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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인 May 15. 2024

14화  개를 사랑하는 방법

강변 잔디밭에서 젊은 여자 셋이 소풍을 즐기고 있어요. 햇볕은 따사롭고 그녀들은 즐거워 보여요. 웃음소리가 여기까지 불어오네요. 개들의 눈에도 그래 보이나 봅니다. 자꾸만 옆으로 가서 알짱거려요. 

“솔, 솔, 이리 와~.”

솔이가 귀를 펄럭이며 달려와요. 

“아유, 잘했어~.”

잠깐 한눈파는 사이 솔이가 또 거기 갔어요. 이번에는 다른 개들하고 같이 갔네요. 보호자들이 개를 불러요. 보슬아~. 하니야~. 봄이야~. 구름아~. 솔이 이름도 불러요. 개들은 보호자의 부름을 바람 소리처럼 흘려보내요.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소풍 음식에 흠뻑 취해서 정신을 못 차려요. 

느닷없이 개들에게 둘러싸인 그녀들이 비명을 질러요. 

“어머나! 얘들 좀 봐!”

다정한 손이 개를 쓰다듬어요. 참 다행이에요. 이 눈치 없는 개들을 반겨줘서. 

“미안해요. 우리 개가 방해했지요?”

솔이를 쓰다듬던 여자가 밝게 웃어요.

“아니에요. 이름이 뭐예요?”

“솔이요.”

“순하고 착하네요.”

“감사합니다.”

솔이가 자리를 떠난 후 다른 개들도 하나둘씩 보호자의 부름에 응해요. 끝까지 부름에 응하지 않는 구름이는 엄마가 달려가서 안고 오지요.     


그녀들의 반대쪽에는 어린 여자아이가 엄마랑 공놀이하고 있어요. 엄마가 던지는 공을 받아서 다시 엄마에게로 던지는 놀이예요. 어린 여자아이는 자꾸만 공을 놓쳐요. 도망치는 공을 잡으러 잔디밭을 촐랑촐랑 뛰어요. 그때마다 포니테일로 묶은 머리가 말의 꼬리처럼 까불어요.    

  

저기서 초등학교 4학년 남자아이들이 잔디밭 가에 책가방을 던져놓고 잔디밭 안으로 걸어 들어오네요. 이 어린 친구들은 축구를 하러 오는 친구들이에요. 어떻게 축구하러 여기 올 생각을 했느냐, 물었더니 씩씩한 남자아이가 개가 좋아서 여기로 왔다, 했어요. 

오늘도 씩씩한 남자아이가 묻네요.

“만져봐도 돼요? 얘는 아직 한 번도 못 만져봤어요.”

“먼저 인사부터 하고. 이렇게 주먹을 내밀어 봐. 얘가 냄새를 맡게.”

그러자 줄을 서네요. 씩씩한 남자아이가 맨 앞에, 다음에 두 남자아이가 옆으로 나란히, 제일 뒤에는 제일 작은 남자아이가 저만치 떨어져 섰어요. 

씩씩한 남자아이가 주먹을 내밀고 솔이는 씩씩한 주먹 냄새를 맡아요. 두 남자아이가 한꺼번에 주먹을 내밀자 솔이는 가볍게 냄새를 훑어요. 제일 작은 남자아이의 차례. 아이는 손을 허리 뒤로 숨겨요.

“저는 개를 무서워해요.”

“개를 무서워하면서 개가 많은 데로 왜 왔니?”

“얘가 가자고 했고, 이 둘이 찬성했어요. 저 혼자 반대라 할 수 없었어요.”

제일 작은 남자아이는 씩씩한 남자아이와 나란히 선 두 남자아이를 차례대로 가리켰어요.

“마음이 불안하겠다~.”

제일 작은 남자아이는 겁 어린 눈으로 고개를 끄덕여요. 

“그래도 여기 모인 개들은 대체로 순한 편이니까, 좀 나을 거야.”

씩씩한 남자아이가 솔이를 손바닥으로 쓰다듬으며 끼어들어요.

“나는 개를 좋아해요. 개를 키우고 싶은데 엄마가 허락을 안 해요. 야, 니들도 만져봐, 되게 부드러워.”

두 남자아이가 양쪽에서 솔이의 목덜미를 손끝으로 살살 간지럽혀요. 

“너희도 개를 좋아하니?”

오른쪽 남자아이가 대답해요. 

“우리는 개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아요.”

“근데 왜 얘 편을 들어서 쟤를 무섭게 하니?”

왼쪽 남자아이가 대답해요.

“얘가 힘이 제일 세거든요. 얘 말대로 해야 놀 수가 있어요.”

왼쪽 남자아이의 턱끝이 씩씩한 남자아이를 가리켜요. 씩씩한 남자아이가 물어요. 

“안아봐도 돼요?”

저의 씩씩한 남자아이의 두 팔에 솔이를 담아주어요. 씩씩한 남자아이는 헤벌쭉 웃고, 개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남자아이들은 친구 품에 안긴 솔이 등을 살짝살짝 쓰다듬어요. 개를 무서워하는 남자아이는 여전히 두 손을 등 뒤에 숨기고 있어요.      


드디어 남자아이들이 잔디밭 한 모퉁이에서 축구를 시작해요. 축구공은 발끝에서 발끝으로 왔다 갔다 하며 잔디밭에 몸을 굴려요. 그러다 힘이 넘쳐 저쪽 둔덕으로 쌩 날아가요. 축구공을 잡으러 개를 무서워하는 남자아이가 출동해요. 

그 옆에서 공놀이하던 믹스견 시루도 둔덕으로 날아가는 축구공을 본 모양이에요. 자기도 축구공을 찾으려는지 겅중겅중 둔덕으로 뛰어가요. 시루 뒤에서 야구공이 잔디밭으로 낙하해요. 야구공을 시루에게 던진 큰형이 황망하게 서 있어요. 

둔덕에서는 개를 무서워하는 남자아이가 풀과 풀 사이를 두리번거려요. 곧 축구공을 찾아요. 두 손으로 주워 들고 기쁘게 돌아서요. 순간 시루를 보고는 온몸으로 격한 춤을 춰요. 

“으아아아아!”

시루가 천천히 다가가요. 개를 무서워하는 남자아이가 뒷걸음질 쳐요. 그러나 몇 걸음 만에 갇혀버려요. 뒤는 개나리 덤불이에요. 개를 무서워하는 남자아이가 개나리 덤불 속으로 엉덩이를 밀어 넣어요. 개나리 덤불은 대열을 짜고 엉덩이를 거부해요. 엉덩이 밀어넣기를 거부당한 남자아이는 다른 도망 자리를 찾아서 두리번거려요.

그때 시루의 큰형이 말해요.

“시루, 이리 와!”

시루는 돌아다보지 않아요. 좋아하는 공이, 그것도 제가 갖고 놀던 공보다 더 커다란 공이 바로 눈앞에 있는데 어떻게 돌아보겠어요? 큰형이 낮고 묵직한 목소리로 시루를 연거푸 불러요. 그러자 시루의 고개가 조금 옆으로 돌아가요. 그 틈을 타 개를 무서워하는 남자아이가 왼쪽으로 도망쳐요. 

시루도 따라 뛰어요. 시루의 뜀은 가벼워요. 신바람이 실려 있어요. 바람이 시루의 유연한 몸을 타고 날아가요. 시루는 달리는 것을 좋아해요. 달리는 것이 무엇이든 보기만 하면 달려가요. 그럼 지금 시루가 쫓는 것은 공일까요, 남자아이일까요?

남자아이는 무작정 앞만 보고 달려요. 남자아이의 뜀은 중해요. 위태함과 급박함과 불안함과 두려움이 담겨 있어요. 남자아이가 뒤를 돌아봐요. 순간 제 뒤에 바짝 달라붙은 개를 봐요. 남자아이는 펄쩍 뛰어올라요. 팔을 360도로 휘저어요. 두 발이 빨라져요. 저대로 달려가면 하늘로 날아오를 것도 같아요. 

축구공이 남자아이의 몸에서 떨어져 나와 잔디밭을 통통 뛰어요. 시루의 눈이 축구공으로 향해요. 축구공을 발로 눌러요. 축구공에 코를 대어요. 그러고는 고개를 들더니 다시 바람처럼 달려요. 남자아이를 쫓아가는 네 다리에서는 신바람이 씽씽 묻어나고 개에게서 도망치는 두 다리에서는 다급함이 폴폴 날려요. 

이제 확실해졌어요. 시루는 축구공을 쫓는 것이 아니라 남자아이를 쫓고 있어요. 

시루의 큰형이 달리기에 참여해요. 씩씩한 남자아이도, 개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두 남자아이도 참여해요. 잔디밭에서는 달리기 경주가 펼쳐져요. 1위는 개를 좋아하는 남자아이예요. 2위는 시루고요. 시루의 큰형은 꼴찌예요. 

달리는 사람들이 소리를 내질러요. 그 소리는 실처럼 엉켜 있어요.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으나 엉킴 속에서 간간이 몇 마디가 튕겨 나와요. 

“으아!”

“저리 가!”

“오지 마!”

“멈춰!”

“서라고!”

“이리 와!”

도망치는 남자아이가 한가로이 공놀이 하는 여자아이 쪽으로 향해요. 어린 여자아이는 엄마가 던지려는 공에 집중하고 있어요. 자기에게로 달려오는 남자아이도, 그 뒤를 바짝 쫓는 개도 못 봤어요. 그 장면을 본 건 공을 던지려던 엄마예요. 

“은주야! 이리 와!”

갑자기 엄마가 손짓하자, 어린 여자아이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살짝 구부려있던 몸을 쭉 펴요. 바로 그때 남자아이가 부딪힐 듯이 스쳐 지나가요. 이어 개가 나타나요. 

“엄마야!”

여자아이가 뒷걸음질 쳐요. 그러나 두 걸음 만에 뒤로 넘어져 버려요. 엉덩방아를 찧은 여자아이는 커다란 울음을 내놓아요. 시루가 뜀을 멈춰요. 뒤를 돌아봐요. 성큼성큼 걸어서 여자아이에게로 향해요. 

여자아이는 커다랗고 노란 개가 자기에게로 다가오는 것을 봐요. 꿀꺽, 울음을 거둬들여요. 엉덩이 걸음으로 도망치려 해요. 그러나 몇 걸음 못 가서 개와 마주해요. 여자아이는 상체를 뒤를 눕혀요. 거의 잔디밭에 누울 듯이. 

시루는 여자아이에게 얼굴을 가져가요. 여자아이가 얼굴을 옆으로 돌려요. 시루의 큰형이 다급하게 소리쳐요. 

“시루, 안 돼!”

시루가 얼굴을 뒤로 물려요. 

“이리 와!”

시루의 얼굴이 큰형 쪽으로 향해요. 그때 여자아이의 엄마가 달려와 딸을 품에 안아요. 등을 개 쪽으로 돌려요. 그 등에서 딸을 보호하려는 의지가 강하게 뿜어져 나와요. 


시루는 큰형을 바라보기만 하고 큰형에게로 가지 않아요. 반짝이는 눈으로 잔디밭을 휘 둘러보아요. 그러다 저만치서 숨을 돌리고 있는 개를 무서워하는 남자아이를 발견해요. 겅중겅중 뛰어서 남자아이에게로 달려가요. 개를 무서워하는 남자아이는 또 혼비백산해요. 무작정 달려요. 잡히면 죽는다는 각오가 두 다리를 채찍질하는 듯해요. 

“으아아아아!”

또 추격전이 펼쳐져요. 변함없이 1위는 개를 무서워하는 남자아이예요. 2위는 시루고요. 시루는 쫓는 재미를 알아요. 힘껏 달려서 남자아이를 붙잡지는 않아요. 그런 시루 뒤를 개를 무서워하는 남자아이의 친구들이 쫓아요. 이번 추격전에는 시루의 큰형 대신 작은 형이 참여해요. 바통 터치가 늦어서 작은 형이 또 꼴찌예요. 이 추격전에 시루의 작은 형을 투입한 건 지금껏 상황을 지켜보기만 하던 시루 엄마예요. 시루 엄마는 수양버들 옆 나무 의자에 앉아서 감독 역할을 해요. 달리는 사람들이 수양버들 앞을 지날 때 시루 엄마가 소리쳐요. 

“얘들아, 뛰지 마! 뛰니까 더 쫓는 거야!”

개를 무서워하는 남자아이의 친구들이 그 말을 들었어요. 뜀을 멈추고 개를 무서워하는 친구를 향해 합창해요.

“뛰지 마! 뛰지 마! 뛰지 마!”

그러나 개를 무서워하는 남자아이는 계속 뛰어요. 뛰지 말라는 친구들의 목소리를 못 들은 걸까요, 무서워서 뜀을 멈출 수 없는 걸까요? 개를 무서워하는 남자아이는 작은 원을 그리며 또 어린 여자아이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요. 

여자아이는 심기일전하고 다시 공놀이를 시작하려는 참이었어요. 여자아이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쳐요. 그 비명이 시루의 흥미를 끌었어요. 시루는 남자아이를 버리고 여자아이를 쫓아요. 여자아이는 더 큰 비명을 질러요. 그러다 앞으로 엎어져요. 와앙, 울음을 터트려요. 시루가 여자아이에게로 다가가요. 울음을 터뜨린 여자아이가 고개를 들고 다가오는 개를 봐요. 여자아이가 울음을 멈춰요. 얼음 조각상처럼 얼어버려요. 

여자아이의 엄마가 미친 듯이 딸에게로 달려가요. 

그보다 먼저 당도한 시루의 큰형이 시루의 목줄을 잡아요. 시루의 큰형은 시루를 끌고 수양버들 옆 나무 의자에 앉아 있는 엄마에게로 가요. 시루 엄마는 앉아서 그들을 맞이해요. 시루의 표정은 개선장군 같아요. 혀를 길게 빼문 얼굴에는 밝은 기운이 가득해요. 오랜만에 즐거운 놀이를 했다는 기쁨. 엄마에게 자랑하고픈 뿌듯함. 엄마는 이 소동의 주인공 시루에게 아무 말하지 않아요. 조용히 두 손으로 시루의 얼굴을 만져줘요.

저쪽 엄마는 겁에 질린 딸을 꼭 끌어안고 있어요. 얼어붙어버렸던 딸의 울음이 아늑한 엄마의 품에서 녹아요. 푸른 울음이 엉엉 울려 퍼져요. 엄마는 딸의 등을 오래오래 도닥여요. 이윽고 딸의 울음이 잦아들고 엄마는 딸을 일으켜 세워요. 다리, 무릎, 팔꿈치, 몸 여기저기를 살펴요. 딸의 무릎을 쓰다듬어요. 무릎에 입을 대고 호~입김을 불어요. 엄마의 사랑이 담긴 마법의 입김. 

엄마는 딸의 손을 잡고 천천히 잔디밭을 걸어요. 공놀이를 하던 곳으로 가서 외로이 버려져 있던 공을 주워 들어요. 엄마가 공을 들고 딸을 바라보자 딸이 고개를 저어요. 엄마는 딸의 손을 꼭 잡고 물건을 주섬주섬 챙겨요.  

    

그 모습을 시루 엄마는 바라만 보고 있어요. 옆에서 골든 레트리버 장군이 아빠가 큰 소리로 말해요.

“작년에 길을 가는데, 한 할머니가 우리 장군이를 보더니 깜짝 놀라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져 버린 거라. 병원에 가야 하네 어쩌네 하길래 병원비로 이백만 원을 줬어요.”

제가 말해요.

“장군이는 가만히 있었다면서요? 그런데, 이십만 원도 아니고 이백만 원을 줬어요?”

“장군인 그냥 걸어가고 있었어요. 아무 짓도 안 했어. 줄도 이렇게 짧게 잡고 있었고. 할머니 혼자서 놀라고 혼자 넘어졌지. 이렇게 큰 개는 처음 본다더라고. 원래 개를 무서워하기도 했다 하고. 그러니 어쩌겠어? 내 개로 인해 다쳤으니까 미안해서 줬지. 노인네가 고관절이라도 다쳐봐요. 큰일이지. 사실 할머니 자식들이 똘똘 뭉쳐서 소송 걸어올까 봐 겁이 나기도 했고.”

장군이 아빠의 눈길이 잔디밭 저쪽으로 날아가요. 

“저 여자아이는 많이 다치지는 않아 보이는데, 놀라긴 많이 놀랐겠어.”

그제야 저는 이 모든 말이 시루 보호자들 들으라는 소리인 줄 깨달아요. 수양 버드나무 아래의 나무 의자에 시루 엄마, 시루 큰형, 시루 작은 형이 나란히 앉아 있어요. 시루의 큰형은 시루의 목줄을 만지작거리고, 시루의 작은 형은 시루의 야구공을 만지작거려요. 

잔디밭 저쪽에서는 어린 여자아이와 엄마가 잔디밭을 떠나는 중이에요. 또 다른 쪽에서는 개를 무서워하는 남자아이와 그 친구들이 잔디밭을 떠나는 중이고요.    

  

저는 이 잔디밭을 좋아해요. 이유는 여러 가지예요. 먼저 이곳에선 우리 솔이가 목줄을 풀고 뛰놀 수 있기 때문이에요. 이곳에서 개들이 노는 시간은 주로 오후예요. 오전에는 어르신들이 그라운드 골프를 즐기지요. 처음에는 어르신들과 마찰이 잦았대요. 어르신들은 개똥을 밟을 때가 많다면서 여기서 개 데리고 놀지 말라고 했고, 견주들은 여기가 어르신들이 세 놓은 곳도 아닌데 왜 놀지 말라고 하느냐며 항변했고요. 양쪽의 감정이 극으로 치달아가다가 그 정점에 이르기 직전에 서로 한 발씩 양보하면서 극적으로 합의가 이루어졌대요. 오전에는 어르신들이 그라운드 골프를 치면서 먹다 남은 간식 부스러기를 잘 치우기로 하고, 오후에는 반려인들이 개 놀이터로 쓰면서 개똥을 잘 치우기로 하고요. 그 뒤로 여기 오는 반려인 중 오래된 반려인들은 내 개똥은 물론이고 치우지 않은 남의 개똥도 기꺼이 치워요. 덕분에 강변 잔디밭이 개똥 없이 깨끗하게 유지되고 있지요.     


또 여기 강변에선 저도 산책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개 놀이터에 가면 보호자들은 개만 돌보아야 하잖아요. 애견 카페도 그렇고요. 저는 저의 산책이 곧 개의 산책이기를 바라는데 여기 강변에선 그 두 가지를 모두 충족하지요.    

  

개에 관한 정보도 얻을 수 있어요. 제가 여기서 처음 만난 개가 시루였어요. 처음 개에 관한 정보를 준 사람이 시루 엄마였고요. 그때 저는 개를 키우게 된 지 얼마 안 된 때여서 개털 때문에 고민이 많았지요. 그런 저에게 시루 엄마가 말했어요.

“밖에서 빗질하고 들어가면 덜해요.”

“개 빗이 있어요?”

“그럼요. 저는 인터넷에서 샀어요.”

순간 저는 앞이 환해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 뒤 저는 늘 여기로 왔는데 여기서 만난 보호자들이 기꺼이 자신의 경험과 정보를 나누어주었어요. 그 모든 정보는 솔이를 키우는 데 적잖은 도움이 되었어요. 그들 덕분에 제가 덜 헤매고 더 빨리 개를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어요.      


사람은 저마다 가슴에 담고 있는 사연이 있지요. 여기는 그 사연을 털어놓는 곳이기도 해요. 한 비숑 프리제 보호자는 자신에게 지적장애인 아들이 있다고 했어요. 그녀가 잔디밭에 있으면 그녀의 지적장애인 아들은 수도 없이 영상전화를 걸어와요. 용건은 아주 간단하죠. “쨈 사와.” 아니면 “빵 어딨어?”. 이 아들은 이 사실을 세 번 네 번 확인하고 또 확인해요. 

하루는 그녀가 말했어요. 

“개들도 아는 것 같아요. 얘도 아는 것 같고요.”

그녀는 자기 앞에 앉아 있는 반려견 비숑 프리제를 내려다보았어요.

“얘가 유독 우리 아들만 무시하거든요. 아들이 뭐라고 해도 아예 안 들어요. 걍 개무시해요.”

저는 고개를 갸우뚱했어요. 그러자 그녀가 말을 이었어요.

“우리 아들이 장애가 있잖아요. 그걸 얘가 안다고요. 안 그러면 왜 얘가 우리 아들만 개무시하겠어요? 얘는 우리 아들 말만 안 듣거든요. 요새는 우리 아들은 얘를 개무시하고 얘는 우리 아들을 개무시하고, 둘이 그러고 살아요.”

그녀가 짧게 웃었어요. 

“근데 딱 하나, 얘가 우리 아들한테 달려가는 때가 있거든요. 그때가 언제냐면 밥 먹을 때예요.”

“뭐 얻어먹으려고요?”

“아니요. 우리 아들은 얘한테 뭐 안 줘요. 지 먹기 바빠서.”

“그럼 왜?”

“흘린 것 주워 먹으려고요. 우리 아들이 장애인이잖아요. 밥을 먹을 때 반은 흘리거든요. 그때를 노리는 거예요. 식탁 밑에 앉아 있다가 아들이 흘리는 것을 얼른 주워 먹어요. 그렇게 다 주워 먹고 나면 또 쌩까요. 개무시 타임-.”

그녀가 길게 웃었어요. 저도 따라 웃었어요. 마음속으로는 굳이 털어놓지 않아도 될 사연을 대범하게 털어놓은 그녀가 대단해 보였지요.      


여기는 개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와서 볼 수 있는 곳이에요. 그 중에는 지적장애인 여성도 있어요. 

난감한 일은 솔이가 그녀를 보면 입속으로 컹컹 짖는 거예요. 안아달라며 보채기도 하고요. 솔이만 그러는 게 아니에요. 믹스견 시루도 짖고 믹스견 모찌도 짖어요. 그러고 보니 그녀를 보고 짖는 개들은 모두 믹스견이네요. 사람을 좋아하기로 유명한 비숑 프리제나 푸들은 짖지 않아요. 대신 다가가지 않지요. 다른 사람들에게는 꼬리를 흔들며 애교를 부리는 녀석들이 이상하게도 그녀에게만은 다가가지 않고 멀리서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해요. 

그래도 그녀는 개들이 이뻐 죽어요. 다가오면 외면하는 솔이까지도요. 

“솔아, 왜 그래? 난 네가 이뻐서 그러는데. 솔이가 왜 그러는 거예요?” 

“검은 옷 때문에 그러는 것 같아요. 얘는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을 무서워해요.”

그 뒤에 왔을 때 그녀는 검은 옷을 벗어버렸어요. 밝은 옷을 입고 환하게 웃으며 나타났어요.  

    

또 여기는 쓰지 않는 반려견 용품을 나눔 하는 곳이기도 해요. 저는 여러 보호자에게서 강아지 옷, 공, 리더 줄 같은 것을 나눔 받았어요. 나눔 받은 것 중에서 우리 솔이에게 작은 옷들은 또 나눔 했고요.      


강변 잔디밭은 이런 곳이에요. 반려인, 비반려인, 장애인, 어린이, 어르신들이 함께 어울리는 공간이죠. 나눔의 공간이기도 하면서 그라운드 골프, 소풍, 공놀이, 축구, 산책하는 모든 이들에게 열린 공간이기도 하죠. 

솔직히 저는 시루 엄마의 행동에 크게 실망했어요. 

“미안합니다.” 

이 한마디가 개들이 뛰노는 이 공간을 지키는 일이라는 걸 왜 모를까요? 개가 잘못했을 때 잘못이라고 알려주는 것이 개를 사랑하는 방법이라는 걸 왜 모를까요? 아무리 시루가 유기견이었던 상처를 안고 있다지만 오냐오냐 하는 것만이 개를 사랑하는 방법이 아니라는 걸 왜 모를까요?

내가 다른 이들을 존중할 때 다른 이들이 내 개를 존중한다고 저는 생각해요. 생각보다 세상은 공평하니까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어느새 잔디밭엔 검은색 그늘이 기다래졌어요. 반짝이는 햇살이 점점 뒷걸음질 치고 있어요. 소풍을 즐기는 젊은 여자들의 곁을 지나면서 저는 가벼운 말을 건네요.

“춥지 않아요?”

“추워요.”

저는 미소를 머금어요. 

“아름다운 그림 같아요, 소풍 하는 모습이.”

침범해 오는 그늘 끝에 앉은 그녀들이 반짝이는 웃음을 뿌려요.

“안녕히 가세요! 솔이야, 안녕! 또 보자!”

내일은 맑음을 약속하는 노을 같은 인사에 우리는 기분 좋게 잔디밭을 떠나요. 내일은 여기서 또 누구를 만나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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