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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인 Jun 19. 2024

19화  장군이

죽음으로 가는 길

제 이름은 장군이에요. 골든 레트리버고요. 나이는 13살이 다 되어가고요. 

어린 시절 저는 외로웠어요. 가까운 곳에 친구가 하나도 없었거든요. 거기다 사람들은 저를 만날 때마다 깜짝깜짝 놀랐어요. 제 덩치 때문에요. 앞집 할머니는 이렇게 항의했어요.

“어떻게 이런 개를 아파트에서 키워? 정 키우고 싶으면 주택으로 이사를 가든가!”

산책길에서 만난 할머니는 제풀에 놀라 엉덩방아를 찧었어요. 

“아이구, 나 죽네.”

저는 맹세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아빠는 저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치료비를 물어드렸어요. 위로금을 얹어서요. 저는 속상했어요. 제 잘못이라곤 줄을 아주 짧게 잡은 아빠 옆에 바짝 붙어서 길을 걸은 것밖에 없는데…. 

한 아이가 저를 보고 앵앵 울기도 했어요. 아이의 엄마가 소리를 질렀죠. 

“이렇게 큰 개를 밖으로 데리고 나오시면 어떡해요!”

아빠는 저를 데리고 산과 바다로 갔어요. 거기서 마음껏 뛰놀게 해 주었죠. 사람들의 눈치 보지 않고 폴짝폴짝 뛸 때마다 저는 행복했어요. 가끔은 차를 타고 아주아주 멀리 가서 나와 같은 종인 골든 레트리버 친구들을 만나 신나게 놀기도 했어요. 우리가 가는 곳은 두 곳이었는데 한 곳은 전라도고, 다른 한 곳은 충청도래요. 저를 친구들과 놀게 해 주려고 아빠가 인터넷을 샅샅이 뒤져서 이 두 군데를 찾아냈대요.  

    

제가 나이를 먹자 세상이 많이 바뀌었어요. 주위에 저처럼 덩치 큰 친구들이 많아졌어요. 제 어릴 때 하고는 천지 차이였어요. 그래서인지 사람들도 인제 저를 보고 놀라지 않아요. 

저는 강변 잔디밭으로 산책 가는 걸 아주 좋아해요. 여길 좋아하는 이유는 저를 반겨주는 반려인들이 있기 때문이고요. 같이 놀지는 못하나 꼬마 친구들이 저에게 인사를 하러 오기 때문이에요. 

오늘도 강변 잔디밭으로 산책 왔어요. 여길 피해 가려는 아빠를 제가 억지로 끌고 왔지요. 

“장군아, 안녕?”

들리죠? 저를 향해 인사하는 부드럽고 상냥한 목소리. 마치 봄바람 같아요. 저 목소리를 들으면 제 마음이 풍선처럼 가벼워져서 하늘로 올라가 구름이 되어요. 

저는 헤벌쭉 웃어요. 마음은 바빠져서 옆구리가 휘게 줄을 끌어당겨요. 아빠가 싫어하는 줄 뻔히 알면서도. 

아빠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아요. 역시 아빱니다. 아마도 아빠는 야윈 몸을 뒤로 젖힌 채 힘을 팍 주고 있을 거예요. 굳이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저는 알 수 있어요. 그래도 빨리 가고 싶은 걸 어떡해요. 줄을 좀 더 세게 끌어당겨봅니다. 아빠와 줄다리기를 하는 것처럼요. 늘 그렇듯이 이번에도 아빠가 이겨요. 저는 마음과 달리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다가갈 수밖에 없어요. 

쉿, 비밀인데요.

사실은 아빠를 살짝 봐준 거예요. 아빠가 왜 그러는지 아니까요. 아빠는 제 덩치를 보고 혹시라도 놀랄까 봐 그러는 거거든요. 저도 누구든 저를 보고 놀라는 걸 원치 않아요. 그래서 있는 힘껏 잡아당기지 않은 거예요. 진짜 있는 힘껏 잡아당겼으면 아빠가 단번에 저에게 끌려왔을걸요. 덩치만큼 저는 힘이 세답니다. 그러나 그 힘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아요. 그랬다간 아빠만 더욱 힘들어질 걸 아니까요.     

 

꼬마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오네요. 꼬마 친구들은 하나같이 제 엉덩이에 달라붙어요. 저는 꼬마 친구들이 싫지 않아요.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있어 줘요. 혹여라도 꼬마 친구들이 제 발길에 치일까 봐. 

꼬마 친구들이 제 냄새를 맡는 동안 저는 반려인들을 죽 훑어보아요. 오늘은 누구에게 가장 먼저 사랑의 손길을 허락할까, 생각하면서요. 옳지, 저기 저 키 큰 반려인. 

그녀는 여기 온 지 일 년쯤 되었어요. 그때 아주 작은 꼬마 개를 데리고 나왔는데, 그 꼬마 개가 자라서 이제 조금 더 큰 꼬마 개가 되었어요. 처음 왔을 때 그 꼬마 개가 너무 순둥이라서 친구들과 잘 어울려 뛰어놀 수 있을지 걱정했었죠. 그런데 자라면서 성격도 변하더라고요. 인제 제법 씩씩해졌어요. 진돗개 하고도 뛰어놀 정도로요. 근데 하루는 요 녀석이 나보고 저랑 같이 뛰어놀자는 거예요. 저는 조용히 타일렀지요.

“허허. 나는 나이가 많아서 뛰어놀지 못해. 그러니까 저기 가서 꼬마 친구들하고 놀아. 하지만 내가 올 때 냄새는 맡아도 좋아.”

꼬마 개는 제 말을 잘 알아들었어요. 다음 날부터 저를 만나면 꼬리를 치며 다가와 냄새는 맡아도 뛰어놀자고는 하지 않았어요. 

그 꼬마 개는 나뿐만이 아니라 아빠도 무척 반겨요. 아빠도 그 꼬마 개를 좋아하는 듯해요. 그 꼬마 개는 다른 개들과 달리 힘차게 달려와서 꼬리를 프로펠러처럼 흔들거든요. 강변 잔디밭에 오면 모두가 다 반갑지만, 더 반기는 누군가가 더 반가울 수밖에 없는 건 개나 사람이나 똑같지 않을까요.     

 

저는 키 큰 반려인의 두 다리에 머리를 갖다 대고 부비부비 비벼요. 그렇게 머리를 비비면 기분이 무척 좋거든요. 키 큰 반려인 솔이 아줌마가 말해요.

“오늘은 나구나! 내가 당첨됐어!”

그녀는 허리를 굽히고 제 머리를 쓰다듬어요. 

“장군이가 기분이 좋은가 봐. 표정이 해맑아.”

옆에 있던 봄이 아줌마가 말해요. 그 말이 옳아서 저는 고개를 끄덕이지요. 

“애들이 이제 냄새를 다 맡았나 보네. 하나둘씩 간다.”

보슬이 아줌마가 말해요. 곁눈질로 살짝 보니 정말 그렇네요. 꼬마 친구들이 제 엉덩이에서 떠나고 있어요. 저는 꼬마 친구들을 눈으로 배웅해요. 호기심도 많고 궁금증도 많고 한창 좋을 때다, 그러면서요. 나만큼 나이를 먹으면 음, 사실 호기심도 줄어들고 궁금증도 줄어들어요. 그래서 개들에게 인사하는 일이 거의 없어요. 그러나 사랑받고 싶은 욕구는 줄어들지 않더라고요. 사랑은 받으면 받을수록 기분 좋은 거라서 그런가 봐요.     

 

저는 척추 마디마디를 지나가는 다섯 손가락을 즐겨요. 마치 산들바람이 털 속으로 스며들어 피부를 간지럽히는 느낌이에요. 몸이 나른해지며 구름 위에 누운 것 같아요. 저는 솔이 아줌마의 다리에 몸을 비딱하게 기대요. 

“안 돼! 똑바로 서!”

아빠가 엄하게 말해요.

“왜요? 순하게 잘 있는데.”

솔이 아줌마가 말해요. 그 말을 하면서 제 등을 살살 긁어주어요. 다시 기분이 좋아져요. 일어나고 싶지 않아요. 이대로 기대고 있고 싶어요. 

“비딱하게 서면 관절이 안 좋아져요. 척추도요. 안 그래도 요새 사료를 안 먹고 자꾸 옆으로 쓰러지려고 해서 병원에 다니는 중인데….”

아빠는 제 배를 두 팔로 감싸고 몸을 일으켜 세우려 해요. 저는 좀만요, 좀만요, 하면서 힘으로 버텨요. 그러자 아빠가 더 큰 힘을 써요. 기필코 제 몸을 바로 세우려 작정한 것 같아요. 정말 아빠는 못 당한다니까요. 저에게 안 좋은 것이라면 아빠는 하나도 못 하게 해요. 뭐, 어쩔 수 없죠. 저는 이번에도 슬쩍 져주기로 해요. 기회는 또 올 테니까요. 저는 몸을 바로 세워요. 아쉬워도 일단은 등을 긁어주는 맛에 만족해요. 

“자식이, 헤벌쭉하기는.”

아빠는 핀잔을 주면서 제 입가에 모여 있는 하얀 거품을 휴지로 닦아줘요. 이상하게 나이가 드니까 입가에 거품이 많아지네요. 아빠가 닦아주려고 애쓰는 데도 하얀 거품은 자꾸자꾸 생겨나서 제 무게를 못 이기고 뚝뚝 떨어져요. 

“장군아, 어디 아파?”

솔이 아줌마가 물어요. 아빠가 대답해요.

“그걸 모르니 환장할 노릇이죠. 오늘도 밥을 먹지 않아서 겨우 간식 몇 개 먹이고 나왔어요. 처음에는 밥 투정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사흘이 지나도 밥을 먹질 않는 거예요. 장에 문제가 있나 싶어서 동물병원에 데리고 갔더니 아무 이상이 없대요.”

봄이 아줌마가 말해요.

“그래서 입가에 하얀 거품이 생기는 거예요?”

“그런 것 같아요.”

“아직 사료를 안 먹어요?”

“안 먹어요, 한 톨도.”

“다른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 봐요.”

“다른 동물병원에 데리고 갔죠. 같은 소견이 나왔어요. 아무 이상이 없대요.”

“그래요? 이상하네?”

보슬이 아줌마가 말해요.

“아플 때는 닭가슴살을 푹 삶아서 주니까 잘 먹더라고요. 우리 보슬이도 장 트러블이 발생했을 때 그렇게 해서 먹였어요.”

아빠가 대답해요.

“그동안 닭가슴살을 푹 삶아 죽처럼 먹였거든요. 그건 또 잘 먹더라고요. 아하! 요 녀석이 꾀병 부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마음을 독하게 먹고 가만히 내버려 두기로 했죠. 그런데 상태가 점점 나빠지는 거예요. 어지러워하고 쓰러지려 하고 구역질하고 구토하고. 그래서 이번에는 큰 동물병원에 데리고 갔어요. 검사를 참 많이 했죠. 근데 이곳 역시 아무 이상이 없다는 소견이 나왔어요. 식도, 위장, 대장, 소장, 항문 다요.”

그때 저는 솔이 아줌마 바로 옆에 있는 봄이 아줌마에게로 자리를 옮겨요. 누군가를 오래 붙들고 있으면 아빠가 싫어하거든요. 힘들게 한다면서요. 그래서 저는 적당한 때를 보아 이 사람 저 사람에게로 옮겨가는 수법을 써요. 제가 봄이 아줌마 앞으로 자리를 옮기자 솔이 아줌마가 손을 거두어들이고 굽혔던 허리를 펴요. 이어서 봄이 아줌마가 허리를 굽히고 등을 긁어줘요. 

“토실하던 등살이 다 어디로 갔는지 척추가 하나하나 다 느껴지네요. 저번보다 살이 많이 빠졌어요. 옴마야~ 배도 웅덩이처럼 옴팍 패였어! 장이 문제가 아니라면 무엇이 문제일까요?”

아빠가 대답해요.

“혹시 신경계 문제가 아닐까 싶어서 예약해 두었어요. 한 달 뒤가 제일 빠른 거더라고요.”

“아이고, 많이 기다려야 하네요.”

“그래도 어떡하겠어요? 기다려야죠. 무슨 병인지 알아야 치료를 하든가 말든가 하니까.”

봄이 아줌마가 배를 긁어주면서 저에게 말해요. 

“장군아, 아프면 말을 해야지, 말을. 그래야 아빠가 재깍재깍 치료해 주지.”

순간 아줌마의 다리에 기대고 있는 저와 아빠의 눈이 마주쳐요. 아빠가 허리를 굽혀요. 어차피 아빠를 못 이길 걸 아니까 저는 알아서 몸을 바로 세워요. 아직 기회는 많거든요. 강변 잔디밭의 반려인들은 오래오래 이야기를 나누니까요. 

아빠가 말해요.

“개들은 말을 못 하니까 병이 깊어지고 나서 병을 발견할 때가 많아요. 이 검사 저 검사하면서 시간이 훌렁 지나가버리죠. 얘는 안 그랬으면 좋겠는데. 그러니까 녀석아, 말을 해라, 말을. 현실에서 말을 못 하면 내 꿈속에 나와서라도 말을 해라. 그래야 아빠가 치료를 해주지.”

아빠가 제 등을 톡톡 쳐요. 저는 고개를 들어 아빠를 보고 헤벌쭉 웃어요. 그때 입가에 뭉쳐 있던 하얀 거품이 두둑 떨어져요. 아빠가 입가를 깨끗이 닦아줘요. 간지럽던 입가가 시원해져요. 저는 또 아빠를 보고 헤벌쭉 웃어요. 

“웃지 마, 자식아. 정들어.”

아빠는 늘 이래요. 보기엔 정 없이 말을 툭툭 던져요. 하지만 그 말엔 뻣뻣함이 전혀 없어요. 오히려 막 뽑아낸 가래떡처럼 말랑말랑하고 따스운 김이 폴폴 나지요.    

  

“이제 가자. 아빠 바쁘다. 너 데려다 놓고 일하러 가봐야 한다.”

아, 벌써요? 저는 가기 싫다고 온몸으로 버텨요. 그러자 아빠가 이번엔 져 줘요.

“알았다, 알았다. 딱 십 분만 더 있다가 가자. 그 이상은 안 된다. 알았재?”

저는 눈빛으로 말해요. 고마워요, 아빠!

“요 녀석이 요기만 오면 안 갈려고 해요. 요기는 저하고 놀 만한 개도 한 마리 없는데, 뭐가 좋은지 자꾸 이쪽으로 가자며 나를 잡아끈다니까.”

아빠 말에 봄이 아줌마가 정답을 말해요.

“우리가 있잖아요. 장군이를 예뻐하는 우리가.”

“그러네. 지를 좋아하는 사람은 기똥차게 알아, 녀석이!”

아빠가 저를 보며 눈을 흘겨요. 

그러는 사이 십 분이 후딱 흘러가버려요. 아빠는 하니 엄마의 다리에 기대고 있는 저를 일으켜 세워요. 십 분만 더요, 하고 저는 떼를 써요. 그러나 이번엔 어림없어요. 아빠가 떼쓰며 버티는 저를 아예 들쳐서 어깨에 메어요. 쩝, 저는 할 수 없이 아빠 어깨 위에서 반려인들에게 눈인사해요. 내일 봐요~.     


한 달 뒤, 저는 신경계 검사를 마쳤어요. 또 아무 이상이 없다는 소견이 나왔어요. 저는 여전히 사료를 안 먹어요. 사료가 싫어서 안 먹는 게 아니에요. 못 먹겠어요. 먹으려고 하면 이상하게 구역질이 나요. 

“죽 사료를 억지로 떠먹이는데 그것마저도 토해버리니….”

아빠의 말에 저는 할 말이 없어요. 하지만 절대로 제가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건 아니란 건만은 알아주세요. 저도 모르게 울컥 올라와 버리니까 어쩔 수 없이 뱉어내는 거예요. 아빠, 미안해요. 조금이라도 더 먹이고 싶어 하는 아빠를 위해서라도 조금 더 먹고는 싶은데 제 몸이 따라주지 않아서요. 

등을 긁어주던 솔이 아줌마가 말해요.

“장군이 털이 많이 안 좋아졌어요. 윤기가 사라진 것 같아요.”

아빠가 말해요.

“사료를 못 먹으니 몸 전체가 다 안 좋아요. 털도 엄청시리 빠져요.”

“장군아, 많이 아파?”

걱정해 주는 솔이 아줌마의 말에 저는 헤벌쭉 웃어 보여요. 

“웃지만 말고 말을 좀 해 봐. 어디가 아프니? 장도 아니고 신경계도 아니고 도대체 어디야?”

“또! 또! 그렇게 비딱하게 서면 관절에 나쁘다니까. 이것 봐, 솔이 엄마 옷에 털이 잔뜩 묻었다. 어구, 봄이 엄마의 바지도 그렇네.”

봄이 아줌마가 말해요.

“괜찮아요. 이건 뭐 집에 가서 돌돌이로 싹싹 밀면 되는데.”

아빠가 미안한 듯이 말해요.

“거품도 묻어있어서….”

솔이 아줌마가 말해요.

“아유, 걱정 마세요. 빨면 되죠.”

아빠의 표정이 조금 풀리고 아빠의 손이 제 입가를 닦아주어요. 

“그동안 해볼 건 다 해봤어요. 이제 진짜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뇌 검사를 해보려고요. 여기서도 이상 없으면 더 해볼 검사도 없어요.”

아빠가 저를 내려다봐요. 저는 아빠에게 헤벌쭉 웃어 보여요. 어라, 근데 아빠가 퉁을 놓지 않네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대학병원에 예약을 잡으려니까 몇 달이 소요되더라고요. 그 몇 달이면 장군이가 못 먹어서 말라죽어버릴지도 모르는데. 그래서 다른 도시에 있는 동물병원을 수소문했어요. 다행히 바로 검사가 가능한 동물병원이 한 군데 있더라고요.”

“언제예요?”

“내일이요.”

아빠가 한숨을 푹 쉬고 말을 이어요.

“이 검사 결과는 좋아도 걱정, 안 좋아도 걱정이에요. 검사 결과가 좋으면 병명을 모르는 거고, 안 좋으면….”

아빠는 말을 감추고 대신 쭈그리고 앉아서 제 입가의 하얀 거품을 닦아주어요. 제 입가에는 생기는 하얀 거품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사용하는 휴지도 점점 많아지고 있고요. 아빠는 가방에 한가득 휴지를 넣고 다녀요. 커다랗고 까만 비닐봉지도 들고 다니는데 다 쓴 휴지를 거기에 차곡차곡 모으지요. 아빠가 수시로 닦아주는 데도 저는 잔디밭에 하얀 거품을 뚝뚝 흘리고 다녀요. 안 그러고 싶은데, 깔끔하고 싶은데. 나이가 드니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네요. 내 입안의 침조차 어떻게 하질 못하니…. 

제가 헤벌쭉 웃자 아빠가 말해요.

“자식아, 뭐가 좋다고 웃냐, 웃기를.” 

저는 아빠에게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주어요.     

 

다음 날 저는 MRI 뇌 촬영을 해요. 

한참을 기다린 후에 검사 결과가 나와요. 드디어 병명이 밝혀져요. 

제 병명은… 뇌암이래요. 종양이 커질 대로 커져서 제 뇌를 압박하고 있대요. 암이 이미 뇌 전체로 퍼져서 수술은 불가능하대요. 

수의사 선생님의 설명에 아빠는 아무 말이 없어요. 저는 아빠가 자책할까 봐 걱정해요. 아빠의 흔들리는 눈빛이, 비통한 표정이 그러고 있다고 말해요. 처음에 사료를 먹지 않았을 때 왜 뇌 검사를 안 해 봤을까… 구역질을 하고 먹은 사료를 토해내고 어지러워할 때 왜 뇌를 생각지 못했을까… 장에 이상이 없었을 때 왜 꾀병이라고 단정 지어 버렸을까…. 

아빠, 제발 자책하지 말아요. 아빠 탓이 아니에요.     


그때 수의사 선생님이 ‘안락사’라는 말을 꺼내요. 아빠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져요. 안락사가 얼마나 무서운 것이길래 아빠의 표정이 굳어질까요. 저는 아빠의 저런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아빠가 저를 보네요. 뭔가 할 말이 있는 듯이 머뭇거려요. 아빠, 제 눈치 안 보고 말해도 돼요. 저는 눈으로 말해요. 그래도 아빠는 머뭇거림을 멈추지 못해요. 그런 아빠에게서 저는 커다란 슬픔을 엿보아요. 제 마음이 따라서 슬퍼져요.

수의사 선생님이 말해요. 

“잘 생각해 보고, 결심이 서면 그때 다시 데려오세요.”

아빠가 안도의 표정을 지으며 벌떡 일어나서 두 손으로 저를 안아 들어요. 종종걸음 쳐서 진료실을 벗어나요. 저는 아빠 품에 안겨서 집으로 돌아와요.      


그 뒤로 저의 몸 상태는 더욱 나빠져요. 죽 사료는 먹을 수 없게 된 지 오래, 이제 물도 넘기기 힘들어요. 침도 삼키기 힘들고요. 제가 삼키지 못하는 침은 아빠가 손가락을 집어넣어서 휴지로 닦아내 주어요. 

그러는 동안 아빠의 얼굴빛이 점차 어두워져요. 힘이 많이 드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떼까지 써서 아빠를 힘들게 해요. 미안하지만 저도 어쩔 수 없어요. 강변 잔디밭에 꼭 가고 싶거든요. 거기 가면 마음이 편안하고 숨이 쉬어져요.

솔이 아줌마의 다리에 몸을 기대고 있으니 아빠가 소리쳐요. 

“안돼!”

아빠가 제 몸을 바로 세우려고 하다가 갑자기 손을 떼고 일어서요. 

“이게 다 무슨 소용이겠어요! 관절과 척추가 손상되기도 전에 갈 텐데.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두는 게 저를 위해서 낫지…. 알았다. 가기 전에 사랑 많이 받아라.”

저는 아빠를 향해 헤벌쭉 웃어요. 그러자 입가로 침이 줄줄 흘러내려요. 아빠가 휴지를 입 깊숙이 넣어 침을 닦아내 주어요. 

얼마 후 아빠가 말해요. 

“장군아, 이제 가자. 집에 갈 시간이다.”

저는 떼쓰지 않기로 해요. 그리고 빼빼한 아빠가 저를 안아 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혼자 걸으려고 애써요. 아빠를 사랑하는데, 아빠를 고생시켜서 미안하니까요.   

   

그로부터 닷새가 흘러요. 이제 저는 똑바로 걷지 못해요. 눈앞이 흐려졌어요. 반려인들에게도 다가가지 않아요. 솔이 아줌마와 봄이 아줌마와 하니 아줌마가 저에게로 와서 인사를 해요. 그들의 목소리는 차처럼 따뜻하고 엄마처럼 다정해요. 저는 헤벌쭉 웃음으로, 살랑살랑 흔드는 꼬리로 인사하려고 해요. 

모두 모두 고맙습니다. 

그런데 저는 웃질 못해요. 웃으려 해도 웃어지질 않아요. 제 입술이 웃는 법을 잊어버린 것 같아요. 제 꼬리는 흔드는 법을 잊어버린 것 같고요. 코도 냄새 맡는 법을 잊어버렸어요. 바람의 손이 잡아 오는 냄새를 저는 하나도 알아차리지 못해요. 

그래도 여기에 마지막 제 흔적을 남기고 싶어요. 그래서 엉거주춤 일어나 어기정어기정 걸어서 잔디밭 가에 쭈그리고 앉아요. 온 힘을 짜내요. 끙끙.

“먹은 것이 없는데 나오나?” 

아빠가 말해요. 그렇네요. 먹은 것이 없으니 똥이 나올 리 없지요. 저는 자세를 바로 해요.      


아, 이제 이 모든 것을 두고 떠나야 할 때가 왔나 봐요. 

저에게 사랑을 듬뿍 나눠주었던 반려인들도, 저에게 달려와 인사를 하던 꼬마 친구들도. 잔디밭의 냄새도, 강물의 냄새도. 

그중에서도 아빠를 떠나는 것이 가장 슬퍼요. 아빠는…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내가 사랑하는 나의 아빠니까요. 

아빠가 말해요. 

“장군아, 마지막으로 한 바퀴 돌고 가자. 네가 좋아하는 곳이잖아. 맨날 여기 나가자고 조르잖아. 사료 한 알도 못 넘기고 물 한 모금도 못 먹는 몸으로 말이다.”

그래요, 아빠. 

아빠는 천천히 잔디밭을 걷기 시작해요. 저도 아빠를 따라 걸어요. 

그런데… 그런데… 너무 힘들어요. 머리가 어지러워요.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요. 눈앞이 깜깜해져요.    

  

장군이 아빠는 쓰러진 장군이를 안고 잔디밭을 떠났습니다. 

이튿날 장군이는 무지개다리를 건너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13살 생일을 한 달 앞둔 날이었습니다. 

장군이의 12년 11개월의 생이 그렇게 끝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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