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문턱에서 나의 손을 잡아줄 그대에게
죽음의 문턱에 가까워졌다 오고 난 뒤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의외일지 모르겠으나 ‘너 없으면 나 어떻게 하라고 그래 ‘이다.
이게 위로일까 사랑일까 안심의 말일까.
당사자였던 나에게는 ‘죄책감‘이라는 단어로 가장 크게 다가왔던 것 같다.
내가 하면 안 되는 일을 했다는 것은 누구보다도 잘 아는데, 그와 더불어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줬다는 죄책감.
그래서 그러고 난 뒤에는 더 잘 살아보려고 노력을 해보게 된다.
다른 사람이 되어보려고도 한다.
근데 안 그래도 나는 이전보다도 더 아슬아슬한 상태의 대가로 간신히 버티는 상태라 그 죄책감이란 걸 버티기에는
너무 무겁고 숨이 막히고 더 괜찮은 척을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살시도를 한 사람은 얼마 안돼서 다시 시도를 하게 되는 걸 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래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분명 한번 하기 전보다 더 견디기 힘들어질 테니까.
나는 나 자체로 죽지 못해서 내가 왜 살아 있는지도 모르겠는데 주변의 눈치까지 살펴야 하고 ‘잘’ 살아 있어야 만한다.
이거 자체로 가슴이 답답해 터질 거 같은 기분을 어디다 풀어야 할까
의사도 한 번 더 그랬다가는 위험군으로 외래진료까지 거부한다 하고 갈곳 없어지는 나는 대체 어디로 어디까지 벼랑 끝으로 가야 한다는 말인가.
전화로 언제든 힘들면 말하라는 사회복지사의 전화상담은 분명 괜찮다 말할 텐데, 내가 듣고 싶은 말이 괜찮다는 말일까?
뭐가 괜찮은 걸까 뭐가 괜찮다는 말이 듣고 싶은 걸까
차라리 죽어도 괜찮다는 말이 위로가 될 거 같은 그 심정을 누가 알아줄까
누구한테 터놓을 수 있을까.
그저 죽지 말라고 감시하기 위해 시키는 입원밖에는 답이 없는 거 아닐까.
그럼 그다음 달 생활비는 입원비는 누가 벌어다 주나.
병원에서 나오면 나는 얻는 게 더 많을까?
그렇게 살아서 얻는 삶은 누구를 위한 삶일까.
한 번쯤 언젠가 내가 나를 위해서 내가 살고 싶어서 살아가는 삶이 된다면 그때는 내가 진정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그 기분은 어떤 기분일까.
내가 이렇게 솔직하게 글을 적는 이유는 내가 지금 죽으려고 글을 쓰는 건 아니다.
지금 이 생각을 하는 당신처럼 나도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일상을 보내고 회사를 다니고 출근을 하고 있고,
버텨보고 있다고. 이렇게 버텨서 너와 내가 생각하는 그날이 오는지 둘 중 한 명이라도 그날이 온다면 오기는 온다고
누구 하나 먼저 말해주는 날이 오기를 같이 기다려보자고 같이 손잡아 주자고. 먼저 손 내밀어 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