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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원장 Apr 22. 2024

뜨거운 눈물

초석 다지기 

 어느 날 한 통의 전화를 받으면서 눈물을 흘려야 하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전화기 너머로 울먹이는 젊은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 울먹임에 마음이 아프다. 만나서 이야기라도 들어주고 싶은 마음으로 약속을 잡았다. 조용한 카페에 마주 앉았다. 나를 보자 눈시울부터 붉힌다. 나도 따라 눈시울이 붉어진다. 행동이 과격하고 활발한 세 돌 때쯤 된 남자아이 진성이 어머니다. 


세 돌이 다 되어 어린이집을 보냈는데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두 곳에서나 퇴소 조치를 받았단다. 아이가 한순간도 앉아있지를 않고 이리저리 뛰다가 다친 경험도 여러 번 있고 다른 친구들의 일상 활동에 방해가 되며 통제가 되지 않으니 단체 생활하는 어린이집에서는 힘이 들었을 것이란다. 어디선가 경력도 많고 어려운 아이들도 잘 보살펴 준다는 내 이야기를 듣고 용기 내어 전화했단다. 인정받으니 더 잘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우리는 두 손을 마주 잡았다. 서로 눈물을 흘리며 잘해보자 약속하고 입소를 허락했다. 진성이는 차분하고 사랑 많고 아이들 모두가 좋아하는 김 선생님 반에 배치해 주었다.


진성이 부모님은 두 분 모두 전문직에 종사하는 맞벌이였다. 느지막이 본 하나밖에 없는 귀한 아들이라 남에 손에 맡기는 어린이집의 생활은 생각지도 않았고 외가와 친가에서 조부모님이 때로는 진성이 집에 오셔서 때로는 진성이를 조부님 댁으로 보내서 돌봤단다. 그렇게 외가와 친가를 오가며 조 부모님들의 손에서 귀하게 자랐다. 그러다 보니 세 돌이 다되도록 스스로 해 본 것이 거의 없다. 습관적으로 눈을 뜨면 TV부터 틀게 되고 잠자기 전까지 TV가 꺼져 있을 때가 없었단다. 차량으로 이동 중일 때나, 밖에 나가면 유튜브의 동영상이 없으면 제대로 자리에 앉아있지 않아 매번 동영상을 보여주었단다. 


그런 영향 때문인지 지루함과 기다림을 못 참고, 하고 싶은 행동을 제재하면 뒤로 넘어져 뒹굴며 떼를 쓴다. 언어 표현이 안 되니 행동으로 의사 표현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감당이 어려운 조부모님이나 부모님은 다 들어주셨다. 그런 진성이가 어린이집이라는 단체 생활을 시작하면서 위험한 곳에 올라가고, 기다려 주거나 참을 줄도 모르고 하고 싶은 행동을 제재하면 머리를 벽이나 바닥에 찧거나 뒹굴며 자해까지 한다. 제재하는 선생님을 발로 차거나 때리는 일도 있다. 그간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고 그런 행동에 제재받아 본 경험이 없는 것이다. 그런 진성이를 어린이집에서는 안전상의 문제 때문에라도 퇴소하도록 했을 것이다. 그때 서야 부모님께서는 그 심각성을 알게 된 것이다. 그를 계기로 진성이 어머니도 직장을 그만두고 진성이의 육아에 전념하게 되었다. 


한주의 적응프로그램 동안은 부모님도 계시고 아슬아슬한 긴장의 연속이었지만 무탈이 지났다. 두 주가 조금 지난 어느 날 바깥 놀이를 나가려고 준비하는 중에 사달이 나고 말았다. 선생님이 아이들 신발을 신기며 바깥 놀이를 준비하고 있다. 내가 현관 밖에서 공동 현관문을 닫아 놓은 채로 신발을 신고 미리 나온 아이들을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고 다른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사이 진성이가 없어진 것이다. 공동 현관으로 택배 아저씨가 배달 물건을 까지고 잠시 다녀갔을 뿐이었다. 아뿔싸! 그때 따라 나간 건 아닌가 하고 생각하니 아찔하다. 그냥 앞만 보고 넓은 길이든 좁은 길이든 내달리는 아이였다. 


급히 부모님께 전화하고 혹시 집으로 갔는지 집에 가는 질 좀 찾아 달라 부탁했다. 선생님과 나는 큰 도로를 다른 방향으로 갈라져서 찾아 나섰다. 진성이의 어머니는 진성아~ 진성아~ 진성이를 부르며 온 동네가 떠나가도록 소리치며 찾고 있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울부짖음이다. 그 소리에 가슴이 메어온다. 만약 잘못되면 어쩌나 막막하다. 그때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온다. 진성이를 찾았단다. 키가 유난히 컸던 진성이가 엘리베이터의 스위치를 눌러 타고 위로 올라간 것이다. 10층에 사는 아주머니께서 혼자 올라오는 아이를 보고 어린이집 아이 같아 데리고 내려오셨단다. 우리 모두의 혼을 쏙 빼놓고 정작 본인은 아무렇지 않게 태연히 웃고 있다. 너무 놀라 진정되지 않던 진성이 어머니께서는 울며 아무 이야기도 듣지 않고 진성이를 데리고 가버리셨다.


밖에 나가려 들떠 있던 다른 아이들은 그런 긴박한 상황은 아랑곳하지 않고 밖에 나가자 조르고 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애써 침착하게 “김 선생님 아이들이 나간다. 들떠 있으니 우리같이 한 바퀴 짧게 산책하고 옵시다.”하고 말했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 저 못 나가요, 얘들아, 다 들어와” 소리치며 아이들의 신발을 급히 벗겨 데리고 교실로 들어간다. 순간 스스로 다스리기 어려울 만큼 화가 난다 “ 뭐라고? 김 선생”하고 같이 소리치며 따라 들어갔다. 옆에 다른 선생님과 아이들이 있는 것도 보이지 않았다. 순간의 화를 누르지 못하고 소리치며 교실로 따라 들어가보니 김 선생은 교실 벽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고 있다. 우는 선생님 모습을 보는 순간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말없이 선생님을 등 뒤에서 앉았다. 둘이서 한참을 그렇게 울었다. “선생님 미안해요. 어려운 친구를 선생님에게 맡게 해서, 담임이란 책임에 놀랐을 것도 알아요. 그러나 바깥 놀이 나간다고 신났던 아이들 생각해서 산책 잠시 하고 들어옵시다”. 김 선생님을 위로하고 다독여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고사리 같은 손을 잡고 산책로를 한 바퀴 돌며 힘든 마음을 추슬렀다. 


며칠 뒤 놀란 가슴이 진정되었는지 진성이가 다시 등원했다. 그 뒤로 진성이 어머니는 바깥 놀이나 체험 학습에는 꼭 빠지지 않고 참석해서 도와주신다. 진성이도 점차 표정도 밝아지며 상호 작용도 조금씩 이루어진다. 어머니께서는 어린이집에서 지도하는 대로 믿고 따라 주셨다. 우선 동영상은 더 이상 보여주지 말자. 또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하도록 지도하고 기다려 주자 약속했다. 어머니 혼자서 엄두도 못 내던 배변 훈련도 함께했다. 수저를 사용해서 스스로 밥도 먹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양말과 신발도 스스로 신을 수 있도록 기다려 주었다. 


기본적인 생활 습관을 반복적인 지도로 가르쳤다. 금방 변화가 보인다.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도 배우게 되었다. 자기 차례까지 기다릴 줄도 안다. 1년 여를 선생님과 어머니가 함께 손잡고 서로 신뢰하며 노력한 결과 우리 진성이는 스스로 잘하는 의젓한 아이로 잘 자라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유치원으로 가는 날이다. 우선 의젓하게 잘 자라준 진성이의 성장과 사고 없이 잘 졸업함에 감사했다. 더 넓은 세상에서 바르게 성장하길 바라는 간절한 같은 마음으로 담임선생님, 어머니, 그리고 나 우리 셋은 손을 마주 잡고 또 한 번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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