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내 기분이지 않을까?
통화가 끝난 뒤에도 나는 한동안 휴대폰을 쥐고 있었다. 화면은 꺼졌고, 방 안은 조용했다. 책상 위에 폰을 내려놓고 창문을 열었다. 미세하게 다른 바람이 들어왔다. 같은 여름인데, 며칠 전과는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매미 소리도 유난히 멀게 들렸다. 나는 방 안의 선풍기를 끄고, 한참을 가만히 서 있었다. 아무 말도, 아무 생각도 없이.
주하진의 목소리는 이상하리만치 가벼웠다. 변명도, 설명도, 사과도 없었다. 그 애는 늘 그랬다. 정작 필요한 순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이제 그 애가 어떤 사람인지 알 것 같았다. 나를 싫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을 지키는 법도, 이별을 감당하는 법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 애는 끝까지 침묵했고, 나는 끝까지 묻지 않았다.
창밖을 바라보았다. 밤이었다. 가로등 불빛이 무색할 만큼 달이 밝았다. 골목 담장 위로 은은하게 번지는 달빛이 지붕 끝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거리엔 인기척이 없었고, 어두운 하늘 아래, 시간도 함께 조용해진 듯했다. 사랑은 그렇게 끝났다. 내가 다 써버렸고, 그 애는 다 받기만 했다. 하지만 괜찮다. 나는 사랑을 줬고,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그때, 그 순간들을 진심으로 좋아했다. 내 마음이 어디로 흘렀는지를 정직하게 아는 사람은, 그 자체로 위로를 품은 사람이다. 나는 잠깐 눈을 감았다가 떴다.
여름이 끝나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나에게는 여름이 이미 지나갔다. 나는 조용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희미한 구름이 떠 있었고, 공기가 달라져 있었다. 분명 아직 늦여름인데, 나는 벌써 가을을 먼저 만난 기분이었다. 그게 사랑을 다한 사람과 아직 남은 사람의 차이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겐 여름이 끝났고, 누군가에겐 아직 한참 더울 뿐이다. 좋았던 건 충분히 좋았고, 끝날 만큼 사랑했고, 떠나야 할 때 잘 떠났다고. 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가을은, 나 먼저 왔네."
<마무리 되었네요. 다음 편에 에필로그 쓸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