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를 줄이면 불안도 줄어든다

by 동그라미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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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를 줄이면 불안도 줄어든다


대한민국은 ‘빨리빨리’라는 거대한 엔진으로 움직이는 거대한 기계와 같다. 우리는 아주 어릴 적부터 남들보다 한 발 앞서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 속에 전속력으로 달리는 법을 배운다.



예전에 고속도로 운전을 자주 하면서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는 것만 생각하고 달릴 때가 많았다. 하지만 고속도로를 시속 120km로 질주하다 보면 시야는 좁아지고, 시선은 정면의 좁은 아스팔트 위에 고정된다. 핸들을 잡은 손에는 땀이 맺히고, 신경은 사고를 피하기 위한 긴장 상태로 곤두선다. 이때 우리 뇌는 풍경을 감상하는 대신 오직 ‘생존’만을 선택한다. 속도를 선택한 긴장은 결국 불안을 유발한다. 사실 그렇게 목적지에 조금 빨리 도착해도 결국 피로와 스트레스는 누적되곤 한다.

이제는 무엇을 하든 남들과 경쟁하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경쟁하는 순간, 나 자신의 속도를 잃어버리고 질주를 시작하다가 불안과 스트레스는 더 커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불안의 상당수는 바로 이 ‘과도한 속도’에서 기인한다. 빨리 성공하기를 바라고, 빨리 돈을 벌기를 바라고, 빨리 인기를 얻기를 바라며 질주한다.

하지만 이러한 목표를 향해 속도를 높일수록 우리의 시야는 좁아지는 '터널 시야'에 갇히게 된다. 주변의 작은 변화조차 위협으로 느껴지고, 목적지에 빨리 도달해야 한다는 강박은 우리를 만성적인 불안의 안갯속에 가둔다.



우리는 흔히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에서 토끼가 자만했기에 졌다고 배운다. 하지만 심리학적으로 보면 토끼는 속도에 취해 방향과 목적을 상실한, 전형적인 ‘불안한 질주자’의 모습을 띠고 있다. 토끼는 경쟁자를 압도하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렸으나, 너무 빨리 달린 탓에 에너지가 고갈되었고 목적지보다는 ‘상대와의 거리’에만 집중하다 결국 페이스를 잃었다. 반면, 거북이는 자신의 속도가 느리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치지 않는 보폭’을 선택했다. 거북이에게는 주변의 풀꽃과 바람의 결을 느낄 수 있는 여유가 있었고, 그 여유가 끝까지 갈 수 있는 심리적 에너지가 되었다.

거북이가 이긴 진짜 이유는 그가 빨라서가 아니라, 자신의 속도를 스스로 통제하며 목적지까지 가는 ‘과정’을 견뎌냈기 때문이다. 불안은 속도에서 오지만, 확신은 나만의 보폭을 유지할 때 찾아온다.



속도를 늦추는 것은 결코 게으름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해상도를 높이는 작업’이다. 주행 속도를 줄이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입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전속력으로 질주할 때는 오직 앞차의 브레이크등만 보이지만, 적정 속도로 달리면 길가의 풍경과 동행자의 표정,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의 상태’가 보인다.

시야가 넓어지면 불안은 자연스럽게 작아진다. 전속력으로 달릴 때는 보이지 않던 해결책들이 속도를 줄이고 주변을 돌아볼 때 불쑥 나타나기도 한다. "이 길이 막히면 옆길로 가면 되지"라는 유연함은 오직 멈추거나 천천히 갈 수 있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방향만 잃지 않는다면, 조금 늦게 도착하는 것은 결코 실패가 아니다. 오히려 그만큼 더 많은 풍경을 담아 온 풍요로운 여행이 된다.



이제 불안의 관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루 딱 30분 만이라도 ‘인생의 속도 제한 구역’을 설정해 보면 도움이 된다. 이 시간은 생산성을 위한 시간이 아니라, 오직 당신의 평온을 위한 시간이어야 한다. 휴대폰을 멀리 치우고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거나, 조용한 음악을 들으며 천천히 산책하며 ‘30분의 쉼표’를 찍으면서, 천천히 커피의 향기를 즐기거나 조용히 산책하며 ‘지금, 여기’의 속도로 내려오는 연습을 해보라.

목적지 없이 평소 걸음의 절반 속도로 산책하며 계절에 따라 변하는 나뭇잎의 색깔을 응시하다 보면 그때 비로소 불안은 서서히 자리를 내어줄 것이다.



우리는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태어난 경주마가 아니라, 그곳으로 향하는 삶의 매 순간을 누리는 여행자로 살 때 불안보다는 만족이 커질 것이다. 속도를 줄인다고 해서 세상이 당신을 버리고 가지 않는다. 오히려 속도를 줄일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이라는 거대한 파도의 결을 느끼며 그 위에서 우아하게 균형을 잡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거북이가 끝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느려서가 아니라, 자신의 속도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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