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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인 May 22. 2024

15화  하양이와 까망이

여느 때처럼 그녀와 그녀의 반려견들은 강변을 걷고 있었어요. 강변 옆 파크 골프장에선 어르신들이 파크 골프를 치고 있었고요. 

그때 갑자기 파크 골프장 쪽에서 고함이 들렸어요. 처음에 그녀는 뭔 소린가 했어요. 그 소리가 자기한테 하는 소린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지요. 원체 지방색 짙은 말투여서 선뜻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탓도 있었고요. 

그녀가 고함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한 할머니가 파크 골프장 안에서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어요. 둘 사이에는 자전거 도로가 있었어요. 거리가 3m 될까 말까. 그 거리에서 그녀를 노려보는 파크 골프장 할머니의 눈빛은 사나웠어요. 입술은 못마땅하게 실룩거렸고요. 그녀가 가까이 있었다면 쥐고 있는 파크 골프채로 그녀를 한 방 칠 기세였어요. 할머니가 또 소리쳤어요.

“개를! 개같이…!”

그녀는 ‘개’라는 단어를 알아들었어요. 주변을 휘 둘러보고서 자기에게 하는 말임도 확실하게 알았어요. 자기 앞뒤로 개를 데리고 있는 사람은 그녀밖에 없었으니까요. 근데 왜요?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했어요. 그녀와 그녀의 개들은 그저 강변을 따라 걷고 있었을 뿐인데, 그녀의 반려견이 할머니를 위협한다거나 짖은 것도 아닌데, 왜 저러죠?

그녀는 걸음을 멈추었어요. 파크 골프장 할머니도 걸음을 멈추었어요. 파크 골프장 경계에 쳐진 초록색 그물에 두 팔을 올린 할머니는 째진 눈으로 그녀를 잡아먹을 듯이 째려보았어요. 그녀가 물었어요. 

“방금 뭐라고 했어요?”

파크 골프장 할머니가 말했어요.

“귓구멍이 처먹었나! 그리 뚜렷이 가르쳐줘도 못 알아처먹고! 그러니 고 모양이재! 잘 처들어라! 개를 개같이 키워야재!”

이제야 그녀는 확실하게 이해했어요. 그녀는 자신의 반려견들을 내려다보았어요. 순하고 이쁜 두 마리의 개가 물음표를 눈에 담고 그녀를 올려다보고 있었어요. 엄마, 왜 섰어요? 저 할머니가 왜 고함을 질러요?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나요? 

“아냐, 아냐, 너희들은 잘못한 게 하나도 없어. 걱정하지 마. 괜찮아.”

그녀는 개들을 다독인 뒤 고개를 빳빳이 들고 험악한 눈으로 할머니를 노려보았어요. 

“우리 애들이 뭘 잘못했는데요? 잘만 걸어가고 있는데 왜 행패예요? 골프 치러 왔으면 조용히 골프나 치고 갈 것이지.” 

“니가 개를 개같이 제대로 키웠으모 이런 소릴 안 듣재! 고따우로 키웠으니깨! 그러니깨! 내가 개를 개같이 키워야재! 하고 가르쳐주는 것이재!”

골프장 할머니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어요. 들고 있던 파크 골프채는 초록색 경계를 넘어서 그녀의 반려견을 향해 삿대질해 댔어요. 그녀의 반려견들이 놀라서 그녀의 다리 뒤로 숨었어요. 두려움에 찬 눈빛으로 그녀를 올려다보았어요. 순간 그녀의 머리꼭지가 팽 돌았어요. 그녀는 침을 튕기며 고함을 빽 질렀어요.

“이 애들이 당신한테 뭔 잘못을 했다고 이래요? 당신, 미쳤어요?” 

“뭐라! 당신? 저 입을 쫙 찢어삐까! 너 같은 년은 개를 데리고 여기 지나다니지 마라! 사람이 사람 같아야지! 개도 개 같아야지!”

“이 길이 당신 길도 아니면서 지나다니지 말라 간섭인데! 인간이 인간 같아야지!”

“개가 똥을 바깥에 아무 데나 누고!”

“그럼 개가 똥을 바깥에 누지 당신 집에 가서 눌까!”

“너 같은 년 때문에 욕이 더 나온다. 아나?”

“너 같은 노인네 때문에 욕이 더 나온다. 아나?”

오고 가는 고함이 자전거 도로를 막았어요. 자전거도 서고 사람도 서서 두 사람이 쏘아대는 말 화살을 구경했어요. 그때 다른 할머니들이 그 할머니를 끌고 다른 쪽으로 갔어요.      


“쌈은 그걸로 끝났어요. 근데 그때부터 이 애들이 냄새도 안 맡고 자꾸 내 눈치만 봐요. 빨리 화를 삭여야겠어요. 내가 화를 삭여야 얘들이 편안해질 거예요.”

아직 감정 찌꺼기가 잔뜩 쌓인 얼굴로 그녀는 니트 모자를 벗어 젖혔어요. 리더줄을 잡지 않은 손으로 긴 머리카락을 헤집어서 바람의 길을 만들고는 열을 식혔어요. 그런 뒤 한층 차분해진 그녀가 다정한 서울말로 반려견들을 안심시켰어요.

“이제 엄마 괜찮으니까 눈치 그만 봐도 돼. 지금은 싸우는 거 아니야. 이야기하는 거야. 엄마는 이야기 좀 더 할 거니까 너희는 너희하고 싶은 대로 해도 돼. 냄새 맡고 싶으면 냄새 맡고, 오줌 누고 싶으면 오줌 누고, 알았지?”

그녀가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저는 조잡한 추측을 꺼내 놓았어요. 

“그쪽을 쳐다봤다고 그랬을까요?”

그녀가 대답했어요.

“나는 그쪽을 안 쳐다봐요. 오로지 이 애들만 바라봐요. 이 애들은 보통 애들과 다르잖아요. 어느 날 갑자기 내 곁을 떠날 수 있는 애들이잖아요. 딴 곳을 쳐다보고 할 여유가 어디 있어요. 일 초라도 이 애들을 더 바라봐야죠.”

저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녀에겐 더없이 특별한 이 아이들. 이 아이들이 그녀에게 특별한 이유는, 이 아이들이 유기견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랍니다. 저는 이 사연을 얼마 전에 알게 되었지요.      


그녀의 두 반려견 이름은 하양이와 까망이. 둘은 한배에서 태어난 자매예요. 그런데 둘이 달라도 너무 달라요. 먼저 하양이의 몸무게는 3.5kg인 까망이의 거의 두 배쯤 돼요. 혹 하양이가 비만이냐고요? 아니요. 그저 하양이의 골격이 까망이보다 많이 큰 것뿐이에요. 

둘은 덩치만 다른 게 아니에요. 털 색깔도 달라요. 하양이는 이름처럼 하얀 털을 지닌 개죠. 까망이는 까만 털을 지닌 개고요. 그런데 둘이 증표처럼 서로의 털을 조금씩 가지고 있어요. 온통 하얀 털 뿐인 하양이는 귀 테두리에 까만 털을 지니고 있고요. 온통 까만 털 뿐인 까망이는 마치 굵은 붓으로 하얀색 물감을 듬뿍 찍어 딱 한 번 붓 터치를 한 것같이 가슴 한복판에 하얀 털을 지니고 있지요. 

둘은 성격도 달라요. 하양이는 활달하고 애굣덩어리에 재롱쟁이죠. 까망이는 새침쟁이예요. 까칠한 소심쟁이이기도 하고요. 

하양이는 사람을 좋아해요.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도 서슴없이 다가가 몸을 부비부비해요. 그 사람이 손으로 몸을 만져주면 좋아죽어요. 입술이 꽃봉오리처럼 벌어지고 두 눈이 윤슬처럼 반짝여요. 살짝 오므린 발은 솜뭉치 같고 뱅글뱅글 도는 꼬리는 바람개비 같아요. 하양이는 제 속에 사랑의 폭포를 품고 있어서 흘러넘치는 사랑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렇게 하양이가 한바탕 사랑을 쏟아붓고 나면 그제야 까망이는 그 사람에게 슬금슬금 다가가요. 하지만 까망이의 꼬리는 대나무 같고 몸은 통나무 같아요. 꽉 다문 입술은 꽃받침으로 꼭꼭 싸인 꽃봉오리 같고, 두려움 서린 눈빛은 밤하늘의 은하수 같아요. 까망이는 가만히 기다려요. 하양이를 쓰다듬던 손이 제 몸을 쓰다듬기를. 하지만 한 번 쓰다듬으면 그걸로 끝. 까망이는 쌩 가버려요. 

그래서일까요? 

둘이 자매라고 밝히면 모두들 깜짝 놀라요. 마치 뭔가 중대한 비밀이라도 밝힌 것처럼 두 눈을 동그랗게 뜨죠.

“진짜요? 진짜로 한배에서 태어났어요?”

심지어 동물병원의 수의사 선생님들까지도 이렇게 되물어요. 그렇다고, 둘이 자매라고, 한배에서 태어난 자매가 확실하다고 몇 번이고 말해도 아리송한 표정으로 하양이와 까망이를 번갈아 바라보지요.  

    

그들이 버려진 건 이태 전 어느 겨울이었어요. 그날은 전날 내린 비로 길 위에 살얼음이 끼고 공기가 살을 에는 아침이었죠. 그녀는 주택 이 층 난간에 서서 꽁꽁 얼어버린 세상을 둘러보고 있었죠. 바로 그때 일 층 차고 귀퉁이에 버려진 강아지 인형이 눈에 띄었어요. 

그녀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어요.

“누구야? 누가 양심도 없이.”

그녀는 강아지 인형을 10L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려야 할까, 5L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려야 할까 가늠했어요. 강아지 인형이 그리 크지 않으니 꾹꾹 눌러 담으면 5L 쓰레기봉투도 가능할 것 같았어요. 그녀는 집으로 들어가 5L 쓰레기봉투를 들고 나왔어요. 

바스락바스락 쓰레기봉투의 입을 벌리면서 차고 앞으로 갔어요. 순간 그녀는 깜짝 놀랐어요. 강아지 인형이라고 생각했던 그것들은 살아있는 강아지였어요. 하얀색 강아지와 까만색 강아지가 몸을 꼭 붙이고서 오들오들 떨고 있었어요. 

“어머나! 얘들아! 너희들, 여기서 뭘 하니?”

그녀가 눈을 깜박였어요. 강아지들은 낯선 그녀를 보고도 도망치지 않았어요. 추워서 몸이 꽁꽁 얼어버린 것인지, 도망칠 힘이 없는 것인지, 아예 도망칠 생각이 없었던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녀는 강아지들 앞에 앉았어요. 까만색 강아지는 하얀색 강아지 뒤에 숨어서 머리가 빼쭉 내밀고 있었어요. 그녀는 손을 내밀자 하얀색 강아지가 그녀의 손을 핥았어요. 

“언제부터 여기 있었니?”

“….”

“밥은 먹었니?”

“….”

그녀는 주위를 살펴보았어요. 누가 강아지를 버렸을까요? 버린 게 아니라면 누가 이렇게 추운 날 아침에 강아지들을 남의 차고 두었겠어요? 잠깐 우유를 사러 마트에 간다고 여기에 두었겠어요? 이웃집에 잠깐 들렀다 온다고 여기에 두었겠어요? 그러나 거리는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텅 비어 있었어요. 

오늘 같은 날에 강아지들을 버리고 간 사람은 정말로 모진 사람이야. 다른 숱한 날들도 많은데, 하필이면 동장군이 이토록 살벌한 위세를 떨치는 날에 버렸을까. 설마 얼어 죽으라고? 그녀는 분노로 부글부글 끓었어요. 그 순간 순진한 까만 눈과 눈이 마주쳤지요. 그 까만 눈이 그녀에게 구원의 손길을 애타게 구하고 있었어요. 그녀는 부글부글 끓는 분노를 부랴부랴 누르고 푸딩 같은 말을 끌어올렸어요. 

“얘들아, 춥지? 일단 집으로 들어가자. 집에 가서 몸 좀 녹이고 뭐 좀 먹자. 이리 와~.”

그녀는 오른쪽 옆구리에는 하얀 강아지를, 왼쪽 옆구리에는 까만 강아지를 끼었어요. 강아지들의 몸은 얼음 덩어리를 같았어요. 불덩어리 같은 분노가 또 치밀어 올랐어요. 그러나 강아지들이 무서워할까 봐 분노를 생크림처럼 부드럽게 내뱉었어요. 

“아이고, 누가 이렇게 예쁜 너희들을 버렸을까? 참 못된 사람이지? 정말 개만도 못한 사람이야, 그치?” 

집에 들어와서 강아지들에게 우유를 데워 주었어요. 강아지들은 찹찹찹, 소리를 내며 우유를 먹었어요. 그러고 나자 하얀색 강아지가 발라당 드러누워 배를 드러내었어요. 마치 나는 당신의 강아지예요,라고 말하는 듯이. 그 옆에서 까만색 강아지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어요. 저도 그래요,라고 말하는 듯이. 

“알았어, 알았어. 걱정하지 마. 만약 너희들이 버림받은 거면 그땐 내가 너희들을 보호해 줄게. 그러니까 마음 편히 가져. 알았지? 내가 강아지를 키워본 적이 없어서 좋은 엄마가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약속할 수 있어. 내가 너희들의 엄마가 되면 앞으로 너희들을 길바닥에서 오들오들 떨게 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거야.”

그녀는 자처해서 임시보호자가 되었어요. 임시보호자로서 강아지의 이름도 지었어요. 털 색깔을 따서 하양이와 까망이로. 

한가로웠던 그녀의 주말은 두 강아지로 인해 바빠졌어요. 동물보호시설 홈페이지에 보호 중 동물 등록을 했고, 급한 대로 강아지 물품을 몇 가지 샀고, 중요한 교육을 몇 가지 했어요. 딱히 대소변 교육은 필요치 않았어요. 낯선 집인데도 둘은 단번에 똥오줌을 가렸으니까요. 또 안 돼! 하면 안 하고, 이거 가지고 놀아하면 그것만 가지고 놀았어요. 둘을 놔두고 외출을 했다가 돌아와도 아무 문제가 없었어요. 하양이는 까망이를 살뜰히 보살폈고 둘은 세상 얌전하게 그녀를 기다렸어요. 

“이렇게 착한 너희들을 대체 누가 왜 버렸을까?”

한 주가 가고 두 주가 가도 하양이와 까망이를 찾는 사람은 없었어요. 동물보호시설에서도 하양이와 까망이가 버림받은 것이 분명하다, 했어요. 사람들이 개를 버리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요. 입질한다든가, 병들었다든가, 귀여웠던 강아지가 기대했던 개로 자라지 않았다든가, 싫증 났다든가. 한데 하양이와 까망이는 아무리 봐도 버릴 이유가 없어 보였어요. 버림받았다는 추측이 확신으로 굳어지면서 하양이와 까망이한테서 어떤 문제 행동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자신이 부끄러웠죠. 

“얘들아, 정말 미안하다. 내가 너희들을 오해했나 봐.”

그러나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어요. 하양이와 까망이가 버림받은 이유가 드디어 밝혀졌어요. 

     

그날은 하양이와 까망이를 입양한 지 한 달쯤 되는 날이었어요. 갑자기 까망이가 눈을 까뒤집고 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침을 질질 흘리기 시작했어요. 

“어마! 까망아, 왜 그래?”

그녀는 까망이를 안았어요. 까망이의 떨림을 멈추게 하려고 까망이를 껴안은 팔에 힘을 주었어요.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어요. 까망이는 태풍이 몰려오는 길목에 선 파도처럼 출렁이며 몸을 떨었죠. 그러길 10여 분. 마침내 까망이의 발작이 멈췄어요. 격렬한 떨림에 힘을 모조리 소진한 까망이는 죽은 듯이 축 늘어졌지요. 

그녀는 서둘러 동물병원으로 갔어요. 급하게 MRI 촬영을 했어요. 긴장한 시간이 숨 막히게 흐르고 나서야 결과가 나왔어요. 까망이는 선천성 뇌 병변 장애를 지니고 있었어요. 

“둘이 자매라고요? 진짜로 한배에서 난?”

수의사가 물었어요. 

“예, 자매 맞아요.”

“유기견이었다면서요? 아니지 않을까요? 이렇게나 둘이 다른데?”

“아니요, 자매 맞아요. 확실해요.”

수의사가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어요. 

“뭐, 보호자가 그렇다니까… 맞겠죠. 근데 만약 둘이 자매라면 하양이도 선천성 뇌병변 장애가 있을 가능성이 매우 커요. 잘 지켜보세요. 몇 달 안으로 발작이 일어날 수 있어요.”

그녀는 약을 타서 집으로 돌아왔어요. 까망이의 발작을 막아주는 약이었죠. 앞으로 평생 먹어야 하는 약이기도 했고요. 

까망이가 약을 먹기 시작한 지 한 달째 되던 날, 하양이가 발작을 일으켰어요. 까망이처럼 침을 흘리진 않았지만 구석진 곳에 콕 처박혀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어요. 마치 전원을 끌 수 없는 안마기가 하양이의 몸 안에서 작동하는 것 같았어요. 좁은 틈바구니에서 끼어서 떨고 있는 하양이를 끌어내려고 해도 하양이는 거부했어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오히려 더 깊숙이 들어가려고 했죠. 몇 분의 시간이 몇 시간처럼 흘러갔어요. 마침내 발작이 멈췄어요. 그녀는 축 늘어진 하양이를 안고 또 동물병원으로 갔어요. 하양이는 까망이와 같은 선천성 뇌병변 장애라는 진단을 받았어요. 

그 후로 하양이도 까망이와 같은 약을 먹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2년의 세월이 흘렀어요. 지금도 하양이와 까망이는 계속 약을 먹고 있어요. 올해 까망이는 두 번 발작을 일으켰어요. 수의사 말이, 아무리 약을 잘 챙겨 먹여도 발작이 일어나는 걸 모두 막을 수는 없대요. 발작은 한 해 세 번 일어나면 위험하다고도 했어요. 이제 까망이는 한 번 남았어요. 어쩌면 그때 까망이의 생명이 꺼질 수 있어요. 그래서 그녀는 시시각각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까망이를 지켜보고 있어요. 

“오늘이 그날일까? 불안불안했던 마음이 자정이 가까우면 아, 오늘은 무사히 지났네, 우리 까망이가 하루 더 살 수 있겠다, 하는 마음으로 변해요. 그 순간 기쁘면서도 가슴이 미어지는 것 있죠? 하루하루 가느다란 나뭇가지에 매달려서 생명을 연장하는 기분이에요. 왜 있잖아요? 절에 가면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사람. 수십 미터 아래는 구렁이가 있고 위에서 떨어지는 꿀을 한 방울씩 받아먹으며 위태로운 생명을 이어가는 그림. 그 심정은 당사자 아니면 그 누구도 알지 못해요. 나는 이 애들의 마지막 날이 언제 올지 알 수 없고, 그래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어요.”

숨을 쉬지 않고 말하는 그녀는 남은 말을 이어갔어요. 

“다행스러운 건 하양이가 올해 한 번도 발작을 일으키지 않았다는 거예요. 내가 다니는 동물병원이 서울에 있어서 그끄제 얘들을 데리고 서울에 올라갔다 왔는데 수의사 선생님이 대뜸 하는 말이, 아니 애들에게 무슨 짓을 한 거예요? 라는 거예요. 내가 깜짝 놀라서, 왜요? 뭐가 잘못됐어요? 하고 물으니까 수치가 다 너무 좋잖아요! 라는 거예요. 얼마나 기쁘던지! 어린애처럼 손뼉을 치면서 폴짝폴짝 뛰었다니까요.”    


순간 봄날 같은 그녀의 표정이 사납게 변했어요. 눈살을 찌푸리며 머리카락 사이로 손가락을 넣고 마구 흔들었어요. 

“또 열불이 확 올라오네. 나는요, 이 애들에게 뭐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막 화가 나요. 나보고 뭐라고 하는 건 다 참겠는데 이 아이들에게 뭐라고 하는 건 못 참겠는 것 있죠? 그 할머니 말예요, 파크 골프장. 남의 개한테 참견은 왜 하는 건데. 이 아이들이 뭔 잘못을 했다고? 개한테 욕을 하는 인간들은요, 병에 걸렸다고 얘들을 버린 인간들과 하나도 다를 바 없어요. 개만도 못한 인간들이에요!”

저는 그녀의 반려견들을 바라보았어요. 오늘 그녀의 반려견들은 레이스가 풍성하게 달린 하얀 면 블라우스에 빨간 멜빵 체크 무늬 플레어 치마를 입었네요. 여느 때처럼 둘이 똑같이 쌍둥이처럼요. 그녀를 닮아서인지 그녀의 반려견들도 패셔니스타예요. 어제는 엉덩이에 레이스가 달린 연하늘색 패딩 올인원에 분홍색 핀을 머리에 꽂았고요, 그제는 중세 귀족 드레스처럼 레이스가 풍성한 분홍색 시스루 드레스를 입었지요. 

그래서인지 밋밋한 초록색 일색인 강변에서 그녀와 그녀의 반려견들은 눈에 확 띄어요. 저도 그녀와 인사 나누기 전부터 이미 그녀와 그녀의 반려견들의 존재를 알고 있었죠. 더러는 놀란 눈으로, 더러는 경외의 눈으로, 더러는 의문의 눈으로 그들을 쳐다보는 사람들 중 한 사람이었죠. 

왜 놀란 눈으로 바라봤냐? 물으면 반려견들의 패션이 너무 화려해서요. 왜 경외의 눈으로 바라봤냐 물으면 역시 반려견들의 패션이 너무 독특해서요. 왜 의문의 눈으로 바라봤냐 물으면 사람이야 제가 좋아서 그렇게 입는다 치지만, 개는 아니지 않아? 사람 눈에 보기 좋아라고 입히는 것이 진정 개를 위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바로 그때 제 머릿속에 파크 골프장 할머니가 왜 개를 개같이 키워야재! 하고 소리쳤는지 가능성 짙은 추측이 새로 떠올랐어요. 파크 골프장 할머니의 눈에도 개의 패션이 거슬렸던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지나가는 그녀를 붙잡고 생트집을 잡은 것이 아닐까요? 

솔직히 개를 키우는 처지인 저로서도 그녀의 반려견들 패션에 거부감이 일었으니까요. 파크 골프장 할머니도 화려한 개 패션이 개답지 못한 것으로 생각됐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이제야 들었어요. 지난겨울 솔이 옷을 사 입혔을 때의 남편처럼요. 남편은 옷을 입은 솔이를 보고 펄쩍 뛰었죠. “개가 무슨 옷이야!” 

솔이는 추위를 많이 타요. 5월인 지금도 밤에 담요를 안 덮어주면 자면서 낑낑 울어요. 낑낑 우는 소리에 깨어나서 보면 솔이는 덮어준 담요를 차버리고 몸을 최대한 동그랗게 말고 있지요. 담요를 덮어주면 그제야 한숨을 길게 쉰 후 깊은 잠에 빠져들어요. 이런 솔이에겐 겨울옷이 필수예요. 겨울에 옷을 입지 않고 밖에 나가면 사시나무 떨듯이 막 몸을 떨어대요. 알고 보니 새롬이도 그렇대요. 새롬이는 그레이하운드니까요. 

봄이 오면서 솔이는 옷을 입지 않는 날이 많아지고 있어요.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개 피부도 숨을 쉬어야 한다고. 개 뼈도 비타민 D가 필요하다고. 개 잠도 햇빛을 보아야 깊다고.      


바람이 그녀의 열불을 식혀주었는지 그녀의 얼굴을 물들었던 홍조가 사라졌어요. 눈에서 타오르던 분노의 불길도 잦아들었어요. 

“이 애들은 발작이 시작되고 나서 30분이 지나도록 발작을 그치지 않으면 바로 응급실로 가야 해요. 조금이라도 지체되면 사망에 이를 수 있거든요. 침을 흘리는 시간이 오래되어도 마찬가지예요. 오늘 얘들이 많이 놀랐을 텐데, 걱정이에요. 특히 까망이가. 오늘이 마지막 세상이면 어쩌죠? 내가 그냥 참을 걸 그랬어요.” 

그녀가 니트 모자를 썼어요. 숯같이 검은 그녀의 눈동자에서는 재 같은 후회가 엿보였어요. 

저는 새로운 추측을 목구멍으로 밀어 넣었어요. 새로운 추측이 이제 막 사그라든 그녀의 분노를 부채질해서 되살려 놓을까 봐. 그녀의 분노는 하양이와 까망이에게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제 눈에도 분명해 보였어요. 평소에는 활달한 하양이가 그때까지도 얼음처럼 얼어서 엄마만 바라보고 있었으니까요. 

그녀가 하양이와 까망이에게 말했어요.

“아이구, 심심했지? 이제 가자. 집에 가서 엄마가 맛있는 간식 줄게. 집까지 걸어갈 수 있지? 운동을 해야 몸이 건강해져. 병원에 가서 진찰도 잘 받을 수 있고.”

하양이와 까망이는 나란히 걷기도 하고 대각선으로 벌어지기도 했어요. 그러다 하나는 앞서고 하나는 뒤처졌는데 어쩌다 줄이 엉키고 말았어요. 

“잠깐만, 잠깐만. 어유, 너는 이쪽으로 가고 싶었어? 너는 저쪽으로 가고 싶었고? 괜찮아, 괜찮아. 이리와. 자자, 됐다. 가자. 기분 좋지? 날씨도 좋고?”

그녀는 오직 하양이와 까망이만 바라보며 걸었어요. 하양이와 까망이 말고는 세상에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 듯이. 

그들은 그동안 제가 허투루 보냈던 그 수많은 일 분 일 초를 정말 아껴 쓰고 있었어요. 언제 훅 꺼질지 모르는 생의 시간임을 잘 아니까 그런 걸까요? 사실 죽음을 예약한 사랑보다 더 간절한 사랑은 없죠. 따지고 보면 우리는 모두 죽음을 예약한 사람들인데, 왜 저는 그걸 자꾸 잊어버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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