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아는 9월부터 중등반을 맡기로 했다. 영준 선생님과 과학 수업을 나누어서 진행하기로 했지만 아직 더 궁금한 것들이 많았다. 민아는 여름이 가기 전 검정고시반 선생님들을 교무실에서 만나면 이것저것 물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매주 간식 준비를 같이 하게 되는 선생님들에게 검정고시 준비는 어떻게 하는지, 분위기는 어떤지 물어봤다.
이번주는 민아가 수업이 없는 날 따로 들러서 간식 준비를 돕기로 했다. 보통은 수업이 있는 날에 간식 당번을 했었는데 사람이 모자라는 날이 생겨서 민아가 지원한 것이었다. 일주일에 두 번 한국대 캠퍼스에 오게 되니 학교 건물이 익숙하게 느껴지고 한층 더 정이 드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 면접 때문에 방문했을 때는 참 낯설게 느껴졌는데.
“와 안녕하세요. 오늘은 방이 북적북적하네요!”
교무실로 쓰는 방에 도착하니 오늘따라 사람이 많았다. 보통 수업이 끝났을 때나 다음 수업 전에 일찍 오면 교무실에 들르는 선생님들이 많았다. 그런데 오늘은 간식 준비 시간과 겹치면서 유난히 사람이 많게 느껴졌다.
수업을 마치고 온 사라 선생님과 영준 선생님이 책장에 자료를 정리하고 있었다. 오늘 같이 간식 당번을 하게 된 찬영 선생님도 조금 전 도착했다고 했다. 다솜 선생님도 다음 수업 준비를 하러 미리 왔다고 했다. 민아는 몇몇 선생님과는 많이 이야기를 못 해본 게 아쉬웠는데 오늘 많이 모인 것 같아 반가웠다. 그리고 사람들이 모인 김에 중등반을 처음 맡게 된 후 고민하던 것들을 물어봐야겠다 싶었다.
선생님들은 민아에게 각자 팁을 알려 주면서 격려해 주었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준비할 때 참고하면 좋은 문제집이나 사이트도 알게 되었다. 다솜 선생님도 수업을 가기 전까지 중등반 학생들의 분위기를 알려주다가 갔다. 다들 숙제를 열심히 해오는 편이지만 숙제 양이 많거나 시험을 보면 부담스러워하셔서 잘 달래야 한다고 했다.
“얘기하다 보니까 시간이 금방 갔네요. 원래 저 다음 주 수업 준비할 거 있어서 하고 가려고 했거든요. 혼자 있나 했는데 수다 좀 떨면서 하면 되겠다. 아 민아 선생님, 간식 준비 도울 거 있으면 알려주세요.”
노트북 앞에 앉은 사라 선생님이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저도 가끔 교무실에서 할 일 하다가 가거든요. 오늘은 사람이 많아서 아지트 같은 느낌이네요.”
영준 선생님도 거들었다.
간식 준비를 하면서도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민아의 걱정도 많이 해소되었다.
“그런데 셰어 하우스 준비하고 있다고 하신 건 잘 되어 가세요?”
민아가 재료를 다듬으면서 찬영에게 물어봤다.
“네. 가끔 선생님들이 물어보셨는데 사실 다음 달에 진짜 오픈이에요.”
“셰어 하우스면 대학생들이 많이 사나요?”
“아 보통 대학생이나 2030 젊은 사람들이 많이 온다고는 하더라고요. 뭐 원룸텔, 고시텔, 셰어하우스 이름은 다양하게 부르기도 하고요. 그런데 저는 나이에 제한을 두지는 않으려고요. 그리고 좀 밝고 아늑하게 만들고 싶어요. 보통 어둡고 좁다는 이미지도 있는 것 같아요. 저희는 주방이랑 거실은 공용으로 쓰고 방이 하나씩 있는 구조거든요. 저희 이렇게 수다 떨면서 만나듯이 편하게 집처럼 지내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요.”
“와 목표가 있으셨네요. 아늑한 집 같은 공간이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민아는 찬영 선생님의 계획을 처음 들었다. 셰어 하우스 이야기가 나오자 찬영 선생님은 신나게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사람들에게 아늑한 공간을 만들어 주고 싶다는 말에 찬영의 포부와 기대가 느껴졌다.
“저도 찬영 선생님 이야기를 자세히 듣는 건 처음이네요. 오픈하면 축하하러 놀러 갈게요.”
사라 선생님이 말했다. 다들 좋은 생각이라며 거들었다.
“화환 같은 것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니면 화분이라도..”
영준 선생님이 말했다.
“아 선물은 진짜 괜찮아요. 오픈하면 이야기할 테니 다들 놀러 오세요.”
찬영 선생님이 웃으며 이야기했다.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 보니 이야기가 무르익었다. 자연스럽게 각자 지금 준비하고 있는 일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사라 선생님, 대학원 다니는 건 어때요? 저는 간호 전공인데 대부분 졸업하기도 전에 취직을 해서 대학원은 어떤지 궁금했어요.”
민아가 물어봤다. 주위에 대학원생이 거의 없어서 내심 궁금했던 차였다.
“음.. 읽어야 할 것도 많고 글도 많이 쓰게 되고 그런 것 같아요. 그런 게 좋아서 간 거긴 한데 힘들 때도 있고요.. 저는 대학원 수업을 거의 다 들어가거든요. 이제 졸업 논문 준비를 해야 해요. 그런데 그것보다도 졸업하면 취업을 할지 공부를 더 할지도 고민이에요. 박사는 유학을 가는 사람들도 있고 해서.. 아직 못 정했어요.”
이야기를 하다가 말끝을 흐리는 사라였다.
“아 그렇구나.. 진짜 고민되시겠어요. 대학원을 가도 딱 정해진 건 아니네요. 저는 전공 자체가 병원 간호사로 취업을 하는 게 대부분 선택하는 길이긴 하거든요. 그런데 보건교사 준비를 하고 싶기도 해서 고민이에요. 저도 나중에 기회가 되면 대학원을 가고 싶기도 한데 잘 될지 모르겠어요.”
민아는 학교 친구들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했던 고민을 털어놓았다.
“저는 성격이 단순해서 그런가. 졸업하면 전공을 좀 살려서 회사 취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대학원을 가서 공부를 더 하는 건 지금으로서는 하고 싶지 않아서요. 그런데 회사도 많고.. 요새 취업 준비도 장난이 아니긴 해서 4학년 되기가 무섭긴 해요.”
영준의 속마음도 처음 듣는 민아였다.
“저희가 사실 장래희망 이야기를 하면 아주 어릴 때 하는 얘기 같잖아요. 그런데 20대가 되고 나서도 장래희망은 필요한 것 같아요. 어쩌면 더 나이가 들어도 그럴 것 같고요. 중간에 바뀔 수도 있겠지만 그런 꿈이 있어야 뭘 열심히 하고 싶어 지잖아요.”
가만히 듣고 있던 사라가 말했다. 민아는 사라 선생님의 이야기가 마음 깊이 와닿았다.
“맞아요 그런 거 보면 참 늘솔학교 오시는 학생분들도 대단하세요. 나이가 있으셔도 포기하지 않고 몇 년씩 다니시기도 하잖아요. 검정고시에 계속 도전하시는 것도 그렇고요.”
민아가 말했다.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고등 검정고시까지 마친 다음에 사이버 대학으로 대학 졸업 하신 분도 있었어요. 다들 대단하시죠. 저도 어르신들 보면 불평하던 게 부끄럽기도 하고 열심히 하시는 모습에 힘도 얻고 해요. 아.. 근데 시간이. 저희 이제 간식 가지고 가야 될 것 같네요. 오늘 얘기해서 좋았어요 다들.”
찬영이 말했다. 간식을 같이 챙기면서 민아가 이야기했다.
“저희도 꿈꾸는 교사들이네요. 저희도 같이 힘내요.”
“훈훈하고 좋네요~ 우리 다음에 또 이렇게 이야기하는 시간 가져요.”
사라 선생님이 배웅해 주며 이야기했다.
비슷한 나이대의 선생님들과 꿈 이야기를 하니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다들 고민을 하면서 사는구나. 민아는 막상 말로 털어놓고 나니 미래에 대한 불안한 마음이 조금은 줄어드는 느낌이었다. 몇 년 후에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기대가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