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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인 May 29. 2024

16화  똥이 어디로 갔을까

저는 느티나무 아래 땅을 유심히 들여다봅니다. 근데 보이질 않아요. 오랫동안 허리를 구부리고 있었더니 허리가 아프네요. 허리를 쭉 펴고, 바람이 불 때마다 헐렁해지는 나뭇잎 사이로 드러나는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나이가 들어 눈이 침침해서 잘 보이지 않는지도 모르니까요. 잠시 눈에 쉼을 주고 나서 다시 낙엽을 들여다봅니다. 매의 눈으로 낙엽과 낙엽 사이를 샅샅이 훑습니다. 풀과 풀 사이도 찬찬히 훑습니다. 분명 여기 어딘가에 있을 겁니다. 아니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없네요. 아무리 둘러보아도 보이질 않아요. 

‘이런 변이 있나?’

저는 3m 정도 뒤로 물러나서 다시 그곳을 바라봅니다. 머릿속 GPS를 작동하여 위치를 가늠합니다. 위치를 잘못 파악해서 엉뚱한 곳을 찾았을 수 있잖아요. 이럴 때 평양 거리를 거니는 개미 한 마리까지도 추적한다는 미국의 GPS 기술을 이용할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아요. 그러면 제가 찾는 것을 단박에 찾을 수 있을 텐데요. 

제가 무엇을 찾느냐고요? 

뭐, 대단한 보물을 찾는 건 아니에요. 제가 찾는 건 개똥이예요. 방금 솔이가 눈 똥요. 

저는 솔이가 똥을 눌 때 위치를 기억하려고 애써요. 안 그러면 똥 봉투를 꺼내느라 잠깐 한눈파는 사이에 똥이 어디로 숨어버리거든요. 개똥 색깔이 흙 색깔과 비슷하고 낙엽 색깔과 비슷하다는 것을 개똥을 찾기 위해 여러 번 고생하면서 깨달았어요. 

아니, 먼 곳도 아니고 저만치서 눈 똥을 왜 못 찾느냐고요? 

그러게요. 그런데 저만 그러는 게 아니더라고요. 똥을 잃어버리고 허리 숙여 똥을 찾는 견주들을 저는 여럿 보았어요.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밀레의 ‘이삭 줍기’가 생각나요. 저는 머릿속으로 ‘이삭 줍기’를 ‘개똥 줍기’로 패러디하지요. ‘이삭 줍기’의 배경은 들판이지만 ‘개똥 줍기’의 배경은 잔디밭이에요. 거기엔 이삭 대신 개똥이 떨어져 있어요. 허리를 숙인 견주들이 한 손에 똥 봉투를 들고 개똥을 찾아요. 견주들 옆에는 방금 똥을 누고 기뻐하는 개가 한 마리 있고요. 그보다 먼저 똥을 눈 개는 똥 냄새가 멀리멀리 퍼져나가도록 땅바닥을 박박 긁고 있어요. 이미 똥을 누고 멀찌감치 떨어진 개는 똥 찾지 못하는 견주를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어요. 바로 우리 솔이처럼요.      


개똥은 변장술이 뛰어난 것 같아요. 반려견이 똥 누는 것을 보고 똥 봉투를 준비하는 그 잠깐 사이에 모습을 감춰버리니까요.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소풍 가서 했던 보물 찾기를 좀 더 열심히 할 걸 그랬습니다. 저는 보물 찾기를 잘 못 했어요. 외사촌은 나무줄기나 돌 틈에 낀 보물을 기가 막히게 잘 찾아내는 데 반해 저는 한 개도 못 찾았거든요. 보물이 저만 보면 어찌나 잘 숨어버리던지. 간혹 어쩌다 정말 힘겹게 찾아낸 보물은 꽝이었어요. 언제나 보물을 세 개 이상 찾아내는 외사촌에게 보물을 한 개도 얻지 못하는 때엔 그날 소풍을 꽝으로 마무리했어요. 그 외사촌이 개를 키우면 개똥을 기똥차게 찾았을 텐데.

이상하다, 이상해. 분명히 여긴데?

아직도 저는 개똥을 찾지 못했어요. 그렇다고 포기하고 가버릴 수도 없어요. 개똥 때문에 요새 반려인과 비반려인 사이에 갈등이 많거든요. 제가 능력개발관에서 듣는 어떤 수업의 강사는 이렇게 말했어요. 

“개놈이 길바닥에 똥오줌을 아무 데나 갈겨. 개를 키우려면 똥오줌을 깨끗이 치워야지.”

“똥은 치우지만 오줌은 어떻게 치워요? 물걸레 청소기를 갖고 다닐까요? 길바닥을 닦게?”

수강생들이 와, 웃었어요. 그 웃음을 무시하고 칠순을 삼 년 전에 넘긴 강사가 말을 이어 나갔어요. 

“개는 개지. 개를 두고 엄마, 아빠라고 하면 자신이 갠가? 사람이 개를 낳았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면서 개를 인간화하다니. 아니면 인간의 개화인가?”

개를 키우지 않았을 때는 저도 개를 두고 엄마, 아빠라고 부르는 게 이상했어요. 인간이 개를 낳은 것도 아닌데 왜 엄마, 아빠라고 부를까? 생각했죠. 하지만 차원을 달리해 보니 이해가 갔어요. ‘사람 대 개’라는 종의 차원을 넘어서 ‘생명 대 생명’이라는 자연의 섭리 차원으로. 그래서 저는 이 문제를 미시적 차원에서 보지 말고 거시적 차원에서 보라고 강사에게 주문하고 싶었어요. 

백발의 강사가 말했어요. 

“개는 개를 낳고 사람은 사람을 낳는 게 자연의 섭리지. 자네 말은 개가 사람을 낳고 사람이 개를 낳는다는, 말이 말 같지 않은 궤변이야.” 

엄마, 아빠란 무엇일까요? 물론 낳아준 자겠죠. 하지만 부모는 자식을 낳은 일이 다가 아니에요. 자식에게 엄마, 아빠라 불리려면 지속적으로 양육과 돌봄을 제공해야 해요. 그러므로 낳진 않아도 지속적인 양육과 돌봄을 제공하면 양엄마, 양아빠가 되는 거지요. 친엄마, 친아빠는 누구나 될 수 없어도 양엄마, 양아빠는 누구나 될 수 있어요. 착한 마음만 먹으면. 타잔의 고릴라 엄마처럼. 정글 북 모글리의 늑대 엄마처럼. 

“그건 지어낸 이야기고. 지어낸 이야기를 현실에 갖다 붙이면 다 현실이 되나? 상상과 현실을 구분 못 하는 어린애도 아니고, 참나.”

당연히 저는 어린애가 아니니 이제 현실 이야기를 해보죠. 인도의 불란드샤르에서 발견된 6살 소년 디나는 늑대 엄마, 아빠와 살았어요. 칼마와 아멜라도 3살과 8살 때 인간에게 발견되기 전까지 늑대 엄마, 아빠와 살았고요. 늑대들과 자연을 누비던 마르코스 역시 12년 동안 늑대 엄마, 아빠와 살았지요. 러시아의 이반은 들개들의 양육과 돌봄을 받고 자라나서 그들의 대장이 되었고요. 2017년에 발견된 어린 소녀는 원숭이 엄마, 아빠와 살았지요.

생명이 생명을 거두는 일은 인간이란 종을 떠나 동물계 전체에서 일어나는 일이에요. 그러니 인간이 개를 입양하고 개엄마, 개아빠가 되지 못할 이유 또한 없지요. 

저의 이런 생각을 비웃는 강사의 말이 뒤따르네요. 

“개한테 양육과 돌봄을 제공하니까 개엄마, 개아빠라고? 허, 어이없는 자기 합리화일세. 아무거나 갖다 붙이면 말이 되는 줄 아나. 인간은 인간이고 개는 개지. 인간이 개를 키우는 건 인간 대신 무엇을 지키거나 무슨 일을 시키거나 갖고 노는 애완동물로 키우는 거지. 가족은 무슨! 번지르르한 허울이야.”     


저는 생각을 다뭅니다. 

지금은 똥을 찾는 일이 더 중요하니까요. 똥을 치우는 일은 개엄마, 개아빠가 해야 할 아주 중요한 일이에요. 제 개딸의 똥으로 인해 안락한 환경을 해치는 일은 절대 하지 말아야죠. 그러지 않으면 저나 제 개딸이 비반려인 강사로부터 받는 비난에 떳떳할 수 없을 테니까요. 

그런데 이 찾을 수 없는 개똥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난감한 표정으로 솔이를 돌아봅니다. 아까부터 솔이는 놀이터 그네 옆에 서서 언제나처럼 제가 똥을 똥 봉투에 싸서 나오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어요.

솔이에게 말해요. 

“솔아, 니 똥 어딨니? 똥이 정말 그새 어디로 가버렸을까? 당최 못 찾겠다. 니가 좀 찾아주라.”

우리 솔이 코는 개코죠. 남의 개똥뿐만이 아니라 지렁이, 동물 사체, 오물도 아주 잘 찾아내죠. 이럴 때 제가 눈 똥을 찾아주면 효녀라는 소리를 들을 텐데요. 

제 간절한 눈빛에 솔이가 느티나무 아래로 걸어갑니다. 담벼락 근처에 쌓인 낙엽을 바스락바스락 밟습니다. 그곳은 좀 전에 제가 매의 눈으로 두리번거리던 곳이에요. 거기 어느 한 곳에서 솔이가 킁킁 냄새를 맡네요. 그러고 두 걸음 뒤로 물러납니다. 저는 약간의 의심과 약간의 기대를 품고 그곳으로 다가갑니다. 

오! 

요기에 똥이 있어요!

저는 반가운 똥을 똥 봉투에 싸서 꽁꽁 묶습니다. 

이제 해야 할 일은 쓰레기봉투를 찾는 일. 쓰레기봉투를 찾지 못하면 똥 봉투를 손가락이나 리더줄 손잡이에 대롱대롱 매달고 다녀야 합니다. 반려견과 산책하는 일이 이렇게 똥을 찾고 똥을 줍고 똥 봉투를 들고 다니며 쓰레기봉투를 찾는 일인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인제는 동네 쓰레기봉투가 나오는 위치를 줄줄이 꿰고 있답니다.     

 

저는 다시 생각을 엽니다. 

“개엄마, 개아빠가 아니라면 뭐 하러 개를 먹이고 개를 씻기고 개를 산책시키고 개똥을 열심히 치워가며 알뜰살뜰 키우겠어요?”

백발의 강사가 침을 튕기며 말했어요. 

“엄마, 아빠가 아니라니까! 주인이라니까! 소 키우는 사람이 소를 알뜰살뜰 키우면 그게 부모로서 하는 일인가? 당연히 소를 팔아서 돈 벌라고 하는 일이지. 물론 개를 키우는 사람이 개를 팔진 않지만, 개를 주인으로서 키우는 건, 개나 소나 같다는 말이야.”     


오늘은 쓰레기봉투가 어디에 나와 있으려나? 

공원을 휘 둘러보는데, 저만치에 개 한 마리가 바퀴 달린 금속판 위에 엎드려 있어요. 연갈색 몰티즈예요. 어찌나 작은지 제 손바닥 크기밖에 안 되어 보여요. 등의 털은 숭숭 빠졌고 그나마 남은 털은 들풀처럼 제멋대로 자라 있어요. 엉덩이 털은 거의 없어서 맨송맨송 맨살이 드러나 보이네요. 금속판 아래로 축 늘어뜨린 뒷다리는 개나리 가지처럼 가늘고 하얀 붕대가 친친 감겨 있어요. 그 몸을 벨트로 묶어 놓았네요. 

눈이 휘둥그레진 저를 보고 몰티즈 옆에 있던 여자가 말해요.

“재활운동 중이라 그래요.”

“어디가 아파요?”

“척추 수술을 했어요.”

그제야 저는 저 금속판이 척추 수술을 한 개 환자를 돕는 재활운동 보조기라는 걸 깨달았어요. 텔레비전 동물 프로그램에서 척추 수술을 한 개가 재활운동을 하면서 저런 금속판을 사용하는 걸 봤거든요. 

“아이구, 어쩌다가요?”

“모르겠어요. 어느 날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더라고요. 침대에 오르내릴 수 있도록 계단을 놓아두었는데, 그 계단을 내려오다가 미끄러졌나? 바닥에 미끄럼방지용 패드를 깔아 두었는데, 거기서는 미끄러질 리가 없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전혀 알 수가 없어요.”

“저런~. 수술은 잘 됐어요?”

“잘 됐대요. 지금부터 재활운동을 해야 하는데 살살 시작해 보는 중이에요. 앞으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병원에서 재활운동을 할 거고요, 오늘같이 주말엔 집에서 하려고요. 하루라도 더 해주는 것이 회복에 좋지 않을까 해서요.”

“햇빛 좋고 바람 좋고, 재활운동 하기 딱 좋은 날씨네요.”

“그렇죠? 그래서 우리 또봉일 데리고 나와봤어요.”

“이름이 또봉이예요?”

제 웃음에 또봉이 엄마가 머쓱하게 따라 웃네요.

“예, 얘 전에 키우던 개가 하늘나라 가고 얘를 데려오자 아들이 저한테도 꼬봉이, 그러니까 쫄병이 또 생겼다고 좋아하면서 이름을 또봉이라고 지었어요. 그 전 개가 꼬봉이였거든요. 이름이 뭐예요?”

저는 10개월 관록을 지닌 개엄마답게 차분하게 솔이 이름을 말해요. 그러자 또봉이 엄마가 또 물어요.

“솔이는 건강하죠? 건강이 최고예요. 몇 살이에요?”

“한 살이 되어가고 건강해요.”

“그럼 보험을 하나 들어놓으세요. 병원비가 장난 아니에요.”

“아, 척추 수술을 했으니 병원비가 많이 들었죠? 얼마나 들었어요?”

“검사하고 수술까지 천만 원이 들었고요. 재활운동 하러 갈 때마다 하루에 십만 칠천 원이 들어요. 약값은 따로 있고요. 가족이라 생각하고 병원비, 약값을 대긴 하는데 솔직히 부담돼요.”

“듣기로 썩 좋은 보험이 아직 없다고들 하더라고요. 그래서 고민하다가 조금씩 저축을 해요.”

“알고 보니 내 지인도 그런대요. 한 달에 오십만 원씩 꼬박꼬박 저축해 가고 있대요. 나는 몰랐어요. 아프고 나니 얘 이름으로 미리 저축 좀 해둘걸,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솔이는 아직 어리니까 조금씩 돈을 모아가면 나중에 도움이 될 거예요. 마음도 든든하고요. 안 아프면 제일 좋은 거고 돈도 남는 거지만, 막상 아프면 돈 걱정이 많이 돼요.”

저는 고개를 끄덕여요. 그동안 병원비로 수천만 원이 든 가린이도 봤고, 뇌병변 장애를 앓는 하양이와 까망이도 봤고, 슬개골 수술에 재수술까지 한 개들도 많이 봤으니까요. 여러 견주의 경험을 통해서 책임에는 궁극적으로 돈이 뒤따른다는 걸 깨닫게 되었죠. 그걸 또봉이를 통해서 또 한 번 깨닫네요.


“건강할 때 산책 많이 시켜 주고 많이 놀아주세요. 절대로 혼내지 마시고요.”

“네.”

“아프면 많이 후회돼요. 안 아플 때 산책 많이 시켜 줄걸, 많이 놀아줄걸, 많이 예뻐해 줄걸, 하는 생각이 날마다 들어요. 아프면 얘부터 안 움직이려고 해요. 예뻐해 주는 손길도 귀찮아하고요. 솔이는 되도록 많이 예뻐해 주세요.”

“네.”

저는 또 약속하고 또봉이를 내려다보아요. 그때 바람이 보이지 않는 손가락으로 또봉이의 가느다란 털을 잡아당겨요. 저는 또봉이가 바람 따라 훌훌 날아가버리지 않을까 걱정해요. 다행히 은빛 금속판의 벨트가 또봉이를 잡아 주고 있어요. 이 조그마한 몸이, 그 힘든 척추 수술을 어떻게 버텨내었을까? 순간 제 마음이 나뭇잎처럼 팔랑거리고 그 팔랑거림이 말이 되어 나와버려요.

“아, 슬퍼라.”

“그러니까요. 너무 슬퍼요. 솔이한테 잘해주세요.”

“네, 그럴게요.”

벌써 세 번째의 약속. 약속을 포갤수록 제 마음은 무거워져요. 약속은 게으름에 족쇄를 채우는 일. 저도 가끔 게으름을 피우고 싶은데. 이렇게 자꾸 약속을 포개면 게으름을 피울 수가 없잖아요. 제가 아는 한 반려인은 비 온다는 일기예보를 들으면 환호해요. 그날은 죄책감 없이 산책을 쉴 수 있으니까요. 저도 그 맘을 알아요. 그날은 뭐랄까, 건강식을 먹다가 아주 달콤한 디저트를 먹는 날 같거든요. 

“또봉이는 몇 살이에요?”

“10살이에요.”

“남자아이예요?”

“예.”

“몇 킬로예요?”

“3킬로그램이 못 돼요. 너무 작죠? 아프고 수술하고 그러면서 살이 많이 빠졌어요. 털도 싹 다 빠졌다가 그래도 지금 많이 난 거예요.”

“고슴도치 같아요. 귀여워요.”

“귀엽게 봐줘서 고맙네요. 열심히 재활해서 건강을 되찾아야죠. 예전처럼 걸어 다닐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제 그 바람 하나밖에 없어요.”

“또봉이가 빨리 건강해지길 기도할게요. 고생하세요. 또봉아, 또 보자. 안녕.”

저는 손가락에 똥 봉투를 매달아 달랑거리며 공원을 나오다가 뒤돌아보아요. 또봉이 엄마가 또봉이에게 손짓하네요.

“또봉아, 여기, 여기로 와 봐.”

또봉이가 두 다리를 굼지럭거려요. 금속판 보조기가 은빛을 쏘며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움직여요. 또봉이 엄마의 손이 더 빨리 팔랑거려요.

“조금 더, 조금만 더. 옳지, 옳지.”

마침내 또봉이가 엄마 손에 닿아요. 

“아유, 우리 또봉이! 잘했어!”    

 

백발의 강사를 다시 만난다면 저는 묻고 싶습니다.

“저 여자분이 개엄마가 아니라면 저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요?”

이 말에도 백발의 강사는 그렇지 않다며 단호하게 반박하겠지요. 개엄마, 개아빠여서가 아니라 다친 애완동물을 그대로 둘 수 없는 주인의 동정심이라고요. 그렇다고 해서 그를 비난할 생각은 없어요. 사람은 저마다 생각을 말할 자유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자기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기꺼이 개엄마, 개아빠가 되고자 하는 반려인들을 개똥 취급하지 않았으면 해요. 제가 백발의 강사에게 하고 싶은 말은 결국 이거예요. 다른 사람의 생각을 생각의 무덤에 묻지 말고 생각의 덤으로 여기자는 것. 

앞으로도 열심히 개똥을 줍겠습니다! 

약속합니다! 

하지만 오줌은 어떻게 할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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