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프가 복직하고 딸의 어린이집 하원은 내가 한다. 근무 시간을 앞당겨 조금이라도 빨리 딸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기쁜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딸아이를 힙시트의 앉히고 서로를 바라보며 집으로 걸어갈 때면,하루의 동안 안부를 묻곤 한다.
나 : 선생님 말씀은 잘 들었어요?
딸 : 에~에~ (노력했다는 의미로 추정)
나 : 밥은 잘 먹었어요?
딸 : 에~에~ (잘 먹었다는 의미로 추정)
나 : 아빠 해보세요~
딸 : 아~푸~ (귀찮다는 의미로 추정)
'엄마'라는 단어는 자연스럽게 빨리 마스터했다. 외로워도 슬퍼도 배고파도 졸려도 엄마는 입에 착 붙는가 보다. 반면 '아빠'는 감감무소식이다. 11개월이 됐어도 '아빠'를 쉽사리 해주려 하지 않았다. 너튜브에서 9개월 된 아기가 '아빠'라고 하는 것을 보고 당연히 우리 딸도 그럴 거라고 기대했는데....
문득 딸의 눈에 비친 나는 어떤 존재일지 궁금했다. 하원시키고, 밥 먹여주는 사람? 비행기 놀이와 좀비 놀이를 쉴 새 없이 해주고 '아디아디아디 챌린지'로 본인 앞에서 춤춰주는 사람?
그러던 어느 날 유난히 죽이 척척 잘 맞는 날이 있었다. 대답도 잘하고, 반응도 아주 적극적이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혹시?라는 기대를 안고 물어봤다.
나 : 아빠 해보세요~
딸 : 아.빠~!
나 : 오~ 다시!!
딸 : 아.빠~!!
나 : 으아아아아!!!
그날은 6/15일 6시 13분이었다. 13개월차다. 나는 그 순간의 감동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어 영상으로 촬영해 수십 번을 돌려봤다. 무엇보다 기뻤던 것은 내가 딸에게 비로소 '아빠'로 불렸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아빠'였고, 그래서 '아빠'이고 싶었으나, '아빠'이지 못했던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이제야 비로소 '아빠'로써 남들과 구별되는 의미있는 존재로 인식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뻤다.
비로소 아빠가 되었다는 것
그 순간 이후부터 나의 하원은 '아빠'의 하원이며, 비행기와 좀비 놀이는 '아빠'와 함께하는 놀이이고, '아디아디아디 챌린지'는 '아빠'의 엉성한 손짓과 발짓이 되었다. 모호했던 관계가 명확해지고,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나의 행위들에 의미가 부여되어, 딸은 아빠를, 아빠는 딸을 상호 특별한 존재로써 인정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