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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 Jun 26. 2024

12 연기법


~~~~~


태어남이 있기에 죽음이 있고

아내가 되어 남편이 있네

이것이 있어 저것이 생겼으니

애당초 이것이 없었다면

저것도 없을 터


꼬리를 문 우로보로스 뱀처럼

돌고 도는 12 연기여

촉. 수. 애. 취. 유

접촉이 있어 느낌이 일고

느낌이 있어 갈애도 생겨서

취하고 보니 생명의 탄생

생. 노병사의 시작이라!


다시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으려니

인간사 탐진치 베어내면

고집멸도 집착도 다 사라지려나

무상, 고, 무아 바다를 건너

아제 아제 바라아제

저 피안으로 넘어가려나


인간(人間 )

기대선 사람 사이

기대어 존재하는 너와 나 사이

우주 만물 기대지 않은 것이

어디 있으랴


그러니

오늘도 돌고 돌아가는

열두 연기 속 삶이여

우주의 들숨 날숨, 율려여

무한한 이 순환 속에

이번 생 내 배움도 멈추지 않기를!


12 연기 AI 노래





십 년 전인 2014년 나는 혼자 불교공부에 심취했었다. 지금은 집단 지성의 시대, 그를 가능케 하는 것이 인터넷이란 매체다. 중국을 거쳐서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대중적이 된 조계종 대승불교보다 부처님 불교 발상지요 기원이 되었던 남방불교인 소승불교부터 조금 파 보았다.


그러면서 일반적 불교문화로 아는 살생금지 채식문화부터가 다름을 알았다. 즉 말해서 부처님 당시는 탁발로 먹는 문제를 해결했기에 시주하는 데로 주는 대로 먹어야 했기에 육식을 금하는 계율이 없었다. 대신 미각을 만족시켜 줄 부잣집에서만 공양을 해결하려는 마음을 없애기 위해 하루 일곱 집을 공평하게 탁발을 하라는 등의 규정이 있었다. 그리고 더운 나라에서 음식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그날 보시받은 공양물을 일정한 시간 내에 소비하라는 등의 규칙은 있었다. 


그리고 가능한 모든 사람들을 고통에서 해방시키고 해탈의 경지로 이끌자는 대승적 기치도 좋지만 나는 기독교란 종교의 틀에서 나와하는 개인 영성철학 공부라 생각하고 불교에 접근했기에 개인의 깨달음과 수행을 우선시하는 소승적 가르침이 더 와닿았다. 부처님 입적 시 마지막 말씀도 '자등명 법등명' 네 안의 불을 켜서 가라는 말씀이라 그런 가르침이 더 솔직하고 진솔하게 다가왔다. 


무릇 사람의 그릇이 비워지고 깨끗해진 만큼 도를 담을 수 있고 자기 수행이 된 만큼 지행일치가 가능하다고 믿는다. 


나는 십 수년 교회를 다니고 성경을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많이 보았지만 사람들 개개인에서  큰 변화를 보기보다는 기독인이라는 이름하에 집단적 이기주의와 편견을 목도하면서 한 종교의 틀을 나왔다. 


그래서 진리가 나를 자유케 할 지니 예수님의 사랑과 부처님의 고행으로 얻은 깨달음 모두가 귀한 거라 보게 되었다. 예수 불신 지옥이 아니라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수라' 하신 말씀은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그 도를 말씀하신 거라 본다. 


원수를 사랑하기까지 용서와 사랑을 하면 그것이 진정한 도(道) 일 것이다.


연기법은 내가 혼자 불교공부를 할 때 반야심경과 함께 빠져서 내 체험과 함께 쓴 시다. 



촉수애취유~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생로병사가 온다.
 
불교는 갈애를 끊어버리려 하지만
인생은 갈애도 배움의 한 과정으로 필요할 뿐이다.
 
갈애도 도구로 쓰여져
12 과정의 인과와 연기를 통해 
이뤄지는 배움의 순환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배움의 성장에 필요한 갈애가 아니라 탐욕에 가까운 갈애는 벗어난 만큼 해방을 이루었던 경험에서 나온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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