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기 유도, 관성, 기념일, 생일, 발렌타인, 화이트, 로즈, 빼빼로
저의 일상 속의 행복 중 하나는
아내와의 기념일을 챙기는 것입니다. 근사한 이벤트는 아니구요, 생일부터 결혼기념일, 약혼기념일, 몇백 일, 몇천 일, 빼빼로 데이, 화이트 데이, 로즈 데이 등등 사소한 날들을 기념하며, 그저 아내를 생각하며 작은 선물을 준비하는 것이 즐겁습니다. 숨겨 놓은 선물을 찾는 반응을 보는 것도 재밌구요. 어느 로즈 데이에 깜빡하고 장미를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아내에게 이번엔 바빠서 준비를 못 했다고 이실직고했죠. 아내는 "오늘이 로즈데이였어?" 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하곤, 웃으면서 슬그머니 일어서더니, 여기저기 열어보기 시작합니다. 장롱부터 서랍, 싱크대 선반, 신발장, 제 바지 주머니, 가방, 현관 택배함까지 열 수 있는 건 다 열어보더라고요.
응? 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아내의 알 수 없는 행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 의한 것 같은데요. 마치 어떤 상태를 유지하려고 하는 힘과 비슷한 것 같아요. 일상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전자기 유도 현상'을 알아보며, 아내의 마음을 이해해 보겠습니다.
도선에 흐르는 전류가 자기장을 발생시키기도 하지만, 역으로 자기장으로 전류를 발생시킬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전류로 자기장을 유도하고 또는 자기장으로 전류를 유도하는 것을 '전자기 유도(electromagnetic induction)'라고 합니다.
원통 코일과 자석(자기장)을 이용해서 전류를 발생시켜 보겠습니다. 원통 코일과 자석을 한 직선에 나란히 겹치지 않게 놓으면, 자석에서 나오는 자기장이 원통 코일 안까지 퍼져나갑니다. 이 상황에서 퍼져있는 자기장 중에 1개의 자기력이 원통 코일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현재 상황에서는 1개의 자기력만이 원통 코일 내부에 존재할 뿐 아무런 반응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어서 자석을 원통 코일 안으로 넣어보겠습니다. 자석에서 나오는 자기장은 자석에 가까울수록 밀집해 있습니다. 그래서 자석이 원통 코일에 가까워질수록 원통 코일에 들어가는 자기장 개수도 많아집니다. 이 상황에는 퍼져있는 자기장 중에 3개의 자기력이 코일 안으로 들어간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렇다면 자석과 원통 코일이 떨어져 있을 때 보다 2개의 자기력이 증가했죠? 여기서 신기한 일이 벌어집니다. 원래 원통 코일 안에 있는 자기력은 1개였기 때문에 본래 상태로 돌아가기 위해 2개를 반대 방향으로 밀어내버립니다. 이를 역자기력이라고 합니다. 계속 눈에 보이지도 않는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고 있네요. 일상적인 예를 통해 이해를 도와볼게요.
평소 버스를 막 탔을 때 앉을자리가 없으면 손잡이를 잡고 서 있습니다(자리가 있어도 서 있는 게 편할 때도 있죠). 버스가 출발하는 순간, 손잡이를 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버스의 뒤쪽으로 내 몸이 살짝 움직입니다. 나는 버스 안에서 안전하게 가만히 서 있고 싶은데, 버스가 앞쪽으로 움직이니, 나는 그 자리를 유지하고 싶어서 뒤쪽으로 움직이게 됩니다. 이처럼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물체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자연현상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관성(inertia)이죠.
다시 자석과 코일로 돌아오면, 현재 코일과 자석 간의 약간 떨어진 간격에서는 1개의 자기력이 코일 안에 존재하는 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코일 안으로 자석을 넣게 되면 자기력의 수가 3개가 되고, 원래 관성보다 2개가 더 늘어나게 되어서 1개의 자기력으로 돌아가기 위해, 늘어난 2개의 자기력을 자석이 들어온 반대 방향으로 내보내는 2개의 역자기력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버스에서 내가 서 있는 관성이 1개의 자기력, 버스가 앞으로 움직이는 힘이 3개의 자기력, 내가 버스 뒤로 움직이는 힘이 2개의 역자기력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자석이 들어간 반대방향으로 원통 코일에 새로운 자기력인 역자기력이 형성되고, 원통 코일에서의 '앙페르의 오른손법칙'에 따라 엄지손가락의 방향이 역자기장의 방향이므로, 나머지 손가락이 원통 코일을 감싸는 방향으로 전류가 흐르게 됩니다.
원통 코일에서의 앙페르의 오른손법칙도 도선에서의 원리와 같습니다. 도선을 원통 형태로 감은 것이 원통 코일이므로 원통 코일의 한 도선을 오른손으로 감싸면, 원통 코일이 꼬여서 가는 방향이 전류가 흐르는 방향이 되고, 도선에 수직으로 자기장이 형성되어 원통 코일 한가운데로 자기장이 지나가게 되는 원리입니다.
이처럼 자석에서 발생하는 자기장과 자석을 움직이는 힘으로 전류를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일상에서 충전식 전기자전거의 페달 움직임으로 자석이 코일을 드나들게 해서 전류가 흘러 충전되고, 얇은 코일이 감싸져 있는 버스카드를 자석이 내장된 단말기에 대면 소리가 나며 얼마가 남았는지 알려줄 수 있도록 전류가 흐르는 원리도 이와 같습니다.
앞서 아내의 반응도 항상 선물을 받던 ‘관성’이 무너지자, 선물을 찾는 ‘유도’ 현상 발생한 것 같군요. 수상했던 아내의 여기저기 뒤지는 행동은,
과학이었군요^^♥
<이 글을 읽고 다음을 생각해 보세요>
1. 달리는 버스가 갑자기 멈출 때 내 몸은 어떻게 되는지 관성으로 설명해 보세요.
2. 원통 코일 안에 있던 자석을 뺄 때, 유도되는 자기력 방향과 전류 방향을 설명해 보세요.
3. 눈에 보이지 않던 현상들이 이제 보인다구요?
4. 그렇다면 지금 당장 장미를 사러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