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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로 가는 사람들

김보영 작가의 SF소설

by 김별


반지의 제왕과 해리 포터를 생각하다 판타지 소설과 SF소설의 차이는 뭘까? 라는 의문이 들어서 정리해봤다.


두 장르는 먼저 다루는 내용과 방식이 다르다.
SF 소설은 주로 과학적 원리와 기술을 바탕으로 한 미래 또는 우주를 배경으로 하기에 과학 이론을 기반으로 쓰인다.
예를 들어, 우주여행, 외계 생명체, 인공지능 등을 주제로 다룬다.
반면 판타지 소설은 주로 마법, 신화적 존재, 초자연적 요소가 포함된 세계를 배경으로 하니 현실 세계와는 다른 법칙이 적용된다.
그래서 캐릭터도 SF 소설 속 인물들은 종종 과학자, 우주 비행사, 외계인 등이 나오며, 그들의 행동이나 결정도 과학적 이론에 기반해서 쓴다.
반면 판타지 소설의 캐릭터들은 마법사, 요정, 전사 등이 나오고, 그들의 능력은 종종 마법이나 신비로운 힘에 달려있다.
모험과 상상의 요소가 강조되는 판타지는 주로 젊은 독자층에 인기가 더 많고, SF는 성인 독자층에 더 많이 읽히는 경향이 있다.
인기 있는 판타지 작품으로는 소설을 원작으로 영화로 나온 "왕좌의 게임", "해리 포터" 시리즈, 그리고 넷플릭스 시리즈 "더 위쳐" (The Witcher)등이 있다.
SF 작품도 소설 "듄" (Dune)이 영화로 나와 화제를 모았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SF 영화인 "테넷" (Tenet)도 복잡한 시간 개념을 다루는 것으로 관심을 모았다.
그리고 인류 생존을 위한 우주 탐사와 사랑과 희생의 테마로 만든 유명한 영화 "인터스텔라" 가 있다.


이처럼 SF 소설은 우주 탐사, 시간 여행, 인공지능과 로봇, 외계 생명체 등 다양한 테마를 다룬다. 그러나 SF와 판타지가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고 혼합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는 그런 작품들을 더 선호하는데 그렇게 혼합된 형태의 장르를 "과학 판타지" 또는 "퓨처 판타지"라고도 한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스타워즈"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첨단 기술과 외계 생명체, 그리고 마법적인 요소를 서사적으로 결합했다.

그리고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도 우주여행과 외계 생명체, 슈퍼히어로의 요소가 판타지적인 캐릭터와 SF적 배경이 잘 버무려진 작품이다.


이처럼 SF와 판타지가 혼합된 작품들을 통해 우리는 두 장르의 매력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




이제 우리가 목전에 둔 가까운 미래에는 AI 로봇과 어쩌면 외계인도 현실로 여겨지게 되었다.

그러니 이 놀라운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살아가야 하나?

나는 그에 대한 답을 SF가 보여줄 수 있다고 본다. 미래의 답을 찾기 위해서도 현재의 상상력으로 SF는 더욱 중요하기에.


“지금 한국에서는 더욱 SF가 필요하다. 정확하게 말하면 SF적 상상력이 더욱더 필요하다.
산업사회의 규범과 윤리는 21세기에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학교에서의 교육은 과연 지금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가르치고 있는가? 단순하게 지식이 필요하다면 검색을 통해서 거의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세상이지만, 대부분 교과목은 그런 지식의 수준을 뛰어넘지 못한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 지식이 아니라 변화한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기초적인 교양과 방법이다. SF가 과거에 제기했던 수많은 질문은 지금의 혼란스러운 '미래'를 살아가기 위한 예언이었다.”

한국 창작 SF의 거의 모든 것 (김봉석, 175쪽)





최근에 읽은 책은 김보영 작가의 스텔라 오디세이 트릴로지의 마지막 권인 '미래로 가는 사람들'이었다.


이 소설은 작가의 삼부작 중 1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와 2 ‘당신에게 가고 있어’에 이은 것이다.

앞선 두 권이 주인공의 부모님 세대의 이야기라면 '미래로 가는 사람들'은 시간 여행자인 <성하>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흔히 SF는 현실의 한계를 부정함으로 이뤄지는데 지구가 아닌 곳, 시간적 현재가 아닌 때, 가능하지 않은 일이 SF의 주 내용이 된다. '미래로 가는 사람들'도 역시 이러한데 특이하게는 마지막 부분에서 결국 인간이란 틀마저 해체되고 보다 큰 존재로 합체하는 식이 된다.


그만큼 현실에 발을 딛지 않은 이야기이기에 이해하기가 쉽진 않지만, SF란 틀의 자유로움을 빌려서 우리가 상상해 볼 수 있는 그 끝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소설은 기, 승, 전, 합의 4개의 장으로 이뤄지는데 빛의 속도에 근접하게 여행하는 시간 여행자인 <성하>에 관한 이야기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프로그래머 셀레네와 성하의 대화를 통해 이 우주가 일종의 닫힌계(closed system)라는 것이 나온다.

이 세계관 속 우주는 구와 같아서, 성하가 추구하는 우주의 끝은 출발점에서 제일 먼 곳일 뿐이며, 결국 돌고 돌아 그 끝에는 다시 지구가 있다.


두 번째는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던 시대의 인간이 시간을 건너뛰어 모든 기술이 사라진 원시시대로 들어가면 신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성하의 우주선은 매우 빠른 속도로 비행하므로 우주선에서의 몇 달이 지구 행성에서는 몇만 년의 시간에 해당한다.

그 때문에 문명이 발생했다가 발전하고 다시 사라져 원시 상태로 되돌아가는 일이 반복되는데, 그 원시 상태의 행성에 착륙한 시간 여행자는 마치 신처럼 받아들여진다.


이곳에서 문자와 종교의 씨앗을 뿌리는 성하는 마치 그리스 신화의 프로메테우스 같은 존재가 되면서 다시 미개인이 된 인류에게 결국 메시아 혹은 신으로 추앙받게 된다.


읽으면서 평소 내가 종교에 대해 생각하던 점과 일치해서 흥미로웠다.


지구 위 인류들의 멸망과 탄생의 무한한 반복을 보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지구 인류가 멸망하고 다시 문명을 구축하고 있는 시점에 지구에 와서 문명을 가르치고, 글을 가르치고, LED를 주렁주렁 매달고 신의 행세를 하는 또 다른 시간 여행자에 대한 묘사도 재미있었다.


마치 부시맨이 처음 비행기를 보고 거기서 떨어진 코카콜라 병을 신성시하듯이 다시 원시문명으로 돌아간 지구인들이 과학기술의 능력을 갖춘 외부자를 신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성하가 우주선의 연료를 찾기 위해 착륙한 곳, 그곳에서는 새로운 문명이 자리하고 있었다.

우주선을 착륙시키자 사람들이 모두 성하를 향해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그들은 성하를 '신'으로 생각하며 경배하는 것이었다. 왜 그렇게까지 공포에 떨며 극진하게 성하를 모시는가 싶은데 이미 그 전에 먼저 온 한 사람, 이곳에 문명을 새로 만든 자칭 '신'이라는 한 남자가 그들에게 공포심을 심어놓았기 때문이었다.


이 부분을 읽을 때 나는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사후세계에 대한 무지를 이용한 비즈니스와 같은 종교팔이의 역기능을 생각하며 씁쓸했다.



세 번째는 성하가 우주의 끝 비슷한 곳에서 살아남은 자들을 만난 이야기이다.

광속으로 움직이는 우주선 에키온을 사용하여 결국 광속에 도달하게 되면 시간이 죽어버리고 생명을 빼앗길 것을 알면서도 마침내 광속에 도달해 우주의 끝을 보고자 하는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욕망을 그렸다.

마지막 네 번째 이야기는 우주의 모든 에너지가 고갈되어가는 시간에 도착한 주인공의 죽음, 혹은 우주의 죽음이자 또 다른 우주의 탄생을 그린다.


누구나 반드시 알기를 욕망하는 세계, 그러나 현실에 발을 붙인 채로는 결코 알아낼 수 없는 진리가 있다.

사람들에게 그것은 '신의 존재‘나 ’죽음 이후의 세계‘가 될 수 있는데 성하에게 그것은 '우주의 끝을 확인하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생명이 꺼져가는 상태에서도 우주의 끝에 대한 욕망을 멈추지 않고, 성하는 4차원의 세계로 이동한다.

'클러스터, 에키온, 성하'가 된 상태로 합일한 채 죽음을 맞이하고 또다시 탄생하는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성하는 우주의 끝에 도착했다. 우주의 모든 것은 죽었고, '우주가 탄생한 순간 시작된 최초의 빛만이 남아 우주의 흔적 저곳으로 옮기고 있을 뿐이다.


블랙홀 또는 카오스라고 불러야 할 그곳에서 성하는 '어떤 파장'이 그에게 오는 것을 느끼고, 그 파장과 대화를 시작한다. 파장은 자신을 '클러스터'라고 지칭한다.

클러스터는 하나인 여럿인 일종의 '의식'으로 우주와 함께 태어나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는 영적 에너지 같은 것이다.


클러스터는 성하의 몸을 구석구석 살폈다 성하는 대답했다. '내 수명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요" "우리가 도와줄 것이 없을까요? 클러스터가 속삭였다. "내가 살던 시대에는 임종을 지켜준다.'라는 말이 있었지요.“


“어렵지 않은 일이군요…. 그대는 여행을 위해 생을 얻었고, 죽음에 이른 순간까지도 여전히 길을 떠나기를 원하는군요.

그 오랜 세월도 그대를 만족시켜 주지 못했나 우주의 끝에서 끝까지 갔고 이제 우주의 종말까지 왔는데도, 아직도 목말라 하고 있군요”


그래요, 우주의 끝까지 날아왔지만, 나는 아직도 이 우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니까요. 까마득한 차원 너머에 있는 오래전 성하라는 인격 조각의 육체였던 것에 죽음이 찾아 왔지만 너무나 미미한 일이라 느낄 수조차 없었다.


그는 모든 인간이 죽음을 통해 이와 비슷한 일을 겪게 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갑자기 죽음이란 것이 미미한 일같이 생각되었다.

끝없이 생성되었다가 사라지는 우주 공간의 순환을 보았기에 오는 담대함인가? 결국, 어느 것도 죽음을 벗어날 수는 없다는 것 그것만이 불변이다.


"우주 전체를 감싸고 있던 영혼의 조각들이 점점이 흩어져 1억 개의 지구에 놓여 내렸다.

그중 하나의 조직은 아직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푸른 별의 바다에 떨어졌다.


영혼 조각은 번개가 치는 길쭉한 유기 바닷속으로 들어갔고 조용히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 작은 별 가득히 자라나게 될 수많은 생물과 앞으로 펼쳐질 그들의 찬란한 삶을 꿈꾸며.


“이 우주의 모든 것은 죽었다. 오래된 시간은 질병처럼 살아있는 모든 것을 죽음의 나락으로 끌고 들어간다. 환생의 고리도 윤회의 흐름도 끊어졌으리라.

환생한 영혼을 담을 생물이 더 이상 이 우주에 남아있지 않으므로.


천국과 지옥마저 먼지가 되었을 것이고, 저승의 유황불조차 엔트로피의 증가를 견디지 못하고 원자 단위로 분해되어 버렸으리라.


오직 무한한 시간을 사는 <빛>만이 아직 생존하여 우주가 살아있었던 때의 영상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길 뿐이었다.

빛이 여행을 계속하는 한 우주의 모든 순간의 영상은 영원히 우주를 떠돈다.

모든 죽은 별은 우주의 어딘가에서 아직도 빛나고 있다.


이 세계가 탄생 된 후 조 단위의 연도가 지났건만, 우주가 탄생한 순간 시작된 최초의 빛은 아직도 그 영상을 품은 채 비행하고 있다.


그러나 <빛> 안에서는 시간이 흐르지 않으므로 빛 자신은 그 시간을 느끼지 못한다.

우주의 탄생과 종말은 <빛>에게는 순간이다. 빛은 아득한 시간을 살지만 태어난 순간 죽는다.

자신이 존재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다.”




시간여행자의 이야기를 통해서 영화 인터스텔라를 떠올리며 시간 여행에 대해 좀 더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소설 속 지구인들은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혹은 미래에는 더 나은 현실이 펼쳐져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우주로 나가 일주일을 여행하다가 몇백 년 후의 지구로 돌아온다.

그러나 빛의 속도가 다름으로 우주와 각 행성의 시간과 지구의 시간이 다르다는 점을 보여준다.


예를 들면 주인공은 '셀레나'의 집에 쳐들어가서 셀레나의 할머니와 약속한 것을 받으러 왔다고 하는데 할머니는 이미 돌아가셨지만, 그 청년은 여전히 젊은 상태다. 그 이유는 청년은 '시간 여행자'이기 때문이다.

"지구 위처럼 가까운 거리에선 빛이 거의 직선이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거야. 하지만 별과 별 사이처럼 거리가 멀어지면 그 현상이 거꾸로 일어나게 되는 거다. 빛이 굽어 있으므로, 멀리 있는 물체일수록 빨리 움직이고, 더 멀어지게 되는 거야, 뭐라고 할까. 경도와 위도가 그려진 깔때기 안에 들어가서, 깔때기 구멍에 서서 보는 것 같이 되지, 메르카토르 도법에서 일어나는 일과 비슷한 거야."


(나는 늘 궁금했다.

지질학적 지구역사가 45억 년인데 왜 지금 우리가 아는 역사는 예수 탄생기준 달력으로 채 1만 년도 안 되는지?

지구가 여러 차례 빙하기를 거치고 다시 문명이 새롭게 시작되었다는 것도 각종 화석 등으로 증명되었다.


그러나 다양한 설과 자료로 봐서는 우리가 믿는 현생 인류의 이전의 고대 문명의 존재를 상상하고 믿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작가의 중단편집 멀리가는 이야기에 들어 있는 '미래로 가는 사람들'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소설은 이해하기에 어려운 이야기다.

굳이 마음을 열고 이해하려 들면 안 될 것도 없지만^^;

해서 3차원적 의식이 좀 더 확장되길 바라며~~~

조금 덧 붙인다.


사족처럼 지루한 분은 걍 패쓰하시길~~^~^!


"시간 여행자로군."

청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광속 우주선이 만들어진 이래로 많은 사람이 미래로 도망쳤다.


쉬운 일이었다. 10광년이나 20광년쯤 여행하고 돌아오기만 하면 되었다. 또 그중 많은 사람이 범죄자였다.

항공법이 아직 느슨해 국제사회는 결국 민간 광속 비행을 금지하고, 그들은 공소시효가 끝나는 미래를 향해 도망쳤다.


주선이 항구에 내려서기만 하면 시대와 국가를 가리지 않고 조종사를 감방에 처넣었다. 결국, 광속법 위반자들은 지구에 내려서지 못하고 다시 우주를 향해 날아갔다.


어찌어찌 몰래 지구에 착륙한 사람들도, 바뀐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미래로 도망쳐 버렸다.


셀레네도 몇 번인가 그런 사람들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들은 무엇에 홀린 듯 끊임없이 미래를 향해 떠났다. 미래에는 뭔가 좀 더 나을 것이라 믿고, 현재에서 얻지 못한 것을 얻을 수 있으리라 믿고. 과거에서 온 사람들도 만났었다.


그들은 외계인처럼 모든 것을 두려워했고, 결국 현재라는 시공간을 견디지 못하고 미래로 떠났다.

물론 그곳에도 안식은 없을 것이다. 그들은 어느 곳에 내려서든 지 다시 도망칠 테니까.

청년은 창밖을 내다보았다.

"어느 때에는 완전히 얼어붙은 얼음 행성으로 돌아올 때도 있어.

지구를 다 돌아도 겨우 몇 부족의 사람들을 발견할 때도 있어...


그럴 땐 지구에 내려 그들을 보호해 주기도 해. 안 그러면 인류가 영영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니까.

불이나 문자를 가르쳐 준 적도 있고, 농사를 짓는 법을 가르쳐 준 때도 있어. 오래 머물 수는 없었으니까 바로 길을 떠났어. 밭에 씨를 뿌려 놓고 싹이 트기를 기도하며 도망쳐 버리는 농부처럼."


청년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깊은 슬픔이, 셀레네가 상상할 수도 없는 경험에서 비롯된 슬픔이 그의 눈에 담겨 있었다. 그의 눈동자 속에는 수도 없이 멸망했던 인류의 모습이 심겨 있었다.

불타 버린 초목과 사막이 되어 버린 대지가, 지진과 해일, 화산 폭발과 전쟁으로 재가 되어 버린 도시의 풍경이 흘러내렸다.


"나는 옛날에는 나 덕분에 인류가 존속하고 있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요즘에는 다른 생각이 들어. 인류가 같은 죽음을 반복하는 건 나 때문일지도 몰라.

내가 관여하지 않는다면, 조금 더 늦기는 해도 좀 더 다른 방식으로 문명을 발전시킬지도 몰라."

...

우주는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거울 같은 거라고 보면 돼, 수십만 개의 거울이 무한히 서로를 비추는 거야.

우주가 멀어질수록 조밀해지는 이유는, 거리가 멀어질수록 빛이 비치는 영상이 늘어나기 때문이야."


청년은 한참 동안 셀레네의 얼굴을 보았다.

"시간은 차원과 같아. 다른 시간대는 다른 차원에 걸쳐져 있어.

겨우 10년이나 20년만으로도 세상은 완전히 다른 것으로 바뀌어 버리니까. 만 년이나 2만 년은 말할 것도 없어. 당신 말대로 100억 년이 지나면,"


청년은 소리 내어 웃었다.

"그건 같은 세계라고 말할 수 없을 거야. 공간이 아니라 시간이 세계를 바꿔 놓은 거지. 우리는 같은 공간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아닐지도 몰라. 나는 계속 지구로 돌아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이미 다른 우주로 들어와 버린 것 같아."


"그건 마약 같은 것이지. 한번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거든, 돌아왔다가는 다시 떠나고, 돌아왔다가는 또다시 떠나고, 미래에는 뭔가 더 나은 것이 있을 거다.

그 실낱같은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도박장에 전 재산을 쏟아붓듯이 인생을 쏟아붓지, 돌아왔을 땐 신분증도 연고지도, 기다리는 사람도 없어.


미래로 가면 갈수록 정착할 수 없게 되어 버리는 거야. 점점 늪으로 빠져드는 거지.

결국은 영원히 여행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는 거야. 저주받은 유령선 선장처럼, 땅에 발을 디딜 수 없는 저주."


그는 건배하는 자세로 술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게 우리들이지. <시간여행자>."


하지만 이건 정말 개 같은 경우야. 겨우 몇만 년 날아간 것뿐인데, 겨우 몇만 년뿐이었는데!

설마 문명이 거꾸로 뒤집혀 버리다니. 그 찬란했던 도시는 다 어디로 사라져 버리고 원시인들만 남아서 땅이나 파고 앉아있다니…….


4차원의 이동은 위, 아래, 좌우, 앞뒤가 아닌 다른 방향으로의 이 동을 의미한다.

성하는 그것이 어떤 형태가 뭔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또 3차원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그 세계를 받아들일지도 가능할 수 없었다.

그래도 성하의 가슴에는 두려움 대신 호기심이, 망설임 대신 잔잔한 흥분의 파도가 뛰어놀고 있었다.


어느 방향일까. 어디로 가게 될까. 방향을 느낄 수는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성하는 자신이 내부에서부터 뒤집히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짧은 공포가 일었지만 이내 사그라들었다. 어차피 죽게 될 신체였다.

희박한 산소 속에서 괴로워하며 죽는 것보다는 무엇이든 나을 것이다. 성하는 조용히 일어나는 일을 지켜보았다.


매실을 까뒤집는 것처럼 안에서부터 뒤집히면서 그의 영혼이 밖으로 확장되고 있었다.

성하는 자신이 죽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이동하고 있는 것인지 파악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렴풋이, 이것이 네 번째의 공간 좌표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부에서 외부로 가는 것. 혹은 외부에서 내부로 오는 것.


그의 영혼이 뇌의 영역을 벗어나 스멀스멀 밖으로 퍼져 나갔다.

성하는 문득 자신이 클러스터의 영혼에 접근하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클러스터의 안에 살아있는 수많은 영혼이 폭포처럼 성하의 의식을 파고들었다.

'죽은 것일까? (아니야) 아직 살아있어 (심장이 뛰고 있어) (진짜'그' 만 이동했어) 그는 어디로 갔을까? (알 수 없지)'


성하는 본능적으로 물러나려고 했지만 이미 이동은 멈춰지지 않았다.

클러스터의 모든 기억이 파도처럼 밀려들어 왔다. 클러스터가 태어난 순간, 그의 생각, 그의 삶, 그 내부에 들어 있는 수많은 조각 영혼들의 이야기, 그들이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이 성하의 기억 속으로 들어왔다.

마침내 성하는 자신이 성하인지, 클러스터인지, 아니면 둘을 합친 다른 존재인지 알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이동은 계속되었다. 그와 오랫동안 여행을 같이한 에키온은 이미 그의 영혼 속에 녹아들었다.

성하는, 아니 '클러스터 에키온 성하'는 은하계 전체로, 성단 전체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성하 는 죽어 있는 우주에 남아있는 몇 조각의 영혼을 발견했고, 다시 그들과 하나가 되었고, 그들의 모든 기억과 하나가 되었다.

성하는 우주 전체로 퍼져 나갔고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영혼에 접근했다.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 그리고 우주 자신의 기억마저도 성하에게 흘러들어왔다.


성하의 영혼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머나먼 은하에 존재했던 작은 푸른 별에 접근했고, 그 별에 살았던 모든 인간의 영혼에 접근했고, 그들과 하나가 되었다.

성하는 이제 우주가 되었고, 하나의 차원이 되었고, 하나의 전체가 되었고, '영혼' 또는 '생명'이라고 불릴 하나의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이해했다.


몇 시간 뒤에 까마득한 차원 너머에 있는, 오래전 성하라는 인격 조각의 '육체' 였던 것에 죽음이 찾아 왔지만, 너무나 미미한 일이라 느낄 수조차 없었다.

그는 모든 인간이 죽음을 통해 이와 비슷한 일을 겪게 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죽어 가고 있는 우주의 바깥에 수많은 새로운 우주가 태어나고 있었고, '영혼'은 이제 그중 한 우주를 택해 이동했고, 다시 그 우주와 하나가 되었다.

'영혼'의 내부에서 가스 성운이 회전하며 새로운 우주가 태어났다.


1천억 개의 우주 안에 1천억 개의 은하계가 태어났고, 은하계마다 140억 개의 태양이 태어났으며, 각각 1억 개의 지구가 만들어졌다.


무한의 시간 속에서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던 일을 지켜보고 있던 '영혼'은 어느 순간, 이동을 거꾸로 시도했다. '영혼'은 그 이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고, 아무 두려움도 느끼지 않았다.

그는 오랜 옛날부터 이런 방식으로 자신을 성장시켜 왔던 것이다.


우주 전체를 감싸고 있던 영혼의 조각들이 점점이 흩어져 1억 개의 지구에 쏟아져 내렸다.


그중 하나의 조각은 아직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푸른 별의 바다에 떨어졌다.

영혼 조각은 번개가 치는 걸쭉한 유기 바닷속으로 빨려 들어갔고, 조용히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 작은 별 가득히 자라나게 될 수많은 생물과 앞으로 펼쳐질 그들의 찬란한 삶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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