얻은 것을 누릴 줄도 알아야 불안도 이긴다
미국의 수필가 로건 피어솔 스미스는 인생의 목표를 아주 명쾌하게 두 가지로 정의했다. 첫째는 자기가 바라던 것을 손에 넣는 것이고, 둘째는 그것을 누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 문장 끝에 뼈아픈 진실 한 줄을 덧붙였다.
“오직 현명한 사람만이 두 번째 목표를 달성한다.” 우리는 대개 첫 번째 목표인 ‘얻는 것’에만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느라, 정작 그것을 ‘누리는’ 법은 망각한 채 살아간다. 이 지독한 불균형이 우리를 만성적인 불안의 굴레로 밀어 넣는 주범이라는 사실이다.
인생을 하나의 긴 운전이라고 가정해 보면, 어떤 운전자에게 운전의 유일한 목적은 ‘도착’ 그 자체다. 그의 시선은 도로 주변의 눈부신 풍경이나 차 안에서 흐르는 음악, 곁에 앉은 소중한 사람과의 대화 대신 오직 내비게이션의 도착 예정 시각에만 고정되어 있다. 앞차를 앞지르고 신호등 앞에서 초조해하는 그에게 도로는 즐거움의 공간이 아니라, 빨리 해치워야 할 ‘장애물’ 일뿐이다.
이런 성취 지향적 불안에 빠진 이는 목적지에 닿아도 잠시의 안도감만 느낄 뿐, 곧바로 다음 목적지를 설정하고 다시 초조한 레이스를 시작한다. 반대로 목적지가 아예 없는 운전은 어떨까? 그것은 엔진이 꺼진 채 길 위에 멈춰 선 자동차와 같다. 방향성이 없는 삶은 무기력의 늪에 빠지기 쉽다.
결국 우리가 익혀야 할 삶의 기술은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되, 운전대를 잡은 현재를 즐기는’ 균형 감각에 있다.
우리는 흔히 특정 목표만 달성하면 모든 불안이 사라지고 영원히 행복해질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곤 한다. “이 프로젝트만 끝나면”, “내 집 마련만 하면”, “아이만 대학에 보내면” 평온이 찾아올 거라 믿지만, 막상 그 지점에 도착하면 그런 사람은 늘 새로운 결핍과 불안을 찾아낸다.
불안은 ‘아직 얻지 못한 것’과 ‘이미 얻은 것’ 사이의 간극에서 피어나기 때문이다. ‘얻는 삶’에만 매몰된 사람은 오늘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저 먼 미래의 성취를 위한 ‘희생 제물’로 여긴다.
그런 사람은 소중한 관계도, 자녀들이 자라는 과정에서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순간도, 심지어 자신의 건강도 희생해 가면서 목표를 향해 달리지만 결국 그 목표에 도달해도 그것을 누리지 못하고 허무에 빠지거나, 아니면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여 또 질주를 시작한다.
하지만 ‘누리는 삶’을 아는 사람은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여유를 가진다. 그들에게 성공은 행복의 조건이 아니라, 행복한 여정 끝에 따라오는 선물일 뿐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하루에 8시간은 자신이 설정한 목표를 향해 최선을 다할 수 있고, 그렇게 해야 한다. 하지만 때로는 커피 한잔을 음미할 여유도, 날이 좋으면 점심시간에라도 산책하며 자연이 선사하는 즐거움을 만끽할 때 오히려 신선한 생동감과 더 목표를 향해 달릴 힘을 얻을 수도 있다.
불안을 완전히 제거하려 애쓸 필요는 없다. 적당한 불안은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추진력이기 때문이다. 다만, 배가 뒤집히지 않으려면 그만큼의 평형수가 필요하듯, 우리에겐 불안이라는 엔진을 조절할 ‘누림’이라는 브레이크가 필요하다.
갑작스러운 돌발 상황에서 발휘되는 초인적인 집중력이 ‘얻어야 할 결과’에 집중하게 한다면, 문제가 해결된 직후 스스로를 다독이며 음미하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누릴 줄 알아야 한다. 이 두 기어가 적절히 맞물려 돌아갈 때, 우리는 비로소 불안에 잡아먹히지 않는 노련한 항해자가 된다.
지금 나를 흔드는 불안은 어딘가로 나아가고 싶다는 건강한 욕구의 증거다. 당신은 이미 많은 것을 얻은, 그리고 여전히 나아가고 있는 항해자다.
나는 목적지를 향해 가속 페달을 밟으면서도, 가끔은 창문을 내리고 뺨을 스치는 바람의 감촉을 느끼거나, 좋은 풍경을 만나면 차를 옆으로 세우고 사진을 찍기도 한다. 그럴 때면 아내가 “당신은 그렇게 여유가 있어서 좋겠다.”라고 푸념인지, 부러움인지 모를 이야기를 한다.
우리가 그토록 원해서 이미 손에 넣은 소중한 것들—건강, 가족, 작지만 확실한 취향들—을 충분히 누리는 것 또한 ‘성취’ 못지않게 중요한 인생의 과업이다.
잘 도착하는 것만큼이나, 잘 가는 것이 불안의 파도를 이기고 원하던 항구에 도착하는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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