는 것이 개나 저를 위해서 더 나은 선택이라고 믿으니까요.     


그리고 언제나 개와 함께 산책해야 해요. 혼자 산책하느니 개와 산책하면 좋잖아, 말하고 싶겠지만 개를 산책시키는 일은 그리 간단치 않았어요. 막 아장아장 걸음마를 시작하는 아기와 보조를 맞춰 산책하는 일 같았거든요. 게다가 솔이는 자기 멋대로 다녔어요. 냄새 맡고 싶을 때는 한없이 서 있고 길이 없는 길로도 갔어요. 풀이 무성한 풀밭이나 화초를 보호하는 울타리 안으로 못 가게 하면 걷질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우리의 산책엔 저를 위한 산책은 없고 오로지 개를 위한 산책만 있었어요. 

너 때문에 운동시간도 내 맘대로 못 정해!

너 때문에 운동 코스도 내 맘대로 못 정해!

너 때문에 가다가 서고 섰다가 뛰고 정말 힘들어!

제 마음속에는 불만이 쌓여갔어요. 개와 산책하는 풍경은 멀리서 보면 아름다운 그림이던데 현실은 족쇄였어요.  


아, 그리고 개똥을 치우는 일이 일상이 될 줄은 미처 몰랐어요. 

똥 봉투에 손을 끼워 똥을 잡으면 그 느낌이  으으윽 징그러워요. 똥을 집은 손가락 끝에서부터 소름이 오소소 올라와요. 똥 냄새가 아주 지독한 날도 있어요. 그땐 숨을 멈추고 ㄱ똥을 집죠. 하루는 한 지인이 물었어요. 개 키울 만해요? 저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렇게 대답했죠. 인생에는 똥 치우기 총량의 법칙이 있는 것 같아요. 아들 하나 키우면서 똥을 안 치웠더니 그만큼 개똥을 치우게 되네요. 

하루에 똥을 다섯 번 싸는 날도 있는데 그날은 제가 벌 받는 날이에요. 물똥을 싸는 날은 가중처벌을 받는 날이고요. 가중처벌에 가중처벌이 더해지는 날도 있어요. 길에 토해놓은 토사물이나 동물의 사체, 개똥 같은 것들을 보는 날이요. 개는 발달한 코를 그런 걸 찾는 데 쓰더라고요. 


이렇듯 변곡점은 카오스 같은 혼돈을 동반해요. 개와 함께 사는 몇 개월 동안 제 삶은 개 목줄에 질질 끌려다니는 듯했어요. 제 삶이 도마뱀 꼬리처럼 꼬리부터 싹둑싹둑 잘려서 블랙홀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어요. 곧 머리까지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갈 판이었지요. 우리는 합의가 절실했어요. 저는 필사적인 기분으로 그 기준을 마련했어요.

1. 내 산책량을 충족한 뒤에 강변 잔디밭에 간다. 중요한 건 내 산책. 개 산책은 내 산책에 얹히는 거임. 

2. 산책 코스는 내가 정한다. 대신 개가 냄새 맡을 때와 배변할 때는 기다려준다. 기다리면서 경치나 속속들이 감상하지 뭐. 

3. 강변 잔디밭에서는 다른 보호자와 수다를 떨면서 최대한 즐겁게 보내도록 한다. 수다는 힐링이지.

4. 집이 개의 물건에 너무 잠식당하지 않도록 한다. 우리 집은 개집이 아니라 사람 집임. 

5. 한 달에 개를 위해 쓰는 돈을 정한다. 개 통장을 만들어 건강보험용으로 저축도 하고. 나중에 집 기둥뿌리 뽑히기 전에 미리미리.

6. 마지막으로 솔이야, 내가 없을 때 너는 조용히 기다려야 한다. 대신 너를 5시간 이상은 혼자 두지 않을게. 너를 위해 나는 일을 완전히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단다. 네 덕택에 일 없는 인생 후반을 즐겨보자. 가즈아~.  

   

이렇게 기준을 세우고 나니 차츰 혼돈이 줄어들었어요. 혹 혼돈에 빠지더라도 기준에 따라 행동하면 쉽게 문제가 해결되었죠. 스트레스가 확 줄어들었어요. 산책할 때도 서로 몸의 운율이 맞춰져서 할 만해졌어요. 개와 제 삶의 관계도 정립되기 시작했어요. 개 중심의 삶이 아니라 개와 제가 함께 하는 삶으로. 그러면서 느림이라는 제 삶의 목표에 개가 잘 어울린다는 것을 새로 발견하기도 했지요. 

더 중요한 발견은 가족 간에 대화가 늘었다는 점이었어요. 사실 결혼해서 삼십 년 이상을 살다 보면 집에서 대화할 일이 거의 없어요. 오래된 남편과도 다 자란 아들과도. 얼굴 마주 보며 웃을 일이란 더더욱 없지요. 때가 되면 몸은 집에 돌아와 있어도 각자의 방에 들어박힌 우리는 각각 독립된 점들이었어요. 점과 점이 연결되기 위해서는 다른 점이 필요하죠. 그 점을 어디서 가져와야 하는지 어떻게 가져와야 하는지 알 수 없었어요. 아니 가져와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살았어요. 이게 삶이겠거니, 남들도 이렇게 살겠거니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 연결을 개가 해놨더라고요. 어느 날 문득 보니 우리가 대화를 나누면서 미소 짓고 있었어요. 물론 모든 대화의 주제가 개로 시작해서 개로 끝났지만. 때로는 개 때문에 개싸움을 하기도 했지만. 개에게 간식을 한 개 더 주니 마니, 삼겹살을 한 점 더 주니 마니 같은 개싸움은 생활의 활력이 되었어요. 오래 같이 살다 보면 어느 지점에서는 대화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작은 말싸움조차 그치거든요. 그저 홀로 방에 들어앉아 홀로 침잠할 뿐이죠. 

그 일을 개는 밖에서도 했어요. 오늘도 집으로 오다가 건널목에서 한 할아버지를 만났지요. 

“어허, 솔이. 산책 끝내고 가나?”

“예. 솔이, 할아버지께 인사해야지. 안녕하세요?”

“그래, 잘 가라.”

개는 연결고리였어요. 개와 다니다 보니 휴대전화 통신망처럼 사람들과 사방팔방 연결되어요. 

신기한 건 솔이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개들도 그랬어요. 포메라니안 뭉치는 각자의 방에만 틀어박혀 있던 두 딸을 거실로 끌어내고 아빠를 일찍 퇴근하게 해서 온 가족을 모이게 했고요. 몰티즈 우유는 딸과 아들과 아빠를 엄마와 개의 산책에 자주 동참하게 했고요. 믹스견 이슬은  주말마다 두 아들이 엄마와 개와 함께 강변으로 산책 나오게 했더라고요. 

특히 코코는 아주 특별한 일을 해냈어요.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제 이름은 코코, 갈색 푸들입니다. 나이는 4살이고요. 저에게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언니가 셋 있습니다. 큰언니는 결혼해서 분가해 살고요, 작은언니와 막내 언니는 직장인으로 독립해 살고요, 저는 엄마랑 둘이 살아요. 아빠랑은 함께 살지 않아요. 엄마와 이혼했거든요. 엄마는 아빠와 이혼한 이유를 이렇게 말해요. 

“네 아빠의 거친 입과 거친 행동 때문이야.”

아빠는 건설업에 종사해요. 그런데 퇴근할 때면 늘 취해서 집으로 왔대요. 집에 오면 욕설을 마구 퍼붓고 물건을 마구 집어던졌답니다. 그것 때문에 엄마는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았대요. 정말로 미쳐버릴 것 같았다고 말했으니까요. “그래도 어떡해? 딸이 셋이나 있는데.” 이렇게 말하는 엄마는 늘 고민 끝에 같은 결론에 다다랐다고 해요. 딸 셋을 제대로 키우려면 무조건 참아야 한다는. 그러다 보니 숨통이 조여와서 숨이 쉬어지지 않는 날이 숱하게 있었대요.

한 번은 큰집 조카가 결혼해서 결혼식장에 가야 하는데 아빠가 술에 취해서 들어왔대요. 엄마는 또 한숨에 가슴이 푹 꺼졌지만 어쩌겠어요. 조카 결혼식이니 어떻게든 아빠를 끌고 결혼식장에 가야지요. 그런데 그대로 끌고 갈 수는 없었어요. 건설현장에서 돌아온 아빠 옷이 너무 지저분했거든요. 화를 참고 엄마가 조곤조곤 말했대요.

“늦었어요. 어서 옷 갈아입어요.”

아빠가 희뜩 쳐다보더래요.

“무슨 옷을?”

“결혼식장에 가야 하잖아요. 오늘이 지용이 결혼식이라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요.”

“그래? 그럼 가자고, 가.”

“옷 갈아입고 가야죠.”

“뭔 옷을! 고마 가!”

“아유, 말도 안 되는 고집 좀 그만 피우고, 옷 좀 갈아입어요. 더럽잖아요.”

“뭐가 더러워!”

“그런 차림으로 가면 남들이 욕해요.”

“누가? 누가! 욕하는 놈들 다 내 앞으로 데리고 와 봐라. 그놈들 눈깔을 내가 다 파버린다. 어디 비싼 밥 먹고 할 짓이 없어서 남의 옷을 보고 지랄이야, 지랄이.”

“그러고 가면 사돈집 보기 부끄럽다고요. 지용이 낯 깎여요. 지용이 생각해서 제발 좀 갈아입어요.”

“안 가! 안 간다고! 내가 부끄럽다는데 내가 거길 왜 가!”

아빠는 드러누워 버렸어요. 엄마는 화도 나고 짜증도 나고 어이도 없고 섧기도 했어요. 남들은 결혼식 같은 집안 행사가 있으면 깔끔하게 차려입고 오는데 공사판에서 일하던 차림으로 가다니,  민폐죠. 옷이 없어서 못 입는 것도 아니고 떡하니 준비해 주는 옷도 안 입으니. 그래도 엄마는 참고 아빠를 살살 달랬대요.

“여보, 미안해요. 진짜 진짜로 내가 다 잘못했으니까 옷 좀 갈아입어요, 네?”

그러나 아빠는 코를 드렁드렁 골며 자버리더래요. 엄마는 한숨을 푹 쉬었어요. 흔들어 깨우고 싶었지만 그렇게 깨웠다가는 깨웠다고 난리를 칠 테니 깨울 수도 없었어요. 아빠 성질이 그랬대요. 그만해라, 했는데 더 하거나 안 간다, 했는데 더 조르면 물건이 공중을 날아다녔대요. 욕설은 깨진 유리 조각처럼 엄마의 마음에 콕콕 박히고요. 심하면 손찌검도 했고요.

그날 엄마는 조카 결혼식에 가지 못했어요. 못 가는 이유를 지어내서 친척들에게 말할 때 무척 서글펐대요. 전화를 끊고 욕실에 숨어서 세 딸 몰래 꺼이꺼이 울었대요. 혹시라도 세 딸이 울음소리를 들을까 봐 수돗물을 틀어놓고 바가지를 입에 대고서. 

이렇게 수십 년을 살다 보니 엄마는 가슴 한가운데에 화병이 생겼대요. 몸이 나무꼬챙이처럼 시들시들 말라 갔대요. 보다 못한 큰언니와 작은언니가 말했어요. 

“엄마, 이혼해. 우리 걱정하지 말고. 우리는 괜찮아.” 

그 말에 엄마는 깜짝 놀랐대요. 그토록 조심한다고 조심했는데 딸들이 엄마의 울음소리를 다 들었다는 것을 알았거든요. 그래서 엄마는 또 울었대요. 딸들도 울고요. 이번에는 서로 숨기지 않고 입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만이 아니라 뺨을 타고 흐르는 물길까지 다 드러내놓고 울었대요. 그러고 두 달 뒤 엄마는 이혼했어요. 

막상 이혼하고 나니 엄마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 수십 년간 쌓인 화가 이혼을 했다고 해서 금방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고요. 부끄러워서 이혼했다고 말도 못 하겠고요. 어디 가기도 부끄럽더래요. 형제들에게도 친척들에게도 아무에게도 이혼했다고 말하지 않았대요. 아예 친척이 모이는 자리엘 가질 않았대요. 

엄마는 집에 콕 처박혀서 집순이가 되었어요. 표정도 없고, 생기도 없고, 활력도 없고, 입맛도 없고… 모든 일이 다 시들시들했고 왜 사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대요. 딱히 살고 싶은 맘도 없었고요. 많아진 것은 잠이었어요. 잠이 무지무지 쏟아져서 엄마는 낮이고 밤이고 아침이고 점심이고 저녁이고 내내 잤대요. 

그런 엄마를 걱정하던 큰언니가 엄마에게 말했대요. 

“엄마, 반려견을 입양해 봐.”

엄마는 솔깃했어요. 

다음 날 당장 작은언니와 같이 펫샵으로 갔어요. 

저는 엄마가 펫샵에 들어올 때부터 지켜보고 있었어요. 파마머리를 한 오십 줄의 여자가 시들시들한 표정으로 펫샵에 들어왔지요. 그 시들시들한 표정은 금방 펫샵 전체로 퍼졌고 펫샵 친구들이 엄마한테서 눈길을 돌렸어요. 그 시들시들한 표정이 마치 자기에게로 옮을까 봐 걱정하는 듯이. 

그러나 저는 달랐어요. 엄마를 보는 순간 바로 내 엄마다,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저는 엄마에게로 쪼르르 달려가 눈을 맞추고 꼬리를 흔들었어요. 발라당 드러누워 엄마에게 내 가장 연약한 배를 보여줬어요. 엄마도 저를 한눈에 알아보는 눈치였어요. 저를 보자마자 시들시들한 표정 사이에서 작은 떡잎 같은 생기가 메마른 흙을 뚫고 파릇파릇 올라왔거든요. 엄마가 나를 만졌어요. 머리를 쓰다듬고 배를 쓰다듬으면서 살포시 웃었어요.

“좋아? 우리랑 살래?”

그날부터 저는 엄마와 언니들과 함께 살게 되었어요. 언니들이 하나 둘 셋 모두 독립해서 집을 떠나기 전까지.

아빠는 엄마 집 근처에 살아요. 이혼 후 엄마 집 근처에 집을 얻었거든요. 그래서 아빠를 자주 봐요. 엄마가 바쁠 때는 아빠가 저를 산책시켜 주지요. 엄마가 전화하면 아빠는 엄마 집으로 와서 저를 데리고 강변 잔디밭으로 갔다가 저를 다시 엄마 집으로 데려다줘요. 

아빠는 저와 함께 산책하는 걸 무지무지 좋아해요. 저와 함께 강변 잔디밭에 가 있으면 기분이 좋나 봐요. 저도 강변 잔디밭에 가 있으면 기분이 좋아요. 바람이 실어 오는 냄새를 맡고 예전에 엄청 많이 뛰어놀았던 잔디밭에서 다른 개들이 뛰노는 것을 보면 행복해요. 그런 저의 기분을 잘 알아서 아빠는 해가 저물도록 강변 잔디밭에 퍼지르고 앉아 있어요. 

요즘 아빠는 술을 많이 안 마셔요. 물건을 공중으로 던지지도 않고요. 욕설도 거의 하지 않아요. 입만 열었다 하면 욕설이 튀어나오던 아빠 입에서 이런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우리 코코, 밥 먹었어?”

“코코야, 아빠하고 산책 갈까? 날씨가 아주 좋아.”

“아이고, 예뻐라. 우리 코코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

이런 말을 하는 아빠를 보면 엄마가 놀라워해요. 욕뿐이던 저 입속에 저런 이쁜 말이 들어있었네?라고 혼자 중얼거리지요. 엄마 말에 의하면, 그 말들은 딸 셋을 키우면서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이쁜 말이래요. 이렇게 아빠가 달라진 건 다 제 덕이예요. 이건 제 말이 아니라 엄마 말이에요. 요즘 엄마는 아빠에게 반찬도 해다 줘요.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엄마가 머쓱하게 반찬통을 내밀면 아빠가 씩 웃으면서 반찬통을 건네받아요. 빈 손이 된 엄마는 슬며시 아빠를 따라 웃고요. 

엄마는 저와 살면서 가슴에 쌓인 화가 조금씩 조금씩 스러졌다고 말해요. 멍든 마음이 많이 치유되어 이제 붉은 기만 조금 남았다고 해요. 그래서 저를 보는 엄마의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져요. 엄마는 늘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지요. 

“우리 코코는 우리 집에서 정말 귀한 존재예요. 코코가 없었으면 애들 아빠가 이렇게 변할 수 없었을 거예요. 물론 백 프로 만족하는 건 아니지만 이만큼이라도 변해서 너무 좋아요, 예전에는 아무리 말을 해도 씨알도 안 먹히던 사람인데 지금은 제 말을 들어요. 딸들도 이제 아빠하고 말을 하고요. 그전에는 아빠 얼굴도 안 쳐다보려고 했거든요. 코코가 진짜 복덩이예요, 복덩이. 다른 사람한테는 몰라도 우리한테는.”

엄마하고 언니들이 아빠하고 나누는 대화는 별거 없어요. 모두 다 제 이야기예요. 제 이야기 말고는 다들 할 이야기가 없나 보더라고요. 제 이야기를 하면서 가족들이 웃으니까, 뭐 그럼 된 거죠. 우리 가족이 저로 인해 행복해져서 저는 참 좋아요.  

    

개와 함께 산 지 9개월. 

저는 개를 입양하는 일이 삶의 변곡점에 서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개를 키우는 일이 내 공간을 조금 내어주고 내 시간을 조금 내어주고 내 돈을 조금 내어주는 일이 아니더라는 말이에요. 삼각형이었던 삶을 사각형의 삶으로, 사각형이었던 삶을 오각형의 삶으로, 오각형이었던 삶을 팔각형의 삶으로, 팔각형이었던 삶을 원의 삶으로 바꾸는 일이었어요. 

느닷없이 개를 맞이하여 삶의 변곡점에 섰을 때 어쩌면 저는 아래로 볼록한 불행의 그래프를 그릴 수도 있었어요. 다행히 혼돈의 시간 속에서 아주 오래 헤매지 않고 행복의 그래프로 선회할 수 있었어요.

저는 당신도 당신의 반려견과 함께 충만하고 행복한 사랑의 그래프를 그렸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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