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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대리 Sep 07. 2023

S#3-6.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붉은 꽃이 열흘 못 간다더니 옛말 그른 것 하나 없다

연차가 쌓이고 직급이 올라가면서, 내가 하는 일 자체가 앞으로 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에 대한 일종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고민의 시작은 이러했다. 집에서 식사하던 중, 어머니가 내게 물으셨다. C 회사에 입사한 지도 꽤 몇 년이 지나 업무도 익숙해져 있었고, 해외 배급 일을 하다 보니 해외 출장도 잦아서, 수년 전 찾아갔던 도사가 말했던 것처럼 내 뒤에 공항이 펼쳐져 있고, 짐가방을 쌌다 풀기를 자주 하던 때였다. 그런데 어머니의 질문은 간단했다, 회사에서 내가 하는 일이 뭐냐고. 한국 영화 해외 배급에서 내가 맡은 일이 뭐냐고.


예기치 못한 순간에 들은 가장 어려운 질문이었다. 지각 한 번 하지 않고 정시에 출근해서, 때로는 새벽까지 야근하기도 하면서 뭔가 바쁘게 여러 가지 일을 하긴 하는데, 이 질문에 어떻게 답을 해야 제대로 ‘한국 영화 해외 배급’에 대한 명쾌한 요약이 될까, 잠깐 고민했다.



하지만 명쾌하고 싶던 욕망과 달리, 대답은 만연체 문장으로 흘러나왔다. 일단, 회사에서 투자배급을 결정한 한국 영화가 라인업으로 확정되면, 우리말로 된 영화 제목을 해외 바이어에게 알리기 위해 영어 제목을 짓고, 예고편이 나오면 대사와 카피를 영어로 번역하도록 번역가에 발주하고, 영어 자막도 넣고, 본편 대사도 마찬가지로 번역도 발주하고, 영어 자막도 넣고, 보도자료도 번역하고, 영문 포스터도 제작하고, 영화제에 출품하면 필요한 선재도 챙겨 보내고...


“그중에 네가 직접 하는 일이 있어? 포스터를 직접 디자인해? 영어 자막을 직접 번역해? 아니면 자막을 넣는 일을 직접 해?”


“아니지, 그런 일들이 제대로 이뤄지게 일정을 꾸리지.”

     

“결국 네가 직접 하는 일은 없는 거네? 네가 아니어도 누군가는 누구나가 할 수 있는 일 같기도 하고.

     


직접 하는 일이라... 내가 각본을 쓰고, 연기를 하고, 연출을 하고, 촬영을 하고, 편집을 하고...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지만, 한 사람이 그렇게 영화 한 편을 만들고 또 그 영화를 널리 알리는 배급 일까지 한다? 그걸 내가 해야 한다? 그런 뜻인가 싶다가도,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일'이 맞나?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게, 나는 무슨 일을 하는 거지. 밥을 먹다 말고 지난 십수 년간의 내가 월급 받고 했던 일들을 모조리 떠올려봤다. 내 손으로 직접 하는 일이란 게, 일정에 맞게 계획하고, 적절한 발주와 품질 관리를 통해 어긋나지 않게 하는 일, 그 일이 내가 그간 해온 일이었다. 매정하게 말하자면, 어떤 자격증을 따야만 할 수 있는 전문직이라고 하기엔 어딘가 모자라고, 더 냉정하게 말하자면, 내가 아니어도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 아닌가.



30대 대부분을 ‘그런 일’에 매진하던 동안에는, 최면에 걸린 듯 단 한 번도 ‘그런 일’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한다는 걸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마치 40대 이후에도, 그런 사례를 본 적은 없지만 정년퇴직할 나이까지도 시한부지만, 심정적으로는 ‘영원히’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아니, 그런 생각조차 해본 적도 없지.     

나보다 몇 살 어리지만, 관련 업무 경험은 나보다 많았던, 상대방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내 ‘또래’의 동료들이 하나둘씩 다른 길을 찾아 떠났고, 어느새 나보다 띠동갑보다도 더 어린 후배들이 신입사원으로 입사하고, n 연차가 되는 동안, 나는 새로 들어온 후배들에게 내가 맡았던 ‘그런 일’을 알려주었고, 연차도 늘어나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업무에는 능숙해졌지만, 심정적으로는 도태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땐 그걸 미처 깨닫지 못했다.

               


그렇게 햇수로 10년 간 일했던 한국영화 해외배급 업무에서 벗어나 중국에서 열리는 단편영화제 기획부터 프로그래밍까지 맡아서 두 번의 영화제를 치르고 나니, 다시 나의 역할은 대폭 축소되었다. 아무 기반도 없이 첫 영화제를 무사히 그리고 성공적으로 치르는 것이 가장 중요했을 당시엔 내 의견이 다른 누구보다 절대적이었지만, 그마저도 두 번째 영화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이미 한 번 치른 경험을 얻은 중국 현지 직원들의 의견이 절대적이 되어있었다. 게다가 나는 중국과는 관련이 없는 그저 '영화' 혹은 '영화제' 경력만 있었을 뿐이니, 중국 현지에서 내 목소리를 낼 기회는 2년 차가 되면서 거의 소멸되었다.


그러다 그룹에서 진행 중이었던 신사업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지만, 사업 자체의 진척은 이리저리 흔들리다 모든 계획이 제로가 되고, 초반에 으쌰으쌰 했던 직원들도 하나둘씩 자기 갈 길을 찾아가는 동안, 나는 내부에서 보직이 서너 번 바뀌면서 점점 '영화 일'에 빠삭한 나의 특성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냥 나이는 많은데 직급은 높지 않은 그런 위치로 서서히 전락했다.


이직은 어려웠다. 영화 일로 쭉 이어지던 나의 경력은 중간에 샛길로 빠지면서 뚝 끊겨버렸고, 그러는 사이 나이는 한 살 한 살 쌓여 이직하는 데에 걸림돌과 같은 '무거운 존재'가 되어버린 것.



자의든 타의든 더 늦기 전에 다음 장(章)을 위해 움직여야 할 때가 온 것이었다. 고민만 거듭하고 걱정만 늘어놓는다고 문제가 해결된다면, 평생 고민과 걱정만 하고 살겠다만, 인생은 그렇게 길지 않다.


붉은 꽃이 열흘 가지 못한다는데, '백세 시대'의 절반도 채 살지 않은 상황에서 결단을 내리기엔 다소 이르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결단의 순간이 드디어 찾아왔다.



나 아니면 안 될 일이란 게 세상에 어디 있을까 싶었을 때,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던 영화가 바로 <버드맨 Birdman or (The Unexpected Virtue of Ignorance)(2014)>이었다. 


왕년의 인기스타였지만 이제는 한물간 주인공 리건 톰슨에 나 자신을 투영한다는 건 다소 억지스러운 일이지만, 문화를 제일 잘한다는, 그리고 한때 대학생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기업 1~2위를 다투던 회사에서 15년을 근속하면서 느꼈던 순간순간의 기쁨과 매달 꼬박꼬박 받았던 월급과 월급이 쌓여 형성한 연봉, 그리고 얼마간의 복리후생, 그리고 내 이력서의 절대 부분을 차지하게 해 준 '경력'까지.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다는 열망과 15년 간의 기쁨이 교차하는 순간, 다시 <버드맨(2014)>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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