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쪽팔려' 본 적 있으신가요?
네, 전 있습니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긴장해서 빠르게 술잔을 비웠다가 그 앞에서 기절해 본 적도 있고,
OO 해서 XX 하고 OO 해서 XX 하게 된 적도 있습니다.
젊은 시절 얌전하지는 않았던 탓에 차마 말할 수 없는 쪽팔림을 경험했던 기억들이 다수 있습니다.
아마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말하고 싶지 않은,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들켰을 때 쪽팔렸던 일들은 지나고 나면 모두 별게 아니게 됩니다.
당장에는 고개를 못 들고,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잊히고, 한낱 에피소드에 불과하게 되죠. 특히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에, 내가 느낀 창피함을 오래 기억하지 않고, 그러기도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산다.'라는 표현보다,
'인생을 살아간다.'라는 표현을 더 많이 하고, 더 자연스럽습니다.
'인생을 산다, 살아진다'라는 말은 피동적, 수동적이지만,
'살아간다'라는 말은 주체적이고 능동적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맡은 바, 주어진 일을 하며 삽니다.
일을 하며 살아갑니다라는 말을 사용함이 마땅할 수 있겠지만,
주어진 일을 그저 하는 것은 '사는 것'이고,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자고 싶을 때 잠을 자는 건 그저 '살아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내가 원하는 꿈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꿈을 꾼다는 것을
허황된 일이라 말하고, 현실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그들과 닮아가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살면 '쪽팔릴 일'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은 다릅니다.
그렇게 살면 쪽팔리게 됩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사는 동안, 하고 싶은 것을 찾아내 시간을 투자하지 않고,
그저 남들이, 사회가 '이렇게 사는 게 대세야.'라고 하는 말을 따라 '살면'
'나'는 '나'의 인생을 살아 '간' 적이 없는 게 됩니다.
진정한 내가 된 적이 없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의 운명은 닮습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해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을 선택하게 됩니다.
하지만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보는 나에게 쪽팔릴 수밖에 없습니다.
나로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그, 또는 그녀의 소리 없는 외침을 외면하겠죠.
물론 바쁜 일상, 현생을 살기에 시간이 부족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루에 절반을 인생을 '살고, 살아지기 위해' 써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머지 시간은 진정한 나로 '살아가기 위해' 투자해야 합니다.
아주 느리고,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변화를 위해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미래의 나 자신에게 '쪽팔리지 않기 위해' 달라져야 합니다.
내가 죽을 때, 과거의 내 쪽팔렸던 일들을 언급하며 손가락질할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하나뿐입니다.
'나 자신' 하나뿐입니다.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요? 여전히 실패할 게 두렵고 다른 사람의 시선이 걱정인가요?
걱정할 시간에 그냥 해보세요. 쪽팔림은 순간이지만, 후회는 영원할지 모릅니다.
>> 한 줄 코멘트. 살면서 경험했던 무수히 많은 쪽팔림의 순간은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인생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 쪽팔림이었다는 뜻이겠죠. 그러니 새로운 도전과 실패를 한다고 손가락질 받을 걸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들은 기억하지 않습니다. 못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