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에 져서라도

오늘의 너에게 #16

by Illy

아기에게 자아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 지 4, 5개월 정도 됐을까...

말로 표현하는 건 아직 잘 못하지만 자신이 해줬으면 하는 건 열심히 표현하게 되었다.



침실을 가리키며 아! 아! 하면서 침실에서 놀고 싶다고 어필한다.

장난감이 들어있는 박스 뚜껑을 때리면서 "빠까 빠까(일본어로 뚜껑을 열 때의 의성어)"하면서 열어달라고 부탁하기도 하고...

보리차를 먹고 싶을 때는 "차차"라고 하고, 크레용을 들고 와서 그려봐 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자신이 그리지는 않는다).



그런 아기가 유독 표현을 많이 하는 시간.

바로 식사 시간이다.



밥이랑 국물류, 그리고 손으로 잡아먹을 수 있는 반찬으로 한 끼 준비를 하는 편인데 아무리 아기가 좋아하는 국물을 준비해도 반찬을 먼저 먹고 싶어 한다.


반찬이 든 그릇을 가리키면서 자기 앞에 두라고 "아! 아!" 한다.

그렇게 되면 물도 안 먹고 밥도 국도 안 먹는다.

절대 포기란 없다.



하지만 반찬을 눈앞에 두기만 하면 된다.

반찬을 관찰하고 스스로 먹는 동안에 내가 국이나 밥을 떠먹여 주면 바로 입을 벌려서 먹는다.

결국 여러 음식을 번갈아가면서 먹게 된다.



이제 슬슬 배가 차면 여기저기 훑어보더니 하트 모양 그릇을 발견하고서는 또 "아! 아!" 한다.

하트 모양은 과일이 담겨있는 경우가 많다. 아침에는 꼭 있는 편이다.


나도 식사가 끝날 때까지 숨겨놓으려고 하지만 준비단계에서 아기가 발견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럼 내가 과일을 줄 때까지 입을 꾹 다문다.

밥이 남았는데도 그렇다.


밥을 조금 남긴 채 과일을 준다.

어쩔 수 없다.


그럼 과일을 맛있게 집어먹고 이제 끝인가 싶더니 밥과 국을 달라고 한다.


결국 다 먹는다.

과일 다음에 밥을 먹는다니 맛이 이상해 지지 않을까 싶지만 그냥 맛있게 먹고 있다.



아직은 많이 어려 먹는 순서를 꼭 지켜야 할 단계는 아니라고 하지만 원칙주의적인 나는 오늘도 질 게 뻔한 싸움을 벌인다.



하지만 이 두 가지만큼은 너무나 감사하다.

매번 거의 깨끗이 다 먹는다는 것.

맛있다고 볼에 손을 대고 표현해 주는 것.


앞으로도 그래주길...



오늘의 너에게

어른의 세계에는 더 맛있는 음식이 많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