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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캘리그래피 수업 - (1)

by Adela

점자는 한글을 배우면서 여름 동안 동시에 복지관에서 캘리그래피 수업을 들었다. 낮 동안 소일거리 삼아 가다 보니 한글 쓰기 연습이 되었다. 종이에 붓으로 기역, 니은 하나하나 쓰다 보면 집중이 잘 되었다. 마음이 평안해지는 느낌도 들었다.


“자. 힘을 이렇게 쭉. 균일허게 해야 해요. 시범을 보여 드릴 테니까 한 번 써보세요. 결국은 가로. 세로. 이렇게 선 긋기를 잘해야 해요. 선 긋기가 이어져서 이렇게 기역이 되고. 니은이 되죠.”


나이가 지긋한 남자 선생님이 캘리그래피 수업을 맡아 주셨다. 한복은 안 입으시지만 어딘지 옛날 선비 느낌도 나는 분이었다. 그래서인지 어린 학생에게 하듯 엄하게 지적을 하기도 하셨다. 하지만 점자는 이 캘리그래피 수업 시간이 좋았다. 언젠가는 선생님처럼 멋들어진 글씨를 쓸 수 있을까.


선생님은 한 명 한 명의 옆에 와서 시범을 보여주셨다. 보여 주시는 대로 강의 시간 내내 따라 쓰고 집에 온다. 붓에 너무 세게 힘을 주면 안 된다. 그렇다고 너무 약하게 해도 글씨 굵기가 달라진다. 자세를 바르게 하고 힘을 균일하게 주면서 한 글자 한 글자 집중을 해야 했다. 명상을 하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어느 날 한글 교실 수업이 끝나고 민아가 점자에게 다가왔다.


“어머님! 요즘에도 캘리그래피 열심히 하고 계세요?”


“네 매주 가고 있지요. 조금 나아진 것 같나요? 저는 거의 따라 그리는 수준이긴 해요. 호호.”


점자는 핸드폰 사진첩을 열어 최근에 작업했던 것들을 보여주었다. 처음에는 보여주기 부끄러운 낙서 수준이었다. 틀리게 쓰는 글씨도 많았다. 아직도 헷갈리는 한글 단어들도 많지만 한글 교실 수업을 들을수록 캘리그래피 수업 따라가기가 수월해졌다.


“와 점점 발전하시는 게 눈에 보여요! 그래서 말인데요. 혹시 한글 교실 시간에 어머님이 캘리그래피를 한 번씩 알려주시는 건 어때요?”


내가 수업을 맡아보라니. 점자는 민아 선생님의 파격적인 제안에 놀랐다.


“아이고 저도 이제 막 한글을 배우는데.. 누가 누굴 가르치겠어요.”


“아니에요 조금이라도 더 먼저 배우셨으니 캘리그래피 선배이시잖아요. 재료 준비랑 수업 진행은 제가 적극 도와드릴게요. 저희 50분 수업 중에 30분 정도만 가볍게 한 번 해봐요. 네?”


민아 선생님은 눈을 반짝이며 졸랐다. 점자는 민아 선생님이 계속 부탁하자 마음이 약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휴.. 선생님도 참. 그럼 일단 정말 정말 기초만 알려드릴게요. 선긋기 하는 거부터 해야 되거든요. 준비물도 종이랑 붓펜만 있으면 되긴 해요.”


환호성을 지르는 민아 선생님을 보며 점자도 미소 지었다. 내가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을까. 생각도 못 했던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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