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숲으로 가는 길은 비포장도로였다. 비가 왔는지 곳곳에 웅덩이가 있어 요리조리 피해 걸어야 했다. 거긴 안 간다고 손 사래를 쳤던 택시 기사분의 말이 이해가 되었다. 커플을 실은 차들이 느릿느릿 뒤뚱거리며 나를 추월했고, 그때마다 옷에 흙탕물이 튀지 않도록 한쪽으로 피했다.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버스에서 내려 비밀의 숲까지 도보 30분 거리를 걷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가까스로 숲에 도착했을 때는 거의 그로기 상태였다. 남의 속도 모르고 걸터앉을 의자 하나 없이 이쁘기만 한 곳이었다. 그나마 있는 통나무 의자는 커플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 있었다. 바닥은 질척했고 커플들은 넘쳐났고 다리는 끊어질 것 같고 날씨는 무진장 추웠다. 높다랗게 뻗은 삼나무가 야속하게 느껴졌다. 누군가와 함께였다면 저들처럼 신이 나서 사진을 찍어댔겠지만 지금은 다 떠나서 발 뻗고 누울 장소가 필요했다. 숙소에 돌아가려면 왔던 길로 되돌아가 버스를 세 번이나 갈아타야 했다. 갈 길을 생각하니 까마득했다. 어쩌자고 이곳까지 온 것일까. 후회해도 소용없다. 얼른 도로 나가는 수밖에.
돌아오는 길은 더 더뎠다. 길은 끝이 보이지 않았고 길 옆으로 드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었다. 그림 같은 자연을 배경으로 십 수 마리의 말들이 머리를 박고 풀을 뜯고 있었다. 육체의 피로 앞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은 그야말로 사치였다. 오로지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누워 자고 싶다. 말은 서서 잠을 잔다던데 왜 인간은 서서 잘 수 없는가.
아부오름이요.
목적지를 듣고 기사 아저씨는 눈을 살짝 찡그렸다. 마을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관광객이라니. 한몫 잡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원래 가까운 데는 안 가는데, 볼멘소리를 하면서도 불쌍해 보였는지 타라고 했다. 아부오름까지는 차로 5분도 안 걸렸다. 숙소로 돌아가 쉬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이번을 놓치면 다시는 오지 못할 것 같았다.주차장에 도착하자 기사 아저씨는 제주는 기본 오천원은 줘야 한다며 거스름돈을 돌려주지 않았다.
입구에 들어서자 일부러 심어놓은 듯한 나무 한 그루와 그토록 원했던 벤치가 보였다. 절뚝이며 뛰어가 그대로 누워버렸다. 파란색 시트지를 깔아놓은 듯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참 예쁘다. 그렇게 하늘을 덮은 채로 한참을 누워있었다. 멀리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제주에서의 첫날, 길 위를 걷고 또 걸었다. 마치 순례자가 된 것처럼. 사람들은 길 위에 혹은 길 끝에 어떤 깨달음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길에다 비슷한 이름을 지어줬다. 사색의 길, 명상의 길, 철학자의 길, 순례자의 길. 나도 오늘 얻은 깨달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