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면 다시 어린이가 됩니다
인생은 병 주고 약 주고
인생은 병 주고 약 주듯이 안정되었다가, 불안정한 상황에 놓이게 하는 우여곡절을 매번 선물로 준다. 인생의 곡선이 작든 크든 움직이게 만드는 이런 아이러니한 현상들은 때때로 나를 아프게도 하고, 아플 때 우여곡절을 선사하기도 한다. 받고 싶지 않을 때도 많은 데 말이다. 주식이 땅을 파듯, 현재 상황이 하향곡선일 때 뒤에서 밀어주듯 더 아래로 내몰기도 하기 때문이다.
인생이 하향곡선일 땐 나는 항상 아프다. 몸이든 마음이든. 대체로 마음이 아프면 몸이 아프기 때문에 안 좋은 일이 있으면 전신이 아프다고 보면 된다. 나는 다 커서 부모님의 간섭이 싫을 때가 많지만, 아플 땐 관심받고 싶다. 병원에서 부모님 품에 안겨 쓰다듬을 당하는 아이들이 세상에서 제일 부러워진다. 아픔을 혼자 견뎌야 한다는 걸 깨달은 뒤부터 아플 땐 어린아이가 된다. 아직 독립하지 못했기 때문에 부모님께 '여기 아프고 저기가 아프고 증상이 이러쿵저러쿵'말 하지만 사실 잘 들어주시지 않는다... 다 컸으니 알아서 병원 가라고 하신다.
차라리 독립을 했더라면 혼자 견뎠겠지만, 바로 앞에 있는 데 무관심 하니 학교 가기 싫어서 아팠던 것처럼 기존 증상보다 더 심하게 아프고, 열나기도 한다. 그러나 관심은 크게 없으시다.
가끔은 서럽다.
2024년은 유독 아팠던 한 해였다. 심한 스트레스와 공황, 알레르기, 각종 내장 질병, 폐렴 등 걸릴 수 있는 모든 병을 다 걸린 듯했고 주사와 약, 수액을 달고 살았다. 그럼에도 나의 노동은 계속되었기 때문에 아직 몸이 회복이 안 되었다. 부모님은 계속 새로운 병에 걸리는 나를 보며 "이제 아플 곳이 더 있니? 아파도 그렇게 다니는 게 회사고 사회란다."라고 하시는데, 위로도 조언도 안된다.... 아파도 회사를 다녀야 한다는 거 조언해주지 않아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아픈 나에겐 '잔소리 +1'일뿐이다.
그냥 고된 질병에 지쳐있는 딸을 위해 죽 한 그릇 혹은 '오늘은 좀 어떠니?'라는 말을 바란 것뿐이다. 가끔은 이것도 사치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프면 누구나 기대고 싶고 호전되질 않으니 위로받고 싶은 심리는 당연한 것이 아닌가? 회사에서 아픈 티 안 내고 꾸역꾸역 참아내고 쉬고 싶은 데 잔소리와 무관심은 정신력이 약해지는 날 마음을 아프게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부모님은 춥다며 방 불은 꺼지지 않게 해 주시고, 출근 전 차가 얼었다며 시동도 미리 켜주시는 츤데레 부모님이다. 하지만 정작 나에게 중요한 것은 어릴 적 열이 나면 이마를 쓸어주었던 따뜻한 손길과 다정한 말 한마디라는 것을 모르시는 것 같다. 방을 데워주고 얼어 있는 차를 데워주는 부모님의 사랑도 존중하고 사랑하고 감사하지만, 아플 때만큼은 이마를 쓸어주던 손길이 자꾸 생각이 난다.
성인이 되어 서로 낯간지러워 그럴까?
사실 이번 글은 복에 겨운 성인의 투정 섞인 글이다. 다 큰 직장인에게 아침에 차를 데워주고 보일러 신경 써주는 부모님(많으시겠지만) 주변엔 안 계신다. 그러나 일 년이 넘게 각종 질병에 시달려 온 나에겐 그것보단 나의 건강에 대한 부모님과의 대화가 필요하다. 공황, 폐렴, 알레르기, 비염 등 집에서 극복할 수 있는 일을 함께 상의해보고 싶지만, 특히 공황에 대해 이야기를 꺼려하시는 부모님 때문에 아플 때마다 더욱 멀어지는 기분이 든다. 오히려 신경 쓰지 않으려는 것 같기도 하다.
공황장애가 여러 연예인들, 주변 사람 등 현대인들이 흔히 겪고 있는 병이지만, 내 딸이 그렇다는 게 아직 납득이 안되어 단순한 감기가 걸리더라도 방에 안 들어오시는 걸까? 과거에 '컨디션이 안 좋으면 공황이 더 심해진다.'라는 말을 얼핏 했던 적이 있는데, 그걸 기억하고 계시는 건지...
이래저래 아픈 것을 친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친구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앞선 글들을 읽어보신 독자분들은 혜메다는 왜 친구가 없는지 아시겠지만, 못 보신 독자님들을 위해 요약하자면 혜메다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로 친구들과 갈등이 생겨 손절하게 되었다.(정도입니다.) 그래서 친구들에게도 아픔을 공유하기가 쉽지 않다.
스스로를 위로하고 건강을 챙기려고 노력하지만, 때로는 힘에 부칠 때 가족이나 친구의 위로가 필요한 사람인데 그런 지지자가 주변에 부족하다. 관심받는 걸 싫어하지만, 아플 때만큼은 누군가 나를 봐주고 '그렇게 아팠니, 지금은 좀 어떠니?'라는 말을 원하는 어린아이가 된다. 그래서 병원과 상담을 다니게 되었다. 어쩌면 부모님보다도 몸과 마음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갔다. 그리고 회사에서 비슷한 마음을 가진 동료들을 만나면서 아플 때 들여봐 줄 사람이 하나 둘 생겼다.
친구가 없으니 부모님께 의존했던 게 사실이다. 아직 정서적으로 독립하지 못했다는 것의 반증이라 미성숙한 스스로에 대한 반성을 글을 써내려 가면서 하고 있다.
하지만! 혼자 험난한 세상을 버텨내기에도 에너지가 부족한데 아프기까지 하면 누구라도 의존적이고 싶을 것이라 생각한다.(모든 사람은 아니겠지만.) 20대 후반인데, 아직 미성숙하다고, 아프다고 칭얼거린다고 감히 누가 혼낼 수 있을 것인가? 그 사람이 살아왔던 일생을 이해한다면 칭얼거리고 싶을 수도 아플수록 바라는 게 있을 수도 있는 법 아닌가? 나는 그렇다.
사랑이랑 재채기처럼 아픈 것도 숨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숨기고 싶어도 의지대로 되지 않는다. 아픈 이들에게 빡빡하게 굴지 말고 조금 너그러이 봐준다면 어떤 질병이 있든 금방 회복되지 않을까? 그렇게 믿는다.(나는 눈치 보며 회사를 다니는 중이다...) 어린아이 이마 쓸어주듯 마음을 내어주고, 우리 부모님이 얼어붙은 차를 녹여주 듯 행동을 보여준다면 몸이든, 마음이든 금방 낫지는 못해도 집에서 밥 한 숟갈 해먹을 힘은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나도 그렇다.
사실 부모님께서 얼어붙은 차만 녹여주셔도 밥 한 숟갈 뜨게 되니, 독립하여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투정 어린 글로 밥 한 숟갈 뜰 수 있게 위로를 전하고 싶다.
이직 이후 계속 폐렴으로 몇 달째 기침가래를 달고 회사를 다니는 중입니다. 치료가 쉽게 되지 않아요. 기침으로 눈치도 많이 보이고 실수 한 번에 '아프면 다예요?'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견뎌내고 있는 '나'자신이 중요하더라고요. 성인이 되고 여린 마음에 상처도 많이 받았지만 회복과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스트레스가 건강에 제일 나쁘더라고요.
2024년 쭈욱 하향곡선을 찍던 저의 인생 그래프는 브런치 글을 쓰면서 미미하지만 상향하고 있습니다. 솔직한 글을 쓰는 저의 글을 스쳐 지나간 모든 독자님들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감사하고 더욱 성장할 수 있는 작가가 되기를 다짐하면서 저처럼 힘든 사회에서 남몰래 힘들고 계실 독자님들을 응원합니다.
아픈 건 죄가 아닙니다. 아프면 마음이 여려지는 건 이상한 게 아니에요. 몸이든 마음이든 아프면 마음껏 아파합시다. 기댈 곳이 필요하다면 제가 위로의 글을 써 드리겠습니다. 아프다는 이유로 회사든 집이든 어떤 나쁜 말을 들었다면 지금 당장 화장실로 가서 깨끗하게 씻어내기로 해요.
아픔이 얼마나 오래가든 스스로 지치지만 않으면 언젠간 나아질 거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