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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자, 이해가 안 돼요.

내 남친은 왜 전 남친들과 똑같을까? 그들의 진화적 숙명

by 공상과학철학자
본 브런치북은 과학적인 시선으로 인간사회를 탐구해 보며, 함께 살아감을 생각해 보는 철학 시리즈입니다.


서른 살 영희 씨는 지난 사랑의 상처를 딛고, 새로운 연애를 시작했다.


만나기 시작한 것은 석 달쯤 전이었을까?

훤칠한 키와 외모, 자상하고 유머러스한 성격이 영희 씨의 마음에 들어왔다.


그러나 그를 점점 만나 오면서, 가끔씩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단순히 성격 차이로 넘기기에는 너무 반복되는 그의 패턴들. 어쩜 그렇게 전 남친들과 비슷할까?

영희 씨는 평소 사회에서 알고 지내던 공상과학철학자를 찾아와 하소연했다.



남자친구의 행동들. 영희 씨의 말:


#1. 공감보다 문제 해결: "제 기분은 누가 풀어주나요?"

며칠 전 엄마랑 조금 다퉜어요. 엄마가 잡동사니를 집에 자꾸 모으셔서, 필요 없어 보이는 것을 재활용 날에 싹 정리했거든요.

그런데 그중에 엄마가 아끼는 물건이 있었어요. 낡은 구두 한 켤레였는데, 왜인지 저한테 엄청 화를 내시는 거예요. 저는 집 깨끗하게 한다고 몇 시간을 힘들게 청소한 건데 엄마는 마음도 몰라주고...

너무 속상해서 남자친구한테 이 얘기를 했더니, 제가 잘못한 거라고 하면서 엄마께 사과드리고 맛난 식사로 기분을 풀어드리라고 하네요.

저는 그냥 속상한 마음을 남자친구가 들어주기를 바랐을 뿐이에요. 제 기분은 남친도 아니면 누가 풀어주나요?


#2. 과시성/위험 감수: "사고라도 나면 어떡하죠?"

그리고 가끔씩 남자친구 행동이 불안하게 느껴져요. 재테크를 한다면서 코인과 테마주만 찾아봐요. 최근에는 자기 취향의 시계를 사야 한다며 무리하게 지르려고 하는 거예요.

또 철인 3종에 빠져 로드 사이클 훈련에 열심인데 너무 위험해 보여요. 저러다가 사고라도 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도 들고요.


#3. 소유욕과 통제: "저를 믿지 못하는 걸까요?"

답답한 마음이 들 때도 많아요. 처음에는 저를 사랑해서 그러는 줄 알았는데, 점점 구속처럼 느껴져요.

제가 누구를 만나서 뭘 하는지, 식사는 뭘 했는지, 심지어 SNS에 올린 사진의 제 옷차림까지 지적하고 간섭할 때가 있어요. 자기가 걱정돼서 그런다는데, 왜 사랑한다는 사람이 저를 믿지 못하고 통제하려 드는 걸까요?


#4. 곁눈질과 뻔뻔한 변명: "나비 한 마리요?"

더욱 황당한 건 제 생일날 레스토랑에서 식사할 때였어요. 예쁜 여자가 지나가니까 저 몰래 슬쩍 곁눈질을 하는 걸 봤어요. 정말 민망하고 화가 나서 따졌더니, "여자를 본 게 아니라 나비 한 마리가 날아가서 쳐다본 거야."라고 뻔뻔한 대답만 하더라고요. 저랑 같이 있는데도 저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화가 났어요. 며칠 전 행방이 묘연한 날이 있었는데 클럽에 간 것이라는 심증도 있어요.


#5. 진도 조급증: "저를 가볍게 생각하는 걸까요?"

진도를 빨리 나가려 하는 것도 그래요. 만난 지 석 달밖에 안 됐는데, 자꾸만 신체적 접촉을 시도하고 제가 거절하면 서운해하고 시무룩해해요. 저는 천천히 감정을 쌓고 싶은데, 저를 가볍게 생각하는 걸까요?


#6. 결혼 회피: "연애 대상으로만 취급하는 걸까요?"

제가 은근히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 남자친구는 "아직은 때가 아니다", "좀 더 연애에 충실하고 싶다"라며 계속 피해요. 저를 사랑한다면서 왜 미래에 대한 고민은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지, 그냥 단순한 연애 대상으로만 취급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워요.



공상과학철학자의 해석


이를 가만히 들은 공상과학철학자는, 영희 씨에게 이렇게 답했다.


"남자친구의 이런 행동들은 남성이라는 종의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도록 먼 과거로부터 설계되어 온 원시적 본능의 반영일 수 있어요. 이는 그들의 뇌가 환경에 반응하는 자동적인 프로그램에 가까워요. 아마 이런 이유들 때문일 겁니다."


잘잘못을 따지고, 문제 해결을 시도하는 것

여성은 대체로 사회적 연대와 유대감이 발달한 반면, 남성의 뇌는 '자원 획득과 생존'을 위해 문제를 해결하고 결과를 내는 데 집중하도록 발달했다. 그들은 해결책 제시를, 사랑하는 사람을 보호하고 돕는 행위로 인식한다. 공감능력이 대체로 떨어지는 편이다.


☞ 위험투자, 과시

위험 투자를 선호하거나, 비싼 시계를 사고, 극한 스포츠를 즐기는 행동은, 자신은 인식을 못해도 '번식 성공률'을 높이고자 하는 무의식의 발현이다. 위험을 감수할 만큼 자신이 건강하고, 자원을 낭비해도 괜찮을 만큼 능력이 있음을 짝에게 과시하려는 잠재의식이다.


☞ 통제와 소유욕

남성의 '친자 확인(Paternity Certainty)' 본능 때문이다. 자신의 유전자 투자(자원)가 헛되지 않도록, 짝의 이탈을 막아 경쟁자로부터 짝을 독점하려는 본능이다.


☞ 다른 여자 곁눈질

남성은 '양적 번식 전략'을 추구한다. 주변 환경에서 잠재적인 번식 기회를 스캔하려는 본능적인 탐색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것으로, 애정 부족이 아닌, 사실상 뇌의 자동적인 반응에 가깝다.


☞ 진도 조급증

남성은 최소 투자로 최대 번식 효과를 얻으려는 본능이 강하다. 기회가 왔을 때 빠르게 실행하는 것이 번식에 유리했고, 거절은 '번식 기회 상실'이라는 신호로 느껴 조급하고 초조해한다. 그래서 남자들은 다 늑대라는 표현이 나온건 지도 모른다.


☞ 결혼 회피

결혼은 한 여성에게 '장기적인 헌신'을 약속하는 행위이자, '미래의 다양한 번식 기회'를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번식 기회를 확보하려는 본능과 헌신의 비용이 충돌하는 지점이다.


"남자가 전부 다 이렇다는 것은 아니에요. 대체로 그런 경향성이 있다는 말이에요."

영희 씨에게 공상과학철학자가 덧붙였다.



주체적인 사랑으로 본능을 뛰어넘기


물론 이러한 진화심리학적 해석이 남자의 모든 행동에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니다. 남자 역시 본능을 극복하고 조절할 수 있는 사회성과 고차원적 이성을 가지고 있다.


영희 씨에게는 주체적인 선택권이 있다.

남자친구가 존중 없는 행동(통제, 곁눈질, 조급함 등)을 보일 때, 영희 씨는 그 행동을 허용하거나 거부할 선택의 권리가 있다.


다만, 남자친구의 불편한 행동들을 애정 부족이나 집착으로 보기보다는, 수많은 세대를 거쳐온 자연선택, 성선택 프로그램의 작동 결과에 가깝다는 점은 한 번쯤 이해해 볼 필요가 있다.

진정한 사랑은 차이를 같게 만들려는 노력이 아니라, 차이를 인정하고 포용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니까 말이다.


물론 사랑은 본능의 작동만으로 유지되지는 않는다.

본능은 이해의 실마리일 뿐, 관계를 지탱하는 힘은 결국 존중과 신뢰, 그리고 각자의 주체적 선택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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