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철 지난 해운대이지만

APEC을 넘어 세계로

by 나철여

음식도 제철 음식이 맛있듯 여행도 제철 따라가는 맛이 좋다.


가을축제는 어디든 열린다.

각 지방마다 역사의 맛을 살려 여기저기서 오라고 손짓한다. 오라는 곳은 많은 데 갈 시간이 정해져 있다. 주말마다 틈틈이 떠나보는 짧은 행이다. 여행의 *컴퍼스로 돌려보니 한두 시간 반경 내에 갈 곳이 참 많다.

*컴퍼스 : 그리려는 원이나 호의 크기에 맞춰 두 다리를 벌리고 오므릴 수 있는 제도용 기구.





요즈음은 가을과 겨울이 공존하는 것 같은 날씨다.

며칠 잠시 초겨울 같더니 어제오늘은 완연한 가을이다.


여름철을 지난 해수욕장,

해운대 해변은 아직 뜨거운 열기가 덜 식어 있었다.


항암 부작용으로 아직 몸 움직임이 불편한 남편이랑 어딜 갈 때면 언제나 비물이 많다. 차 트렁크에다 벤치 같은 접이식 긴 의자도 싣는다.

날씨는 유난히 화창하다.

우리 부부가 온 걸 어디서 듣고 왔는지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가 하나 둘 날아오더니 금세 떼로 몰려왔다.

어쩌면 비둘기들도 브런치스토리에 끼어들고 싶었나 보다.

구ㆍ구ㆍ꾸욱 뱃속에서 끌어오리는 비둘기소리는 마치 내가 깊은 슬픔을 끊어낼 때 나는 소리와 닮아 있었다.

이런 예측 못한 들러리가 또 있나 싶어 바로 편의점으로 달려가 새우깡 작은 봉지 하나를 사 왔다.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
덤으로 브런치스토리에도 너희들 모습 넣어 줄게


청아한 날은 생각의 반짝임도 청아하다.

움직여 줄 타이밍이다. 들고 간 벤치는 바로 옆 공영주차장에 세워둔 차까지 다시 들고 가지만 무거워도 무겁지 않다. 미리 저 쉬운 길을 체크하는 것도 보호자의 기본, 사전 답사해 놓은 숲길을 둘이 걸었다.


이야기를 찾아 떠나는 도시공원의 여행길이다.


숲에는 오래된 나무들의 숨은 이야기와 스토리텔링이 안내되어 있다.

은빛 겨울 붉은 로망스를 지닌 동백나무

머뭇머뭇 철쭉

위장병을 다스린다는 후박나무

불에 잘 타지 않는 아왜나무

여전히 꽃나무의 여왕 명자나무

바다의 친구 곰솔

나무 안내판 여섯 개소가 중간중간 서 있다.


길 따라 나무 따라 걷다 보니 오랫동안 닫혀있던 누리마루 APEC 하우스가 열려 있었다. 2005년 APEC 정상회담을 위해 지어졌던 누리마루다. 건축비 194억을 들여 지어졌다니 그냥 허투루 볼 수 없다.


이곳 정상회의장의 내부 천장은 석굴암 돔을 모티브로,

벽면은 천연실크를 재료로 하여 한국의 전통미와 색을 나타내고자 하였다 한다.

3층으로 지어진 건물. 남편 덕?에 엘리베이터를 탔다.

회의장 건물 밖은 더 세계적이다. 바다 지평선에 윤슬을 깔고 저 멀리 오륙도가 보인다.

철 지난 해수욕장도,

한국에서 처음 열렸던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 APEC 제2차 정상회담 장소도 모두 해운대가 품고 있었다.


20년만에 또 경주에서 열리는 두 번째 에이팩도 성공적이길 기원하며, 짧지만 긴 여운을 남긴 주말여행이었다.


하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하지 않으면 볼 수 없습니다.
하지 않으면 할 수 없습니다.
하지 않은 것은 아직 내 것이 아닙니다.


_ 조선 지식인의 아름다운 문장 중에서


짧은 여행도 하지 않으면 알 수도, 볼 수도, 그저 남의 것 일수도 있지 않은가. 또 다가오는 주말여행을 위해 주 중 할미육아도 보호자도 진심으로 열심으로 하자꾸나. 나철여!

keyword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