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관심은 상대를 불편하게 한다.
아기 머리 크기만 한 콜라비가 싱싱하고 단단한 게 아작아작 맛있어 보인다. 연말에 산지에서 올라왔다고 지인이 두 개를 가져왔는데 먹음직스럽다. 갑자기 아이들 생각이 난다. 싱싱할 때 먹였으면 좋겠다. 또 천혜향이 들어왔다. 어른 주먹만 한 크기에 껍질이 반질반질 윤기가 돌며 보들보들 얇은 것이 새콤달콤 과즙이 팡팡 터질 듯 군침이 돈다. 또 아이들 생각이 난다. 마침 완도에 주문했던 전복도 도착했다. 살아서 스멀스멀 움직인다. 신선도가 떨어지기 전에 먹였으면 좋겠다. 서울에 사는 아들과 며느리에게 먹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더구나 며늘아이가 며칠 전부터 몸살이란다. 며늘아이가 좋아하는 시래기 된장국도 끓이고 아들이 좋아하는 알 배추겉절이도 해서 잠시 전해 주고 와야겠다.
지난해 마지막 날 아이들에게 연락하니 며늘아이는 퇴근하고 집에 오면 9시가 넘을 것 같고 아들은 자격시험 준비로 퇴근 후 학원에 들렀다가 더 늦을 거란다. 그럼 집 앞에 잠시 놓고 오겠다고 말하니 연말인데 부모님도 편히 쉬셔야죠. 밤 운전으로 다녀가시면 마음이 편치 않다며 굳이 괜찮단다. 어릴 적부터 부모한테 많은 것을 받아보지 않아 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지 아들아이와 며늘아이가 부담스러워하는 느낌이다. 먹이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아이들이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으니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남편에게 이야기하니 “내일 새벽에 애들 잘 때 문 앞에 살짝 놓아두고 옵시다.” 잠시 망설였다. 그것도 아이들 부담 주는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먹이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저녁에 배추겉절이에 말려둔 가지도 물에 불려 들기름에 조물조물 볶았다. 소고기는 무를 넣고 푹푹 삶아 손으로 잘게 찢었다 얼려놓은 무청 시래기도 꺼내어 삶아서 된장과 갖은양념으로 찢어놓은 고기와 조물조물 함께 무쳐 고기 삶은 육수에 쏟아 넣고 한소끔 푹 끓였다. 시골 언니 집에서 보내온 서리태와 고춧가루도 챙겼다 더 줄 것이 없나 찾아보니 크리스마스이브에 샐프 산타에게 받은 발목이 길고 포근한 겨울 양말이 열 켤레나 된다. 며늘아기가 좋아할 색상으로 다섯 켤레를 골라 산타 할아버지가 그려진 예쁜 포장지로 포장도 해 놓았다. 매번 보면 젊은 아이들 겨울에도 발목 짧은 양말을 신고 다니니 추워 보인다. 올 겨우 내내 따뜻하게 신고 감기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들도 새해 아침 출근하지 않으니 일찍 일어나 밥 해 먹을 일은 없을 테니 조금 이른 아침밥을 해 먹고 인천에서 서울로 출발했다. 차 속에서 완전 범죄를 꾸몄다. 아침부터 엄마 아빠가 둘이 다녀갔다면 마음의 부담이 더 클 것 같다. ‘아빠가 서울에 볼일이 있어 반찬 몇 가지 문 앞에 놓고 가셨으니 맛나게 먹으렴’ 보낼 문자도 생각해 두며 아이들의 반응에 약간의 걱정과 약간의 설렘으로 아파트에 도착했다. 공동 현관문 앞에서 방법을 찾으며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마치 어르신 한 분이 아침 운동을 다녀오는지 운동복 차림으로 들어가신다. “실례합니다” 하고는 같이 따라 들어갔다. 공동현관까지 무사통과다. 순조롭게 통과했으니 성공을 확신하며 가뿐한 마음으로 엘리베이터를 탔다. 14층 아이들 집 앞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문이 열렸다. 순간 우리는 얼음이 되었다. 문 앞에는 두 젊은이도 얼음이 된 채 서 있다. 우리 아이들이다. 서로 마주 보고 선 네 사람은 잠시 할 말을 잊었다.
”얘들아! 왜 벌써 일어나서 어디가 “ 벌써 일어나서 밖에 나오는 아이들이 잘 못 한 것이다. 우리의 계획을 망쳐놨으니 ”어쩐 일이세요? 연락도 없이 “ 당황한 건 그쪽 두 사람도 마찬가지다. 주도면밀했던 작전이 성공 목전에서 실패다. 새해 첫날부터 늦잠 잘 수 없어 일찍 일어나 아침 해 먹고 신년 계획 세우러 카페에 가는 길이란다. 오신 김에 같이 차 마시고 맛난 점심도 사 먹고 가라 한다. 아침 일찍 나가는 아이들은 분명 집 정리도 제대로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모습 보이는 것이 좋을 리 없을 것이다. 가져간 짐만 손에 들려주고 우리는 점심 약속도 있었고 아이들의 계획대로 보내도록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특수 작전의 실패로 잠시라도 아이들을 볼 수 있었기에 불행 중 다행이었다. 잠시나마 반가운 시간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는 부담이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들만의 계획과 생활의 리듬이 있을 텐데 예고 없이 갑자기 들이닥치거나 했을 경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아들아이 하는 말은 아들인 본인은 덜 하지만 며느리는 부모님이 집 앞까지 왔다가 들어오지도 못하고 물건만 놓고 가는 것이 얼마나 큰 부담이겠냐 굉장히 송구한 마음일 것이다. 맞벌이로 집 정리가 제대로 안 된 날도 사실 많다. 그런데 예고 없는 방문에 정리 안 된 집을 보이는 것도 민망할 것이란다. 보고 싶고 먹이고 싶은 마음이 자식에 대한 사랑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받는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면서까지는 아니라 생각된다. 관심과 사랑에도 절제가 필요하다. 사랑과 관심은 받는 사람이 부담을 느끼지 않을 적당한 정도여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맛난 음식이 생기면 또 좋은 곳을 보면 아이들 먹이고 싶고, 아이들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치민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절제가 그리 쉽지만은 않다. 오늘도 동글동글 귀여운 귤이 새콤달콤 맛나다. 또 아이들 먹이고 싶다는 생각이 슬며시 고개를 든다. 속으로 빙긋 웃으며 절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