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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인 Jun 05. 2024

17화  멍생일잔치

개는 상팔자 부모는 개팔자

솔이의 첫 생일이 다가왔어요.

강변 잔디밭에는 솔이 또래 개들이 몇 있는데 그중에 구름이가 가장 먼저 생일잔치를 했어요. 일주일 전에 구름이의 생일잔치 동영상이 단톡방에 올라왔어요.

동영상에서 구름이는 분홍색 고깔모자에 HAPPY BIRTHDAY라고 쓴 턱시도를 하고 있어요. 아유, 귀여워~. 구름이 앞에는 분홍색 케이크가 있고요. 그 분홍색 케이크 위에 구름이를 닮은 강아지가 앉아있네요. 그 강아지도 구름이와 똑같은 분홍색 고깔모자를 쓰고 있어요. 분홍색 깔맞춤을 한 걸까요? 나중에 알고 보니 주문 제작을 하면 이렇게 똑같이 만들어준다네요. 진분홍색으로 HAPPY BIRTHDAY가 쓰인 케이크 앞에는 멍도넛과 멍김밥과 멍유부초밥이 놓여 있어요.

그 음식들은 사람이 먹는 음식과 똑같이 생겼어요. 저에겐 완전 신세계예요. 저는 지금까지 멍멍이 케이크가 있는 줄도 몰랐고 멍멍이 음식이 이렇게 다양한 줄도 몰랐어요.

와우!

사람들이 생일 축하 메시지를 올렸어요. 저도 축하 메시지를 올렸어요.      


구름아, 생일 축하해.

오후에 솔이랑 만나서 재밌게 놀자~.     


태어나서 개 생일잔치를 보는 것도 처음이지만 개 생일을 축하해 보기도 처음이네요.     


오후에 구름이 엄마가 멍케이크를 들고 강변 잔디밭으로 왔어요.

“고구마, 단호박, 당근, 감자, 과일로 만든 유기농 케이크예요. 다 사람이 먹는 거니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구름이 엄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냄새가 개들을 현혹했어요. 개들이 방방 뛰고 침을 꿀꺽꿀꺽 삼켰어요. 구름이 엄마가 일회용 종이 접시에 멍케이크를 담아서 고루고루 나누어주었어요. 저도 멍케이크를 받았어요. 저는 난생처음 보는 멍케이크를 신기하게 바라보다가 솔이에게 조금 떼어주었어요. 솔이도 난생처음 보는 멍케이크에 코를 대고 조심스레 냄새를 맡더니 혀를 조금 내밀어 망설이면서 살짝 맛을 보았어요. 순간 두 눈이 둥그레졌어요. 저를 보고 말했어요. 세상에 이런 미친 맛이? 이후 솔이는 미친 듯이 멍케이크를 핥았어요. 빨리 더 달라고 제 손가락을 코로 밀었어요.

다른 개들도 그랬어요.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오로지 보호자의 손가락 빨기에 열중했어요. 그런데 아이구야! 뭉치가 멍케이크를 덮쳤어요. 커다란 멍케이크를 한입에 꿀꺽 삼켜버렸어요. 아빠가 조금씩 조금씩 떼어주는 게 성에 안 찼나 봐요.

“너!”

평소에도 엄한 뭉치 아빠가 리더줄을 위로 올렸어요. 리더줄에 대롱대롱 매달린 뭉치는 그 순간에도 입가와 코에 묻은 크림을 핥느라 바빴어요. 엄격한 식사량으로 포메라니안의 적정 몸무게를 유지해 가는 뭉치도 멍케이크 앞에선 혼남과 벌섬도 나중 일, 이 맛난 걸 일단 먹고 보자는 심산인 것 같았어요.

“뭉치가 엄청 좋아하네요. 한 조각 더 주세요. 저녁 안 먹이면 되잖아요.”

구름이 엄마가 멍케이크를 한 조각 들어서 뭉치 접시에 놓아주었어요. 그걸 본 뭉치가 공중에서 몸부림쳤어요. 뭉치 아빠가 멍케이크 접시를 뒤로 빼었다가 위로 올렸어요. 뭉치의 눈이 멍케이크 접시를 따라갔어요. 침을 꼴깍 삼켰어요. 두 다리를 버둥거렸어요. 하지만 짧은 다리로 아무리 바둥거려 봤자 그 접시에 가 닿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뭉치는 작전을 변경했어요. 얌전하게 두 발을 모으고 두 눈을 내리깔았어요. 뭉치의 반성 모드에 맘이 풀린 아빠가 리더줄을 내려주자 뭉치는 아빠 앞에 예쁘게 앉아서 눈 하트를 뿅뿅 쏘았어요. 뭉치 아빠가 말했어요.

“이거 먹으면, 오늘내일 간식 없다. 알았지?”

뭉치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어요. 다 알아들었으니 얼른 멍케이크 좀 달라고 눈으로 말했어요. 뭉치 아빠가 멍케이크 접시를 조심하면서 조금씩 멍케이크를 떼서 뭉치에게 주었어요.     


“어마, 맛있네?”

하니 엄마가 말했어요. 모두가 쳐다보자 하니 엄마가 민망하게 웃었어요.

“사람이 먹는 거라니까 먹어 본 거죠. 다들 안 먹어봐요? 먹어봐요. 맛있어요. 진짜로.”

모두 고개를 저었어요. 저도 그랬어요. 아무리 사람이 먹는 음식과 똑같은 재료로, 아니 그보다 더 좋은 유기농 재료로 만든 거라 해도 이름이 멍멍이 케이크인데 사람이 어찌 먹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맛있는데. 생크림은 사람이 먹는 생크림 맛이랑 똑같고 케이크도 사람이 먹는 고구마 케이크 맛이랑 똑같아요. 근데 다들 안 먹어보나요? 나만 먹어보나? 나는 우리 하니가 먹는 것은 다 먹어보는데. 어떤 맛이 나는지 확인해야 하니까.”

뚠이 엄마가 말했어요.

“대단하네요.”

“뭘요.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개똥을 주워서 냄새를 맡고 일일이 손으로 비벼보던데.”

“엥? 진짜요? 맨손으로?”

“비닐장갑 끼고.”

“그래도 대단하다. 그 집 개는 왕이네. 옛날에 어의들이 그랬다더니.”

“나는 그렇게까진 못해요, 아무리 얘가 예뻐도. 먹는 음식만 먹어보는 거지.”

그동안 개들이 멍케이크를 모두 먹어치웠어요. 구름이 엄마가 멍카푸치노를 준비하면서 말했어요.

“다행이다. 안 먹으면 어쩌나, 걱정했거든요. 원래 돌 음식은 많이 나누어 먹을수록 좋다잖아요.”

그 말에 저는 어릴 때 백설기를 돌리던 일이 생각났어요. 그날은 일곱 살 터울인 막냇동생의 돌이었죠. 엄마의 심부름으로 집집이 백설기를 돌리다가 다리가 너무 아파서 그만 돌리면 안 되느냐고 엄마에게 물었죠. 엄마는 안 된다, 하면서 이렇게 말했어요. “돌 음식은 나누어 먹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아기 수명이 길어져. 그러니까 다리가 아파도 오늘은 좀 참아라.” 구름이 엄마도 그런 마음인 걸까요? 그래서 강변 잔디밭으로 멍멍이 케이크를 종이 접시, 종이컵, 나무젓가락, 물수건 등등을 바리바리 싸서 들고 나온 걸까요?

     

이제 솔이는 멍카푸치노로 입가심을 합니다. 또 솔이 이마에 주름이 잡혀요. 황홀한 맛인가 봐요. 이것도 유기농 락토프리 우유로 만든 거라네요.

“개들은 만찬을 즐기는데 사람은 입 다실 거리도 없네.”

봄이 엄마가 말했어요.

“우린 물이라도 한잔? 건배.”

웃음이 날리는 강변 잔디밭의 오후는 사람에겐 홀쭉한 오후, 개들에겐 배부른 오후였어요. 그래도 모두가 즐거운 한때였지요.  

   

그제는 보슬이의 돌이었어요. 보슬이네는 가족끼리 조촐히 돌잔치를 했어요. 돌사진 속 보슬이는 알록달록 고깔모자를 쓰고 돌상 앞에 앉아있어요. 돌상 한가운데엔 구름이 생일 때 먹었던 것과 비슷한 멍멍이 케이크가 놓여 있고요. 양옆에는 멍연어타르트, 멍치킨, 멍흑임자김밥, 멍들렌, 멍머핀, 멍고구마쿠키, 멍딸기도넛이 차려져 있어요. 양 끝에는 보슬이와 똑 닮은 강아지 인형이 놓여 있고 보슬이 뒤에는 “생일 축하합니다”라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어요. 플래카드 주위에는 알록달록한 풍선이 보슬이의 첫 생일을 빵빵하게 축하하고 있고요.

보슬이의 생일에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이모, 외삼촌이 초대받아 왔어요. 초대받은 사람을 포함한 가족들 모두가 고깔모자를 쓰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어요. 노래가 끝나고 나서 다 함께 촛불을 껐고요. 돈과 연필과 실과 간식을 놓고 돌잡이도 했어요. 보슬이는 간식을 물었고요.

보슬이 엄마가 웃으며 말했어요.

“아무래도 우리 보슬이는 비만이 될 것 같아요. 돌상 위에 맛있는 음식이 널렸는데 돌잡이로 또 먹을 걸 골라서.”

보슬이의 돌 음식은 반려견을 키우는 이웃집에 나누어 주었어요. 그런데 여태까지 즐거운 표정으로 이야기를 하던 보슬이 엄마의 표정이 살짝 변했어요.

“근데 보슬이 돌잔치에 오신 부모님이 영 섭섭한 것 같았어요.”

“왜요?”

“아버지가 돌상을 보시자마자 대뜸 하는 말이 ‘개 팔자가 상팔자다. 내 생일보다 좋구마.’ 하대요. 엄마는 ‘내 팔자는 개팔자다. 내 생일에도 이렇게 좀 해주지!’하고요.”

“꽤 섭섭했나 보네요.”

“그러니까 해주려고 할 때 받았어야지! 우리가 엄마의 생일을 준비하려고 할 때는 귀찮다고 하지 말라고 그 난리를 치더니.”

보슬이 엄마가 입을 삐죽거렸어요. 저는 웃었죠. 하지만 속으로는 보슬이 할머니의 마음이 이해되었어요. 부모는 늘 자식이 고생할까 봐 걱정이잖아요. 보슬이 할머니도 당신 생일상 차리느라고 딸이 고생할까 봐 ‘귀찮다, 하지 말라’ 했을 텐데 막상 보슬이의 생일상을 보니 숨어 있던 섭섭함이 울컥 올라왔던 거겠죠.    

  

저는 솔이 생일날이라고 해서 특별히 준비한 것이 없어요. 멍멍이 케이크도, 멍카푸치노도, 돌상도, 돌잡이도, 초대장도 전혀 준비하지 않았어요.

대신 평소보다 일찍 산책을 나섰어요. 제가 준비한 생일 선물은 실컷 냄새 맡고 실컷 뛰어노는 것이거든요. 솔이는 오래오래 걸어 다녔어요. 맡고 싶은 냄새를 따라서 가고 싶은 대로 다 갔어요. 그동안 바라만 보았던 덤불 속에도 수풀 속에도 강둑 아래에도. 그렇게 긴 시간을 실타래처럼 풀어가며 강변 잔디밭으로 가니 친구들이 많이 나와 있었어요.

솔이가 노는 동안 저는 견주들과 시간을 보냈는데, 오늘이 솔이의 생일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어요. 괜스레 이 말 저 말 들을까 봐서요. 생일상을 준비하지 않은 제가 정 없는 엄마로 비치는 것도 사실 걱정됐고요. 개를 위해 차리는 생일상이 진짜 개를 위한 것일까? 하는 의문도 품고 있었고요.

생일상 앞에 가만히 앉아서 포즈를 취하는 것이 개에겐 여간 힘든 일이 아니라고 들었어요. 개는 가만히 있질 못하고 사람은 가만히 앉혀 두어야 하고요. 개는 고깔을 자꾸 벗겨내려 하고 사람은 고깔을 씌워놓아야 하고요. 간식이란 달콤한 꾐으로 실랑이에 실랑이를 이어가면서 찍은 인생샷을 두고 개들이 흐뭇해할까요? 정말 멋진 생일 사진이야! 오래오래 추억으로 간직해야지!라고 다짐할까요? 먼 훗날 그래, 이런 날이 있었지. 정말 행복한 하루였지!라고 추억을 아련히 회상할까요?

글쎄요… 아무래도 저는 희망적인 답을 찾아낼 수가 없네요. 모두 엄마, 아빠의 만족과 행복을 위한 시간이 아닐까 우려되네요.

그래서 저는 제 만족과 행복을 버리기로 과감히 마음먹었습니다. 솔이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대신 솔이가 좋아하는 것을 해주기로 했죠. 솔이가 좋아하는 것은 기본적인 욕구를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먹고 싸고 냄새 맡고 놀고 사랑받고, 그 외엔 별 관심이 없죠.   

   

해가 져 갑니다. 개들이 하나둘씩 엄마와 아빠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네요. 모찌도 가고 시루도 가고 강돌이도 가고 보슬이도 가고 하니도 갔어요. 코코와 둥이는 아까 아까 돌아갔고요. 이제 남은 개는 솔이와 봄이와 구름이 뿐이에요. 솔이는 지치지도 않는지 늦게 나온 봄이와 뛰고, 더 늦게 나온 구름이와 뒹굴어요.

저는 지겨워요. 솔이는 언제 집에 가고 싶을까요? 생일 선물만 아니라면 진즉에 집으로 돌아갔을 텐데…. 다섯 시간이 훌쩍 넘어가는 이 기다란 생일 선물 대신 차라리 돌상을 차릴 걸, 하는 후회가 밀려옵니다.

이제 봄이도 구름이도 집으로 갑니다. 솔이가 집으로 가자며 올까요? 저는 살짝 기대의 눈을 뜹니다.

아, 아직 아닌가 봅니다. 솔이는 혼자 잔디밭을 뛰어다닙니다. 솔이가 집으로 가자고 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저의 마음이 어둠에 묻히기 시작합니다. 오밤중이 되어도 솔이가 집으로 가자는 말을 안 할까 봐 살짝 겁이 납니다. 일어설까 말까, 가자고 말이나 해볼까 말까 수없이 망설인 끝에 저는 솔이를 부릅니다.

“솔이야~”

혼자서 잔디밭을 뛰어다니던 솔이가 저를 향해 힘차게 달려옵니다. 마치 부르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저는 두 팔을 활짝 엽니다. 거침없이 제 팔 문으로 들어온 솔이가 폴짝폴짝 뛰면서 뽀뽀를 해댑니다.

“배고프지?”

간식을 꺼내서 줍니다. 날름날름 받아먹은 솔이가 더 달라고 제 손을 코로 밉니다.

“이젠 없어. 배고프지? 집에 가야 밥을 주지. 집에 갈까?”

저는 솔이에게 리더줄을 내보입니다. 솔이가 가만히 응합니다. 우리는 드디어 집으로 갑니다. 강둑 위로 올라와 8차선 도로 앞에 섭니다. 순간 알람이 울리네요. 엄마에게 전화를 걸라는 알람이에요. 전화를 걸자마자 엄마가 말해요.

“우리 딸, 전화해서 고맙다. 어디고?”

“솔이랑 산책하고 집으로 가는 길.”

“늦네.”

“오늘 솔이 생일이라서 실컷 놀라고 내버려 뒀더니 그렇게 됐네.”

신호등이 바뀝니다. “딩동댕, 건너가도 좋습니다”라고 기계 여자가 말하자마자 솔이가 앞으로 달려 나갑니다. 그때 왼쪽에서 배달 오토바이가 쌩 달려옵니다. 저는 리더줄 잡아당깁니다. 솔이의 몸이 빙글 돕니다. 아슬아슬하게 배달 오토바이가 솔이를 스쳐 달려갑니다. 1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 그 순간에 솔이는 목숨을 잃을 뻔합니다. 그것도 생일날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휴대전화에서는 엄마가 혼자 말하고 있습니다.

“와 말이 없네? 무슨 일 있나?”

저는 엄마를 잠시 뒤로 미루고 솔이의 안전부터 살핍니다. 다행히 솔이는 괜찮습니다. 그제야 저는 대답합니다.

“아, 사고가 날뻔해서.”

“아이구, 조심해라. 큰일 난다.”

“신호등이 바뀌었는데 오토바이가 지나가잖아. 나는 괜찮고 솔이가 큰일 날 뻔했지.”

“그러면 안 되지. 솔이 봐라.”

엄마는 서둘러 전화를 끊습니다. 우리는 무사히 건널목을 건넜고요.      


어둠이 내리는 길을 걷는데, 문득 엄마와 이렇게 전화통화를 끝낸 일이 오늘 처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어요. 갑자기 말이 없는 저에게 엄마가 “와? 무슨 일 있나?” 물었고 저는 “다른 개가 우리 솔이한테 짖어서” 대답했죠. 그때도 엄마는 “솔이 봐라”하면서 서둘러 전화를 끊었어요.

아, 언제부터인지 저는 엄마와 하루에 한 번 하는 전화통화도 여유롭게 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언제부터 엄마가 개딸한테 밀려나 버린 걸까요?     


30대 후반 한 여성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그녀는 포메라니안을 키우며 직장에 다니는데, 댕댕이 유치원비와 산책 아르바이트비와 사료, 간식, 홍삼 영양제, 뼈 영양제 등에 드는 비용과 목욕미용비로 한 달에 200만 원 이상을 지출하고 있었어요. 이 사실을 알게 된 엄마가 화를 내었어요.

“내한테 좀 잘하지! 내가 널 키우면서 얼마나 고생했는데! 내한테 그 반만 써도 효녀 소릴 듣겠다!”

그녀가 대꾸했어요.

“엄마는 내가 키우잖아!”  

   

얼마 전 한 반려인은 18년 동안 키우던 반려견을 떠나보냈어요. 그녀의 반려견은 13년을 건강하게 살고 마지막 5년 동안 심장병을 앓았어요.

반려견이 세상을 떠나도 그녀는 반려견을 떠나보낼 수 없었어요. 장식장에 반려견을 담은 작은 항아리와 생전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올려두고 그 주위를 꽃으로 꾸며놓고선 시시때때로 바라보며 말을 걸었어요. “이제는 보내야지, 언제까지 그럴 거야?”라고 친구들이 말하면, “아직 못 보내겠어. 마음의 준비가 안 됐어.”라고 슬프게 대답했어요.

그렇게 2년의 세월이 흐르고 마침내 그녀는 반려견을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가 되었어요. 항아리를 들고 선산으로 가 묻고 나서 펑펑 울었어요.

“5년 동안 매달 심장약을 타 먹일 때 20만 원이 아까워서 변두리에 있는 허름한 동물병원에 가서 15만 원에 타 먹였지. 지금 생각하니까 내가 왜 그랬을까? 하는 후회스러운 생각만 드네. 그 돈 5만 원이 뭐라고. 겨우 그거 아끼려고 내가 너한테 20만 원짜리를 안 먹이고 15만 원짜리를 먹였나, 싶어. 15만 원짜리를 먹여서 일찍 갔지? 20만 원짜리를 먹였으면 더 오래 살았을 텐데, 미안해. 정말 미안해.”

옆에서 그 말을 들은 어머니가 씁쓸하게 중얼거렸어요.

“15만 원도 안 바란다. 5만 원만 나한테 썼으면….”     


개 생일에 가족을 초대하여 최고급 한우 등심을 대접하고 개조카 생일 선물로 백오십만 원짜리 개모차를 선물하는 세상.

저는 부모님을 어떻게 대하고 있을까, 돌아봅니다. 지난 토요일에 엄마를 모시고 한의원에 갔을 때 차 안에서 솔이가 낑낑댔어요. 똥이나 오줌이 누고 싶다는 소리였죠. 저는 마음이 급했어요.

“엄마, 얘가 오줌 누고 싶대. 혼자 갈 수 있지?”

“알았다. 솔이 오줌 눠라.”

엄마는 지팡이에 의지하고서 힘들게 차에서 내렸고 위태위태 걸어서 한의원으로 들어갔어요.

이제 와 생각하니 엄마를 한의원에 모셔다 드리고 나서 솔이 오줌을 눠도 되는 일이었어요. 사실 엄마가 앓고 있는 많은 병은 우리 오 형제를 낳고 키우느라 생긴 병이에요. 앞으로 엄마하고 지낼 시간은 이제 막 돌을 맞은 개딸과 지낼 시간보다 훨씬 적을 거예요. 그런데 저는 저도 모르게 엄마보다 개딸을 먼저 챙기고 있었어요.     

집으로 돌아온 저는 솔이에게 푹 삶은 닭 한 그릇을 선물합니다.

“솔이야, 생일 축하해~.”

푹 삶은 닭은 솔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에요. 식탐이 없는 솔이가 유일하게 배탈이 날 때까지 먹는 음식이기도 하죠.

“오늘은 적당히 먹자아.”

저는 허겁지겁 닭고기를 흡입하는 솔이를 쓰다듬습니다.     


그날 밤, 솔이가 집안 곳곳을 돌아다녀요. 킁킁 냄새를 맡기도 하고요. 저 수상한 행동은 솔이가 똥 눌 장소를 찾을 때 하는 행동입니다.

저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서 배변판을 들고 솔이에게 말해요.

“똥, 똥. 여기 똥 눠, 알았지?”

솔이는 배변 패드에 오줌은 누는데 똥은 절대로 누지 않아요. 배변 패드에 오줌 누는 곳이라고 써 놓은 것도 아닌데 왜 그러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어요. 개들은 똥 누는 데와 오줌 누는 데가 다르다고 하니, 혹시나 하고 배변판을 하나 더 샀는데 아직 성공해보진 못했어요. 저는 긴장하며 대기합니다. 푹 삶은 닭고기를 적당하게 먹이려고 열심히 브레이크를 걸었는데 너무 약하게 걸었나 봅니다.

“불안해, 불안해.”

바로 그때 지독한 똥 냄새가 솔솔 풍겨옵니다. 거실로 나가니 아, 글쎄 요 녀석이 그새 카펫 한 귀퉁이에 물똥을 싸놓았네요. 저는 고개를 홱 돌려 솔이를 바라봅니다. 이미 솔이는 꼬리를 말고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습니다. 제 딴에도 제가 잘못한 줄 아는 모양입니다.

저는 숨을 크게 쉬고 나서 말합니다.

“괜찮아, 괜찮아. 우리 솔이, 배가 많이 아팠어? 닭고기가 너무 맛있어도 너무 많이 먹으면 이렇게 돼. 다음에는 적당히 먹자, 알았지?”

화를 뺀 온화한 손길에 솔이가 몸의 긴장을 풉니다.


그사이 남편이 똥을 치우고 카펫도 치웠네요. 저는 대변 냄새를 99.9% 분해해 준다는 스프레이를 뿌리고 창문을 활짝 열어 바람이 똥 냄새를 쓸어가도록 조치합니다. 그런 뒤 솔이의 똥꼬를 닦고 이불 위에 뉘어 도닥입니다. 눈꺼풀 사이로 보이는 솔이의 까만 눈동자가 점점 작아지네요. 보름달이 서서히 기울어 하현달이 되고 반달이 되고 초승달이 되는 것처럼. 마침내 솔이의 눈동자가 그믐달이 되어요. 솔이의 숨소리가 새근새근 들리고, 저는 나직이 속삭여요.

“솔이야, 잘 자. 사랑해~.”

그 순간 저는 깨닫습니다. 솔이를 향한 제 사랑은 내리사랑이고 엄마를 향한 제 사랑은 치사랑이라는 걸. 내리사랑은 아래로 흐르는 물처럼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제 속에서 나오는데 치사랑은 위로 솟구치는 분수처럼 올려주는 힘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걸. 그 힘은 제가 애를 써야만 생성되는 것이겠죠.

언제부터인지 바뀌어버린 제 마음속의 엄마와 개딸 위치. 이 밤에 저는 조금조금 조정합니다. 엄마는 조금 앞으로, 개딸은 조금 뒤로.

그동안 엄마, 미안했어요.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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