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지금 X세대는 나와 비슷한 신체의 변화를 느끼고 있을 것이다.
손톱을 깎을 때는 안경을 벗고, 발톱을 깎을 때는 안경을 끼고 깎지는 않는가?
눈꺼풀과 눈꼬리 그리고 잇몸과 뱃살 등 몸에 붙어 있는 모든 것들이, 땅을 향해 가고 있지는 않는가? 언젠가는 몸뚱이 전체가 땅으로 가는 것이, 자연의 이치겠지만 벌써 이런 나이가 되었다는 것에 더러는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마흔이 되었을 때 인생의 절반이 되었다고 생각을 했다. 이제 오십이 되니 인생의 절반에 다다른 기분이다. 현대 의학에 감사할 따름이다.
육신(肉身)은 세월을 속일 수 없다고 하더라도, 생각의 나이는 어떨까 생각해 본다.
후배세대에게 꼰대스러움과 라떼스러움을 간직한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을까?
하지만 이 책을 쓰면서 믿는 구석이 생겼다. 개인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X세대를 통틀어 보았을 때 어느 세대보다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생각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어느 세대보다 유연한 사고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하기에 X세대는 윗세대와도 아래 세대와도 이야기가 통하는 세대이다.
X세대는 어느 세대보다 자신을 사랑한 세대였다. 윗세대는 이런 X세대를 개인주의라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자기밖에 모른다고 버릇이 없다고도 했다. 하지만 X세대는 자신을 사랑한 것도 맞지만 자신만큼 상대방도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한 세대였다. 내 시간이 중요하면 남의 시간도 중요하고, 나의 사생활이 중요하면 남의 사생활도 소중히 여겼다.
X세대는 꼰대스러움을 거부했다. 나이 많음을 내세우기보다 어려도 같은 인격체로 대하려 했으며, 이는 자신의 자녀에게도 예외가 되지 않았다.
부모로서 자신의 인생을 낭비하면서까지 자녀에게 희생하려고 하지 않는다. X세대는 내가 행복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것보다 소중하다고 생각을 한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절제된 삶을 사는 것보다 현재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사회적으로도 마찬가지다. 내가 행복해야 우리 공동체가 행복해지고, 내가 건강해야 우리 공동체가 건강해진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공동체가 지향하는 것에는 누구 보다 앞장서서 목소리를 높이고는 한다.
나는 이 책을 통해 그런 X세대의 가치관과 에너지를 끌어내고 공유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X세대의 목소리가 우리 사회에 더 크게 울려 퍼질 수 있기를 기대했다.
X세대는 지구라는 행성의 위도 33~38도 사이, 경도 124~132도 사이에 있는 공간에서 서기 1970년대라는 엇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살았다. 수천 년 이어온 민족의 역사화 문화를 배우고, 같은 지도자가 만든 법과 규칙에 따라 행동했으며, 국가가 원하는 인재상으로 성장하기 위해 같은 교육을 받았다. 서로 돕기도 하고, 때론 경쟁도 하면서 한 시대를 공유했다.
우리는 서로 동지이기도 했고, 경쟁자이기도 했지만 우리는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알고 있다. X세대의 2·30대는 지나갔지만, 인생의 절반이 넘어가는 시점에서 우리의 과거를 짚어보고 미래를 설계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젊었을 때 공유했던 것을 이후의 삶에도 함께 나누며 개인적으로 좀 더 행복한 삶과 공동체적으로 좀 더 건강한 사회,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는 좀 더 나은 세상을 물려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X세대는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많은 혜택을 받고 성장한 세대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더불어 한국 사회에서 X세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책임감도 느끼게 된다. 국가나 사회가 되었건, 이웃이나 가족이 되었건 간에 X세대의 집단지성과 사회적 역할을 생각해 본다면 희망적인 대한민국의 미래를 기대해 봐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을 해 보았다.
이 글을 쓰면서 감사하는 생각을 참 많이도 하게 되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도 감사했고, 대한민국을 있게 해 준 구국 선열과 조상에게도 감사했다. 배 곪지 않게 해 준 부모세대인 산업화세대, 자유로운 세상을 만들어 준 민주화 세대인 베이비붐 세대에게도 감사했다. 더불어 후배세대이자 자식 세대에게도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나와 지금껏 한 시대를 동고동락해 준 나의 벗, X세대에게 특별히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