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박현희 선수 오늘 좀 저조한데요 ~
박현희씨
저는 요즘 상실의 시기를 견뎌내고 있어요. 이제는 견뎌내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이겨내고 있다는 게 더 맞는 말인 것 같아요. 저는 모든 종류의 상실에 취약한 사람이에요. 어디선가 봤는데 무언가에 대한 상실을 자신을 상실한 것으로 착각해서 힘든 거라는 말이 있더라고요. 예를들면 금메달리스트가 금메달이라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 목표를 잃은 게 아닌 자신을 상실한 것으로 생각할 때도 있는 것처럼. 오랜 친구를 떠나보내면 그 친구와 함께했던 자신을 잃는다고 생각하는 것처럼요. 그래서 저는 그런 연결을 안 하려고 하고 있어요! 그 안에서 충분히 행복했다고 생각하고 나쁜 건 다 잊으려고 해요. 성취만 기억하기! 그 안에 있던 나는 어디론가 가지 않는다는 것도 기억하기.
이 시기를 이겨내면서 타인에서 나로 집중의 지점을 옮겨오니까 해야 하는 것과 집중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는 걸 알았어요. 타인을 보느라 보지 못했던 나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바라보고 있어요. 그래서 하루하루가 너무 짧고 시간이 빨리 가는 시기를 보내고 있네요.
현재는 웹 개발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동대문에서 원단 관련해서 일했었어요. 그러던 중에 개발을 잘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번 시작하게 되었는데 꽤 재밌다고 생각해서 본격적으로 개발을 배우러 부트캠프를 등록해버렸어요. 개발자로 취업하려고 시작했다기보다는 그냥 해볼까 하는 마음이었고 부트캠프를 종료하고 나서는 기왕 시작한 거 개발자를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이어졌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은 개발자입니다. 이 직업이 제가 살아가는데 목적지인 직업은 아닐 거예요. 저는 지금 어디론가 가고 있는 기차를 탔을 뿐이거든요.
저는 자기반성이 잦은 스타일이라서 자책감에 많이 시달리곤 해요. 그럴 때마다 제가 늘 하는 루틴이 있습니다. 바로 스포츠 중계처럼 해설자 더빙을 넣는 거예요.
Yam: 네?
현희님: ㅋㅋㅋㅋㅋㅋㅋ
스포츠 중계 같은 거 보면 해설자들이 ‘아 오늘 00 선수 오늘 좀 저조한데요 ~ 최근 슬럼프 때문에 힘들겠지만 이겨낼 거라고 믿습니다.’와 같은 식의 중계를 하잖아요. 이런 해설을 내 인생에 깐다고 생각하면 너무너무 행복해져요. 이거 진짜 좋은 방법이에요.
“아, 박현희 선수 오늘 좀 저조한데요 ~
저 선수 원래 역량이 뛰어난 선수이기 때문에 금방 이겨낼거라고 믿습니다.”
또 하나는 자꾸 떠오르는 나쁜 기억을 상자에 차곡차곡 담거나 절벽에 밀어낸다는 마음으로 덜어내 버리는 거예요. 옛날에 책인가 어디선가 본 방법인데 그때부터 따라 하고 있어요. 나레이션은 기분이 저조한 날이면 써먹는 방법입니다. 그러면서 진짜 제가 스포츠 스타가 된 것처럼 오늘의 잘한 것, 오늘 못한 것을 생각하면서 내일은 더 잘해야지 하는 것 같아요.
타인이 이해할 수 없는 말이나 행동을 하면 이에 대해 이해하려고 하다 보니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져요. 물론 애정하거나 관심 있는 상대에 한해서이긴 하지만요.
그 생각이 길어지다 보니까 고민도 많아지는 것 같아요. 그냥 제가 잔바람에 길게 흔들리는 사람인 걸까요. 아닌가..? 뭐 생각이 깊어지면 끝도 없이 깊어지는 게 고치고 싶은 습관이라면 습관이랄까요.
잡생각이 많은 스타일. 잡생각 안에서 *하루 총량 코인을 다 써버리는 것 같아요.
*하루 총량 코인 : 내향인들은 하루를 시작할 때 하루 에너지의 양을 갖고 시작하는데 해당 에너지를 코인으로 비유한다.
항상 다른데 그 낙을 즐길 때 음악이 항상 있었던 것 같아요. 저랑 여행을 가거나 일상에 함께하는 사람들은 항상 다 저한테 플레이리스트 유튜브 왜 안 하냐고 물어봐요.(웃음)
Yam: 요즘 자주 듣는 노래 추천해주실 수 있나요?
현희님: 저는 '이럴땐 이런 노래!' 하는 저만의 기준이 있어서 매일 매 순간마다 듣는 노래나 장르가 다른데 그래도 요즘 자주 듣는 노래를 추천해드리자면
ScHoolboy Q - Floating ft. 21 Savage
Yam: 이 노래를 자주 듣는 이유는요?
이 노래를 자주 들으면 노동력이 올라가는 것 같기도 해서 듣고 있어요. 근데 사실 저는 상황별로 노래를 들어서 일할 때는 외국 힙합 장르, 출퇴근할 때는 출퇴근용 노래 이렇게 다 정해져 있는 편인 것 같아요. 저는 *샹송도 듣고 피아니스트 클래식 음악도 듣고 장르를 진짜 다양하게 들어요.
*프랑스 대중음악의 큰 축을 이루는 노래 장르입니다.
Yam: 내일 월요일이니까 출퇴근용으로 노래 추천해주실 수 있나요?
Post Malone - my self
노래를 들으면 그때 그 상황이 너무 생각나요. 이건 완전 사담인데 예전에 만났던 친구를 카페에서 우연히 마주쳤었어요. 그다음 날 출근할 때 애플 뮤직에서 에디터 추천으로 노래를 돌려서 듣고 있었어요. 너무 괜찮은 노래가 들려서 가사를 찾아봤더니 카페에서 우연히 전 여자친구를 만났는데 어쩌고 뭐 이런 가사인 거예요.(웃음) 저 저격하는 건가 했어요..
joshua bassett - doppelgänger
I saw someone who looked like you at our favorite coffee shop …..
최근에 느낀건데 전 음악 취향 비슷한 사람이 이상형이더라구요. 모든 관계에 있어서요! 그 정도로 음악을 애정하는 것 같아요. 내 일상의 단조로움을 반짝이게 해주는 것 같달까요. 그리고 제가 굳이 말하자면 비혼주의자거든요. 그런 제가 이 노래대로 산다면 연애는 결혼이든 오케이다 하는 노래가 있어요.
Bruno Major - Nothing
But there's nothing like doing nothing with you Dumb conversations we lose track of time ……
제가 비긴 어게인이라는 음악 영화를 되게 좋아했어요. 틀어놓고 딴짓하기도 하면서 되게 여러 번 봤었는데 이 영화에서 주인공 아저씨가 주인공 여자한테 난 이래서 음악이 좋다면서 음악에 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어요. 음악이 따분한 일상 순간까지도 의미를 가지게 해준다고, 평범함도 진주처럼 빛나게 해준다고 했던 대사가 너무 공감됐어요. 저한테도 음악이 그런 존재인 것 같아요.
Yam: 꽤 낭만적인 사람이시네요?
현희님: 어, 이런 게 낭만이라면 그럼 저 낭만적인 사람인가봐요 !
아 그리고 제가 예전에 체코 여행 갔을 때 들었던 플레이리스트가 아직도 있거든요. 가끔 듣는데 체코 여행한 기분이 되살아나는 것 같아서 너무 좋아요. 그 당시의 플레이리스트로 인해 그 시간이 생각나요.
‘이럴 때였나 보다.’ 하고 생각해요. 때가 있다고 생각하는 편인 것 같아요. ‘내가 배움을 얻어야 했을 때인가 보다.’, 일 때문에 힘들 때도 ‘아, 내가 내 부족함을 깨달을 때였나 보다.’ 라고 생각하면서 어려움에 매몰되려고 하지 않는 편인 것 같아요. 내가 좀 더 나이스하게 이 시기를 극복하려고 하는 느낌이랄까요. 어떤 사람들은 힘들면 힘듦을 술로 이겨내기도 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저만의 방식이 있는 거 같아요. 저는 일단 제 생각과 마음을 정리해요. 그 후에 방법을 찾는 거죠. 일기를 쓰거나 재밌는 컨텐츠를 보거나 운동을 하거나 심리적으로 너무 힘들다면 상담을 예약해요. 거기에, 그 감정에 멈춰있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매몰 되기 쉽거든요. 다음에 비슷한 어려움이 있을 때 이런 힘듦을 안 겪을려면 제가 발전해야 되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인생을 가볍게 사는 법을 모르는 것 같아요. 음, 그래서 내가 배워야되는 점은 인생을 가볍게 생각하기?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난이도로는 난이도 상이죠.
Yam : 그 난이도의 삶을 나아가기 위해 취득하기 위한 능력이 있나요?
(돈 + 100, 체력 + 50, 사랑 + 70 뭐 이런 식으로)
현희님 : 저는 재물 100
그렇다고 생각했었죠. 그런데 제가 이번에 가족 여행을 가서 느낀 건데요. 전 가족을 진짜 편하게 생각하기도 하고 못 하는 얘기가 없거든요. 가족한테는 치부라고 느끼는 것도 부끄러운 것도 없는 것 같아요. 가족처럼 나의 모든 걸 이야기했을 때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냥 나라는 사람 그 자체를 받아들여 주고 인정해주기만 한다면 모든 걸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게 참 어렵잖아요. 옛날에 부모님 사업 문제로 집안이 경제적으로 힘든 때가 있었는데 제가 하고 싶던 것들을 아무것도 못 하는 상황이었어요. 이게 그땐 저한테 치부였거든요. 그때부터 쭉 돈이면 다 된다. 이런 마인드도 좀 자리 잡았던 거 같아요. 내가 하고 싶은 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게 해주는 게 돈이니까요. 근데 그런 생각을 하는 제가 속물 같아서 현타오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돈에 대한 얘기는 안하게 되더라구요 사람들과 정치, 종교 이야기를 하기를 꺼리는 것처럼 불편한 주제라고 해야하나.
그치만 가족들과는 이 치부조차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잖아요. 그래서 나 자체로 존재하는 게 가능한 것 같아요.
‘나의 업적이나 흠을 보고 가치평가 하지 않는 사람들하고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 저는 ‘사랑이 모든 걸 치유해준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사랑 만능주의는 아닌데요. 사랑은 우울도 상처도 주니까요. 그런데 그런 고난 속에서도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건 사랑인가 싶었어요.
결국에는 돈이 최고인가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돈도 벌려면 누군가의 믿음과 누군가의 애정이 기반이 되어야지 내가 힘을 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요.
나에 대한 사랑, 타인으로부터 얻는 사랑, 그리고 믿음. 이게 제가 삶이라는 게임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능력인 것 같네요.
내 가치를 무너뜨리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
저는 저를 사랑하거든요. 그런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이면 얼마나 사랑하는 거겠어요. 그래서 저에게 사랑을 주는 사람들과 저 스스로를 실망 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관습에서 벗어나는 일이나 도덕적으로 벗어나는 일도 물론이고. 이유 없는 힐난이나 문란한? 너무 거창한데(웃음) 그런 행동이나 말도 안하려고해요. 사실 불편해요.
그런 건 YAM의 모토가 '정돈되지 않은 날 것의 이야기' 잖아요? 음, 전 제 날것의 모습을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게 하려고 해요. 전 사실 인스타에 올리는 저의 멋진 순간보다 제 날 것을 저와 제대로 공유하고 본다면 절 좋아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너무 오만한가요?
얼마 전에 정말 행복했던 순간이 저한테 16년이 넘은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저한테 '넌 일주일 아니, 하루만 겪어봐도 얼마나 올곧은 사람인지 보이는 사람이야' 라는 말을 해줬는데 산전수전 다 겪은, 16년 치의 박현희를 봐왔던 그 친구가 그 말을 해주니까 정말 좋더라고요.
다이어리는 치부책이기도 하고 생각이 많아서 생각을 정리하려면 필요하거든요.
반지는 제가 반지를 안하고 나가면 엄청 불안해요. 외출할 때 절대 없으면 안 되는 것 중 하나가 반지예요. 에어팟도 마찬가지고요. 저번에 못끼고 나간 적이 있었는데 다시 들어와서 끼고 나갈 정도에요. 제가 사주에 금이 없는데 사주에 금이 없는 사람은 장신구를 많이 끼는 게 좋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웬지 그 후부터는 이게 없으면 하루가 안 풀릴 것 같은 기분? 그리고 이게 없으면 내 아이덴티티가 없어지는 기분?
맥북은 모든 게 다 들어있고 모든걸 다 할 수 있는 매개체라고 생각해요. 흰 천과 바람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 명대사의 흰 천과 같은 존재죠. 맥북 메모장에 모든 게 기록되어 있어요. 이것도 다이어리와 같은 역할을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