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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구마씨 Apr 12. 2023

나는 <한부모가정>의 세대주가 아니다.

게으른 싱글맘 5년 차

정확히 별거 1년에 이혼 4년 차, 등본 상 자녀가 셋 줄줄이 늘어서 있는 멋진 세대주이지만 난 한부모가정의 세대주는 아니다.

사실 이혼이 확정되고 나서 몇 번을 도전했었다.

꽤 많은 서류를 다운로드하고 쓰다 포기하길 여러 번, 아니 엄마가 혼자 애 키우면 한부모지! 뭐가 이렇게 어려워어!라고 투정을 부려봤자 들어줄 이가 없다.


사람들은 가끔 물어본다. 애들이 셋이니까 나라에서 해주는 거도 많겠다고, 한부모가정 혜택이 많던데 너무 좋겠다고. 네네 그러시군요. 맘 속 깊숙이 숨겨뒀던 못돼 먹은 맘씨가 스멀스멀 올라와 입을 타고 나오려던 못돼 쳐 먹은 말을 한번 삼켜 넘긴다.


사실 들여다보자면, 세 자녀 혜택으로 받는 건 한 달에 21000원? 쯤. 전기요금 12000원, 가스요금 9000원인가 할인해 주는 게 전부다. 다둥이카드도 요즘엔 두 자녀부터 발급해 주고, 다른 기타 등등의 혜택들은 차를 사거나, 집을 사거나 해야 받을 수 있는 혜택이다.

난 면허가 없으니 차를 사고 세금 감면을 받을 일도 없고, 주차요금을 감면받을 일도 없다. <그럼 한부모가정 혜택을 받으면 되잖아>

자 앞으로 돌아가 읽고 오자, 난 한부모가정의 세대주가 아니다.


우선 우리나라의 한부모가정은 두 가지가 있는데 쉽게 <한부모가정>이라는 타이틀이 주어져 청약 우선순위, 학교에서 지원하는 교육비 지원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는 것이 있고, 또 한 가지는 현물성 지원을 해주는 것인데 자세히 말해 <저소득층 한부모가정>이다. 저소득층, 소득중위 45%였나 50%였나. 보통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한부모가정의 혜택들은 전부 이 범위에 있다.

사실 내 소득으로만 본다면 해당이 되는 범위이지만 이 한부모가정의 소득 계산법은 일반적인 그것과 다르다.


한부모가 일하고 취득하는 근로소득과 상대방이 지급하는 양육비가 물론 포함이고, 나라에서 만 9세 미만의 아이에게 지급하는 양육수당 10만 원도 포함, 혹시라도 친정이나 자녀의 친가에서 정기적으로 지원받는 금액이 있다면 그것도 포함이다. 쉽게 말해 현물성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상대가 양육비를 쌩까고 있거나 내가 돈을 안 벌어야 한다. 오로지 애만 키우고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 혹여라도 넉넉하신 친정부모님의 도움도 받으면 안 된다.


이혼 후 첫해에 이 저소득층 한부모가정에 도전했다가 5만 원인가가 오버되게 벌고 있어서 받을 수 없었다.

주중에 6시간 알바와 매일 가는 청소관리 알바, 네이버스토어서 조금씩 발생하는 소득, 양육비 등등 모두 합쳐보니 난 저소득층이 아니었다.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이제 숨통이 트이겠다 싶어 기대했는데 해당 범위에 속하지 않는다는 공무원씨의 말에 씁쓸했고 내가 저소득인 사람은 아니구나 싶어 안도했다.


게다가 내가 한부모가정 신청서를 여러 번 작성하다 포기한 이유, 상세한 소득 내용은 물론이고 내 급여통장, 양육비 통장까지 거래내역을 제출해야 한다. 물론 내 은행거래 기록을 열람해도 된다는 동의서도 함께 작성. 그리고 내가 한 달에 들어오는 총수익을 어떤 항목에 어떻게 나눠서 얼마를 쓰고 얼마를 남겨 저축을 하는지 뒤로 숨겨두는지 까지 다 적어야 한다. 식료품비, 교육비, 의류비, 생필품비, 경조사비 등등등 A4용지 한 장을 가득 채워야 한다.

사실 은행 거래 내역이야 신청하고 앉아서 멍 때리다 보면 발급이 되는 거니 별생각 없었는데, 저 지출 내역 쓰는 게 고역이었다. 없는 돈 쪼개가면서 쓰는 거도 숨 막히는데, 그걸 일일이 계산해 가면서 적어야 하니 쓰면서 숨줄이 툭툭 끊기는 답답함과 심난함에 몇 번을 작성하다 포기하고 처박아뒀다.

어차피 난 현물성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당장 청약이나 차를 살 것도 아니기 때문에 타이틀도 필요 없는 것 같아 나중에 필요할 때 하지 뭐 하고 말았는데, 막내까지 학교에 입학하고 나니 교육비 부담이 커졌다.

<서울런>이라는 제도를 알게 되어 신청해 볼까 하니 한부모가정 자격으로 지원이 된다고 한다. 급하게 서류를 꾸역꾸역 작성하고, (1년 치 급여 통장 정리는 무려 1시간이 걸렸다.) 주민센터의 공무원씨가 도와줘서 한참을 씨름하고 작성해 제출하고 한 달이 훌쩍 지났다.


난 아직 한부모가정의 세대주가 아니다.

빠름 빠름의 대한민국이 이렇게 느린 행정도 있구나 싶다. <그래요 탈탈 털어보세요, 그리고 먼지라도 나오면 나도 알려줘요. 나도 모르는 내 먼지 나도 구경 좀 해봅시다>

사실 이번주가 한부모가정 신청한 지 5주 차인데 아직도 완료가 안 됐다는 심드렁한 공무원 씨의 답변에 난 심술이 나 있다.

오늘의 깨달음, 삶은 미리미리 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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