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표정한 행복
삶을 살아가다 보면 우울증이라는 벽이 어마어마하게 크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때는 바로 행복할 때이다.
행복할수록 낙폭도 크고, 일단 행복이라는 단어에 거부감이 본능적으로 크다는 걸 때때로 느낀다.
마음껏 행복하기 어려운 느낌으로 가로막힌 느낌이랄까.
뿌듯함을 느끼기에는 자기혐오가 너무 크고, 즐거워하기에는 공허함의 구멍이 너무 커서 괴롭고
쾌락을 느끼기에는 죄책감이 밀려온다.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행복하면 안 되는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행복할수록 어쩔 땐 괴로움이 커지기까지 하는 것 같다.
그나마 그래서 가장 찾게 되는 게 바람 쐬기가 최선인 거 같다.
죄책 감 없이 느낄 수 있는 유일한 행복이 무표정한 행복인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지루할지언정 멍이 자꾸 때려지고 쳐 지랑 말랑 할지라도 쳐지지만 않는다면 그냥 그 자체로 감사한 무표정한 무감각한 형태.
그 형태가 가장 안정적이고 감사하다.
그 와중에 아늑할 수 있는 시원한 바람에 쾌적한 환경으로 바람까지 쐴 수 있고 굳이 웃어대지 않아도 되고
마음껏 무표정할 수 있고 떠들지 않아도 된다면 그것이야 말로 최고로 아늑한 행복인 것 같다.
그걸 함께하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얼마나 축복일까.
그래서 그렇게 조금이라도 힘이 나면 카페라도 나가서 가만히 앉아 있기라도 하나보다.
카페를 나갈 힘이 있다면 당신은 충분히 행복한 사람이다.
행복은 큰 게 아니다.
웃고 기분이 높아져야만 행복이 다가 아니다.
오늘 하루종일 무표정하더라도 내가 아무렇지 않았다면 그 또한 행복이다.
내가 오늘 무표정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자.
내가 오늘 또 즐기지 못했다고 채찍질하지 말자.
아무 일도 없고 일어나지 않고, 일어날 일도 하지 않았고 그렇게 견딘 당신이 얼마나 대단한가.
그렇게 계속된 하루를 살아간 당신은 오늘도 어마어마하게 대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